27명이 37만명 가이드...한국판 '오병이어' 기적?

[주장] 너무 부족한 동남아 통역 가이드... 방한 열풍 식을까 걱정

등록 2015.02.03 17:56수정 2015.02.0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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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관광객 수에 비해 통역을 할 수 있는 가이드는 너무 적다. ⓒ sxc


18만명 vs. 8명

이 숫자가 무엇인지 궁금한가? 앞에 쓰여 있는 18만명은 2013년에 한국을 방문한 인도네시아인들의 숫자다. 정확히 말하면 2013년 중에 한국을 방문한 인도네시아인들은 18만9189명이었다.

이 중에는 물론 직업상 외국을 방문할 수밖에 없는 승무원들도 섞여 있고, 노동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숫자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도 18만명 중 절대 다수는 관광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인도네시아 관광객들이다.

8명이라는 숫자는 2013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인도네시아어 관광통역안내사(이하 가이드)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들의 숫자다. 2013년에는 산술적으로 8명의 인도네시아어 가이드가 18만 명의 인도네시아 방한객들에게 안내서비스를 제공한 셈인데, 과연 이걸 가능하다고 볼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행히 2014년에는 인도네시아어 가이드 숫자가 14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4년에 대한민국을 방문한 인도네시아인들의 숫자는 약 21만 명이었다. 그렇다면 작년에는 산술적으로는 14명의 인도네시아어 가이드가 21만 명의 인도네시아 방한객들에게 관광안내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말이 된다. 분신술을 쓰지 않는 이상, 1초도 잠자지 않고, 먹지도 쉬지도 않고 일만해도 절대 불가능하다.

태국 방한관광시장을 봐도 상황은 같다. 2013년 현재 한국 내 태국어 가이드 자격증 소지자는 27명이었다. 2013년에 한국을 방문한 태국 관광객들의 숫자는 37만2878명이었다. 아무런 문제없이 태국인 관광객 37만여 명에게 태국어 관광안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을까?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덩어리로 2000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도 보여주지 않는 한 27명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통역에, 통역을 거치는 인니 관광객 가이드


그렇다면, 여행사들은 인도네시아 가이드 부족으로 빚어지는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을까? 고전적인 방법으로는 통역을 사용하는 것이다. 영어가이드 자격증을 갖고 있는 합법적인 한국인 영어가이드를 고용해서 설명케 하고, 단체관광객을 인솔하고 온 인도네시아측 인솔자가 다시 인도네시아로 통역하는 방법이다. 물론 의사전달도 정확하지 않을뿐더러, 시간도 많이 걸리고 대단히 번거롭다. 무엇보다 인도네시아 관광객들이 인도네시아어로 안내를 받기 원하지, 영어로 안내 받길 원하지 않는다.

더구나 최근에는 저가상품이 기승을 부리다보니 가이드 단가라도 낮추기 위해 중국어 가이드를 사용하고, 인도네시아측 인솔자가 인도네시아로 통역하기도 한다. 합법이긴 하지만 몰지각한 상술이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관광객들을 보내는 여행사들도 불만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국으로 보낸 단체관광객들에게는 영어나 중국어가 아닌 인도네시아로 가이드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래서 여행사들이 울며겨자먹기로 사용하는 방법이 불법가이드다. 불법이라고 해서 어마 어마한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어가 유창하지만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소지하지 않은 한국인을 가이드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이 인도네시아에서 어학연수를 했거나 살다가 온 사람들로 인도네시아어가 유창하다. 하지만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엄연히 불법이다. 여행사들도 자격을 갖고 있는 가이드를 고용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몇 명 안 되기 때문에 합법적으로만 단체관광객들을 안내하기는 불가능하다.

불법가이드를 사용하다 처음 적발되면 시정명령을, 2차 적발시에는 15일 영업정지 또는 벌금, 3차 적발시에는 30일 영업정지 또는 벌금, 4차 적발시에는 영업이 취소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행사들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배가 아프면 왜 아픈지 제대로 진단을 하고 올바른 약을 처방해야 하는데, 여행사들이 죽든 말든 일단 배부터 가르고 보는 식이다. 여행사 입장에서는 불법가이드를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외국인들의 국내 여행을 유치하는, 한국의 인바운드 여행사들은 적발당해서 영업취소를 당하지 않으려면 인도네시아 단체관광객들을 받지 않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라고 할 땐 언제고, 애써서 유치하고 나면 단속인가?"가, 이것이 인바운드 여행사들의 솔직한 속마음일지도 모른다.

인니어나 태국어 가이드는 왜 이렇게 적을까

그렇다면 인도네시아어나 태국어 가이드는 왜 이렇게 적을까? 관광통역가이드 시험은 1년에 1회 시행되는데, 횟수가 너무 적은 것이 첫째 이유다. 영어, 일어, 중국어 이외의 가이드 분야에서 희소언어라 할 수 있는 특수외국어는 정기시험 이외에도 특별시험을 치르고는 있지만 회수를 대폭적으로 더 늘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시험 횟수를 대폭 늘리면 합격자들이 많이 나올까? 합격자들을 늘리기 위해선 '응시생들이 많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응시생들이 많기 위해서는 시험 난이도가 적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한 마디로 가이드시험이 고시수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시험 횟수를 대폭 늘린다 해도 특수외국어에 대한 가이드 수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유는 시험과목도 많고 시험문제도 어렵기 때문에 응시생들도 적고 합격자들도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험과목이 너무 복잡하고 쓸데없이 난이도가 높다는 점이 가이드가 적은 둘째 이유가 된다. 필기시험에 해당 외국어 시험만 있는 게 아니다. 국사, 관광자원해설, 관광법규, 관광학개론 등을 달달 외워야 한다. 내가 가이드시험을 치렀던 1991년 때와 비교해도 필기시험 과목에 변화가 별로 없다.

국사과목이 가이드 필기시험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관광자원해설과 관광학개론이 정말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관광법규라는 복잡한 지식체계는 기본적으로 '현장'을 누비는 가이드들이 아닌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정 필요하다면, 사무실에서 현장 가이드에게 지시를 내리면 된다. 특수외국어 어학전공자들조차 시험 치르기를 꺼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이드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필기시험공부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비되고, 달달 외운 지식들이 유용하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신흥시장 방한 열풍, 가이드 문제로 식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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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경절(10월 1∼7일) 연휴와 한국의 개천절이 겹친 지난해 10월 3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가 시민과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를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 현수막에는 중국어로 '명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 연합뉴스


해결방법은 없을까? 지난해 서울시와 부산시가 가이드 양성과 관련해 발표한 내용을 보자. 서울시는 결혼이민자의 이중언어 구사능력을 활용, 안정적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관광통역안내사 양성과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언어권 결혼이민자가 대상이다.

한편 부산시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중화권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중국어 관광통역 전문 인력 모집에 이어 중국어, 러시아어, 태국어, 베트남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등 언어권을 확대해 관광통역안내사 양성과정 참가자를 모집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규모가 작은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보다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사례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한국관광공사 자카르타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난 이곳에서 인도네시아 여행사들을 자주 만난다. 인도네시아 여행사들의 의견에 따르면 한국에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인에게 안내를 받는 것보다는, 인도네시아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에게 안내를 받는 게 더 좋아 보인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관광객들 입장에서는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모국어로 안내를 해주는 것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더 높다는 것이다. 결국 만족도는 언어의 완벽한 구사가 아니라, 대우를 해주고 있다는 느낌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난 가이드가 부족한 태국어나 인도네시아어(마인어), 아랍어 등 특수외국어에 한해 당분간 가이드 자격시험을 소양교육으로 바꿀 것을 제안하고 싶다. 해당 외국어 구사에 비중을 많이 두고, 해당외국어 시험은 오히려 강화해 나가되,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소양부분은 3~6개월의 소양교육을 통해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격심사를 하는 자가 공정하고 부당함이 없어야 한다. 당연히 관광공사와 같은 공공기관에서 자격심사 및 소양교육 부분을 맡으면 될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오는 외국인들만 관광객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 중동, 말레이시아 등과 같은 무슬림 국가들은 물론 동남아의 선진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태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몇 년 후 대한민국은 2000만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것이다. 그 때까지도 수십 명의 가이드만으로 넘쳐나는 인도네시아 관광객들과 태국 관광객들을 맞이할 것인가?

지금 중국시장이 한국 관광업계를 먹여 살리고 있지만, 10년 뒤 한국 관광시장을 먹여 살릴 제2의 블루오션은 동남아 국가들이 될 것이다. 본격적으로 불고 있는 이들 신흥시장의 방한 열풍이 가이드 부족으로 인해 차갑게 식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비슷한 내용으로 국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가이드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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