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대학 진학에 목숨... 폭탄 떨어져도 학원으로

[창간 15주년 기획-세계 속의 15세②] 이집트의 두 소녀 에야와 민나의 하루

등록 2015.02.24 11:50수정 2015.03.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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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성인이 된 누군가는 '한창 좋을 때'로 기억하고 있을 시절이지만 요즘 아이들에겐 그 의미와 상황이 좀 다른 듯합니다. 대입의 전초전인 '고입'을 앞두고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 혹은 부모들이 있고, 또 다른 아이들은 줄 세우기, 경쟁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길을 찾으며 애를 씁니다. 올해로 창간 15주년을 맞은 <오마이뉴스>는 세계 각국 15세 아이들의 현재와 그들의 고민을 담은 기획 '세계 속의 15세'를 몇 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현관을 나서기에는 이른 시각인 새벽 6시 30분. 엄마가 챙겨준 두 개의 샌드위치를 부랴부랴 책가방에 쑤셔 넣은 에야(15)는 종종걸음을 쳤다. 자신을 비롯해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 몇 명을 태우러 오는 스쿨버스가 아파트단지 입구에 도착하는 시간이 5분여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지체해도 걸려들 것이 뻔한 교통체증 탓에, 스쿨버스 기사들은 시간 맞춰 오지 않는 학생들을 절대로 기다리지 않는다. 항상 늦잠을 자는 앞 빌딩의 상급생 언니는 그래서 택시를 타고 등교하는 일이 스쿨버스 이용횟수와 거의 맞먹는다고 했다.

스쿨버스비는 할부가 안 되는 탓에 가계에 적잖은 부담을 준다. 때문에 에야 엄마는 단 한 번도 에야를 택시에 태워 보낸 적이 없다. 버스는 요리조리 움직이며 드넓은 카이로 헬리오폴리스 지역의 절반을 잘도 달렸다. 하나둘씩 탑승한 학생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저마다 집에서 싸온 샌드위치를 졸면서 한 입씩 베어 물었다.

올해 10학년, 15살이 된 에야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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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0학년이 된 에야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 sxc


첫 수업은 오전 7시 40분에 시작됐지만, 학생들에게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달려 오후 2시 30분 이전에 7~8과목의 수업이 경이적으로 끝났다. 여느 해 같았으면 아침에 탔던 것과 같은 11번 스쿨버스를 타고 하교해 집에서 숙제하는 것이 전부였을 테지만, 올해 10학년이 되는 에야는 오늘부터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엄마표' 방과 후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에야, 우리 맥도날드 갈래?"

스쿨버스를 이용하지 않는 반 친구 몇이 손짓을 했다.


"기말고사 끝나면!"

아쉬운 마음이 대답으로 튀어나왔다. 에야는 힘없이 스쿨버스에 올랐다. 런치박스에 남긴 샌드위치 반쪽을 심심하게 씹으며 창밖을 보니, 30여 대가 넘는 에야네 학교 스쿨버스와 직접 딸들을 데리러 나온 자가용들로 학교 앞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너 IGCSE 시험 칠 거라며? 그거 어렵다던데…."

같은 반 마리암 아알리가 에야의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마리암 아알리는 에야의 베스트프렌드이다. 부모가 모두 이집트인인 마리암 아알리는 모국어인 아랍어로 대학입학을 준비하므로 기존 학과목만 열심히 따라가면 되었다.

그에 비해 엄마가 일본인이면서 집에서는 영어를 구사하며 현지인학교를 다니는 에야는 아무래도 남들보다 선택의 폭이 넓다. 특히 영어로 치러지는 외국 대학입시 학과목에 대한 이해 속도가 이집트학생들보다 빠르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에야는 남보다 두 배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다. 그것도 아주 새로운 과목들을.

"오늘부터 뺑뺑이 과외 시작이야. 앞으로 3년은 난 죽은 거야."
"너 너무 불쌍한 거 같아. 내가 위로 차원에서 선물 하나 줄게. 짜잔."

그것은 제인 말리크의 50cm짜리 브로마이드였다.

딸 과외 위해 업무시간까지 줄인 에야 엄마

에야가 스쿨버스를 타고 집 근처로 올 시각, 엄마는 벌써 그곳에 나와 있었다. 과외용 가방을 든 엄마는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에야를 낚아채 자신의 차에 태웠다. 과외를 받는 곳이 학교와는 정반대의 방향이라, 굳이 학교까지 왕복하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누구라고?"
   
엄마는 연신 백미러 곁눈질로 뒤차, 옆차, 길 건너려는 행인,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길냥이들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면서도 큰 딸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관심을 쥐어짜며 물었다.

"카이로는 너무나 정신이 없어… 신호등 좀 달지. 이러다 내 명대로 다 못 살 거야."
"제인 말리크요. 원 디렉션(One direction)에서 유일하게 얘만 우리 같은 무슬림이에요."
"으응 그렇구나."

20년 된 똥차로 카이로의 지옥 같은 도로를 운전하느라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엄마야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든지 말든지 에야는 그저 세계적인 남성그룹 원 디렉션의 멤버 제인 말리크의 브로마이드를 마냥 감탄스런 표정으로 쓸어내릴 뿐이었다.

요즘 아랍에서 가장 '핫'하다는 그의 인기는 에야네 반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보적이다. 에야를 비롯한 반 친구들은 원 디렉션과 제인 말리크를 통해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위로받았다.

에야 엄마는 새로 예약한 큰딸의 과외교습을 위해 업무시간을 한 시간 가량 줄였다. 엄마의 월급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외국소재 대학이나 카이로 소재 외국대학들의 등록금을 걱정한 아빠가 아이를 이집트 현지 대학에 보내도 되지 않겠냐고 넌지시 의견을 제시했을 때 엄마는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IGCSE 학과목 공부랑 한 과목당 700~800 달러씩 하는 시험비용이랑 과외비용을 다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요? 대학에 들어가려면 아직도 3년이나 남았는데. 대학등록금은 또 어쩌고?"
"그래도 해야 해요. 현지 대학 나와서 우리 아이가 어디에 어떻게 취직할 수 있겠어요? 일본의 지방대학이라도 보내야 해요. 다른 나라에서 취직을 하더라도 암튼 이집트는 안 돼요."

엄마의 고집은 확고했다. 의무교육기간이 9년인 이집트의 학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대학 4년으로 구성돼 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유니세프에서 조사한 이집트의 초중등학교 진학률은 남자가 88.6% 여자가 87.2%이며, 전체인구의 고교진학률은 남자가 70.5% 여자가 69.5%에 이른다. 또한 유네스코에서는 2010년 기준으로 이집트의 성인 여성 (15~24세)의 상급학교 진학률이 84.3%, 성인 남자는 90.56%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도 자녀들의 진학에 목숨을 거는 오늘날 이집트의 부모들이 이 조사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

에야 아빠는 어쩌면 노후를 위하여 알렉산드리아에 사두었던 작은 아파트를 팔아야할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거실에서 아홉 살 난 에야의 막냇동생이 작아진 발레복을 입느라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공부 대신 운동 택한 15살 민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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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0학년이 된 민나는 가라테 유망주다. ⓒ 아미라리


오늘은 카이로 북부지역 가라테 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날이다. 10학년이 되어 그 어느 때보다도 공부가 중요해진 반 친구들이 한창 수업을 받고 있던 시각, 민나(15)는 시간에 맞춰 자신을 데리러온 엄마와 함께 학교를 나섰다. 차에는 이미 민나의 동생 둘이 타고 있었다.

"아스마, 뒷자리에 앉아."

민나는 큰언니답게 위엄 있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민나는 아스마같은 여섯 살짜리 어린애는 절대로 앞좌석에 앉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제일 위험한 자리야..." 민나는 맏이로서 워낙 동생들을 잘 통솔하는 편이라, 엄마는 그런 그에게 별다른 딴죽을 걸지 않는 편이다. 아스마는 둘째언니 마이가 앉아 있는 뒷좌석으로 건너갔다.

"도시락 먹어도 돼요?"

마이가 물었다. 두 동생들 모두 띠 색깔만 다른 새하얀 가라테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나오는 바람에 점심때를 놓친 아이들은 엄마가 미리 싸둔 도시락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치킨 한 조각씩과 스파게티였다. 별도의 개인접시는 물론 없었다. 도시락 외에는 포크 세 자루와 물 세 병이 전부였다.

민나는 도시락 뚜껑에 자신의 양만큼 음식을 담았다. 아이들이 점심을 해결하는 동안 엄마는 선발전이 치러질 스타디움으로 차를 몰았다. 민나네는 카이로의 북부 끝자락에 살기 때문에 카이로 안으로 진입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게다가 요즘엔 예고도 없이 임시 차단되는 도로가 많아서 시간이 배로 소요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테러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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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을 돌보느라 엄마가 쓰러진 후, 민나와 동생들은 더욱 열심히 운동을 한다. ⓒ 아미라리


"든든히 먹어두렴. 시합은 자신 있는 거지? 캡틴 아하멧이 전화하셨다."

반 년 전에도 우승한 경험이 있는 민나는 가족은 물론 캡틴(코치 혹은 사범)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민나의 두 동생들까지 같은 종목의 운동을 시키는 것은 엄마가 자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나 다름없었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하나하나 따로 신경을 쓰기는 어렵고 운동에 재능 있는 큰딸 위주로 계획표를 짜기는 짜야겠고… 해서 결정한 것이다.

"올해부터 따는 금메달은 대학 들어갈 때 가산점을 받을 수 있어. 알지?"
"알아요."
"믿는다 우리 딸."
"인샬라(신의 뜻이라면)."

민나는 의젓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역시 심리적 부담감은 안고 있었다.

"너희들도 큰언니처럼 열심히 운동해야 한다. 공부가 재미없으면 운동이라도 잘 해야 하지 않겠니?"
"네."
"네, 엄마."

큰언니가 가라테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그 말에, 민나의 두 동생은 자동적으로 대답을 했다. 둘째 마이는 공부에도 관심이 있는지라 스포츠센터에도 숙제를 가져가는 억척을 보였지만 엄마는 그런 마이에게 과외교습을 시켜줄 엄두조차도 내지 못했다.

세 아이에게 스포츠를 시키는 것도 민나네 형편엔 벅찬 일이기 때문이다. 남들 다 한다는 과외를 시키지 못하는 대신 가라테 후원만이라도 열심히 하자는 것이 민나 엄마의 각오였다.

"엄마, 탱크예요... 이쪽 길은 막힌 것 같아요"

이런 엄마의 각오를, 아이들도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세 아이를 돌보다 지친 엄마가 운전대를 잡자마자 졸도를 한 것이다. 그 날 이후 민나와 마이는 가라테를 수련하는 데에 각오를 달리했고, 어린 아스마는 언니들의 심각한 태도를 그대로 흉내 내며 고사리만 한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엄마, 탱크예요. 이쪽 길은 막힌 것 같아요."

창밖을 내다보며 마이가 말했다. 연신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던 민나는 행여 선발전에 늦을까봐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괜찮아 민나. 엄마가 다른 길을 알고 있어. 우린 늦지 않을 거고 시합을 놓치지도 않을 거야. 너에게 온 기회를 놓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딸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짐작하고 있는 엄마는 가만히 민나의 한쪽 손을 잡아주었다. 이집트의 학생들이 염려하는 것은 비단 학업만이 아니라 안전이라는 사실은 학교는 물론 학부모들까지도 진작에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아무리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밝은 낯으로 팝스타에 열광하는 척을 한다해도, 불시에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해소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학교생활에 몰두하는 것 외에 달리 없었다.

지난 주인가 아이들의 학교 근처에서 복면인들이 투척한 사제폭발물이 터졌고 시민 몇이 부상을 입었으며 학교는 이틀인가 휴교를 한 적이 있었다. 사흘이 멀다하고 한 시간 거리의 시나이반도에서는 테러소식이 들려왔다. 최근엔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시내에서도 폭탄테러가 발생해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카이로 국제공항에서도 사제 폭탄이 발견되어 이집트 국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제 이집트에 안전한 곳이란 어디에도 없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의 민나와 민나엄마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늘 그래왔듯이 하던대로 공부를 하고 시합을 하고 생활을 하는 것만이 보다 안전한 미래로 아이들을 보내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늘 하던대로.
#15세 #이집트 #카이로 #청소년 #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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