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곳곳에 피가... 내가 왜 이러지?

[나의 암 극복기 11] 수술 후 3개월만에 본 가슴..."고생했다, 예쁘다"

등록 2015.02.06 21:31수정 2015.02.0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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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치부까지 드러내면서 솔직하게 글을 쓰는 이유는 암으로 고통 받는 분들이 이 같은 일을 당했을 때 두려워하지 말고, 거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라는 참고의 말 정도로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수 없이 되 뇌인 입장에서, '이 또한 지나가더라'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어서다. - 기자 말


내 몸 상태로 봤을 때 이제 한 3분의 1 정도 지나온 것 같다. 그 터널이 참 길게 느껴졌다. 이쯤에서 초긍정모드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란 예감이 든다. 하여 내 삶의 모토 중 하나인 '아직 보다는 벌써'를 꺼내 쓰기로 했다. 나는 나의 터널을 '벌써' 3분의 1이나 통과하고 있다.

두건 하나 접었을 뿐인데,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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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건 두건의 앞 모습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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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건 핑크 두건의 완성 된 모습 ⓒ 김경내


딸이 가발을 쓸 것을 권했다. 민둥산 머리가 보기 흉하여 상심한 나를 생각해서다. 가발 값이 한두 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딸은 기어이 주말에 나를 끌고 가발 전문점에 갔다. 가발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쓸 만한 것의 가격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딸은 그런 나를 보고 웃더니 "김 여사, 간 많이 작아졌네"라며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인모 가발을 맞췄다.

생전 처음 써보는 가발이 어색했다. 해서 머리에 뭔가를 써야겠는데 무얼 써야 특이하고 예쁘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두건을 접기로 했다. 두건의 재료는 등산이나 걷기 등 각종 모임에서 받은 사각 수건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 수건을 받을 때만 해도 이걸 어디다 쓰나 했던 것인데 이렇게 유용하게 쓸 줄은 몰랐다. 마침 한 곳에 차곡차곡 모아 놓아서 찾기도 쉬웠다. 다양한 색깔과 무늬의 수건이 20여 장이나 된다. 생각해 뒀던 디자인으로 접어 보기도 하고 다른 모양으로도 접어 봤지만, 역시 원래의 모양이 제일 좋았다. 가발은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 갈 때만 쓰기로 하고 당분간은 두건을 애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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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건을 썼을 때 혼자 셀카를 찍었더니 제대로 모양이 안 나와서 아쉽다. 보라색 ⓒ 김경내


수건 색깔이 다양하여 옷에 맞춰서 접어 쓰니 뜻밖의 멋을 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브로치를 이용하니 한층 더 멋스럽다. 옷과 맞춤하여 쓰고 인사동에 갔다. 만나는 사람들이 관심 있게 어떻게 만든 거냐고 물어본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작은 두건 하나로 나의 캄캄했던 터널에 전등 하나가 켜졌다. 그래 이렇게 이겨 나가는 거야.

손발톱을 깎아야겠다. 조명을 최대한 밝게 하고 돋보기를 썼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참 잘도 붙어 있다 싶었는데 웬걸! 걸을 때 멍들었던 발톱이 들떠 있었다. 원래도 손발톱을 바짝 들여 깎는 버릇이 있는데 검게 죽은 손발톱, 게다가 들뜨기까지 한 것이 보기 싫어서 더욱 바짝 깎았다.

마침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딸이 퇴근해서 돌아왔다.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신이 나서 얘기하며 딸을 졸졸 따라다녔다. 엄마 말에 장단을 맞추던 아이가 거실 바닥을 힐긋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본다.

"엄마 뭐하셨어요?"
"어, 손발톱 깎았어. 왜?"

딸은 내 손과 발을 살펴보더니 아무 말 없이 약 상자를 가져와서 나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내 엄지발가락을 소독하고 연고를 바른 뒤 반창고를 붙였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손발톱 좀 바짝 깎지 말라며 잔소리를 한다. 내 엄지발가락에는 상처가 나 있었고, 피가 묻어 있었다. 딸은 먼저 방을 나가면서 나에게 거실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반창고로 싸맨 발가락을 보며 '이 정도의 상처와 피가 났으면 아팠을 텐데 왜 아무런 통증을 못 느꼈지?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방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딸이 허둥지둥 거실 바닥을 닦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바닥을 닦으면서 울고 있었다.

"아니 왜?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엄마, 엄마!"

딸은 아예 마음 놓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무슨 일인가, 어안이 벙벙하다가 무심코 바닥을 보니 바닥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랬다. 항암 주사를 계속 맞으니 세포가 둔해지거나 죽어서 살을 잘라내도, 피를 흘려도 통증을 못 느꼈던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냥 '멍~' 했다.

아하! 그랬구나. 그제야 얼마 전부터 내가 있던 자리에 하얀 가루가 떨어지고 속옷을 갈아입으려고 보면 하얀 가루가 옷에 잔뜩 묻어 있던 게 생각났다. 뿐만 아니라 옷을 벗을 때 하얗게 날려서 바닥에 떨어진 것을 손바닥으로 쓸면 수북이 쌓이던 게 생각났다. 그때는 '이상하네, 별일이네'라고만 생각했다. 그것은 세포가 죽으면서 떨어져 나온, 피부 표면에 기생하던 살 비듬이었다.

아무도 그렇다고 말한 사람은 없지만, 내 생각에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도 두피가 약해지거나 혹은 두피 표면의 세포가 죽으면서 머리카락을 잡고 있을 힘이 없어서 빠지는 건 아닐까 싶다.

아침에 텔레비전을 보는데 어떤 스님이 출연해서 몸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얘기 중에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대목이 있었다.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겨라. 내 영혼을 담고 있는 몸을 어루만지며 감사하라.'

수술 후 3개월 만에 본 가슴... "고생했다, 이쁘다, 미안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울고 말았다. 울면서 텔레비전 속의 스님에게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그리고는 욕실로 달려가서 윗옷을 벗고 거울에 내 가슴을 비춰봤다. 수술하고 3개월 만에 보는 내 가슴이다. 가로로 꿰맨 수술 자리는 전혀 예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목과 가슴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고생했다, 이쁘다, 미안하다"고 감사해 했다.

그날 이후로 브래지어를 벗어버렸다. 시원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불편함을 참으며, 아닌 척 위장하고 지낸 위선을 벗어버린 것 같아서 정말 홀가분했다. 기분이 가벼워졌다.

"그래, 감당하지 못할 일은 주시지 않는다고 했어. 암? 별거 아니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해 보자. 이건 오기가 아니다. 견주어 보자는 건 더욱 아니다. 다만 벌벌 떨 일이 아니라는 거다. 당당하게 잘 모실 테니, 잘 대접할 테니 같이 한번 살아보자는 거다. 극진히 대접하면 저도 별 수가 없겠지."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입장이면서도 비굴하지 않으면서 겸손하게, 당당하면서도 거만하지 않게 한다면 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이제 암 앞에서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두건 #감사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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