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3대 요리로 꼽는 베트남, 이 맛이 진리

[우리 가족의 베트남 여행기 ⑤] 월남쌈부터 커피까지

등록 2015.02.11 11:35수정 2015.02.1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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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가기 전, 맨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현지 화폐를 준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바로 상비약 챙기기. 아닌 게 아니라, 웬만한 곳에서는 신용 카드 사용이 가능한 데다 곳곳이 환전소지만, 다니면서 병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베트남에서는 여행 중에 아픈 것이 가장 큰 낭패라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렇잖아도 여행 자료집과 인터넷에서도 익히 봐온 터다.

그 중 소화제와 설사약은 준비 '0순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선지, 베트남 여행 중 배탈 한 번 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거라는 호들갑이 엄살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이에 어른용과 아이용을 나눠 충분히 구입했고, 첨부된 설명서를 읽고 또 읽었다. 소화제는 몰라도, 설사약 같은 경우 오남용하면 위험하다는 약사의 말은 더욱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그렇잖아도 해외에 나갈 때마다 우리 가족은 모두 한두 번쯤 배탈로 고생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중국 서안에서는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큰 아이가 갑작스런 복통을 참지 못하고 옷에다 '실례'를 한 적도 있었다. 육식을 하지 않는 데다 비위까지 약한 아내와 난, 복통과 설사에 대해 일종의 '공포감'마저 있다. 육식이 아니라도 기름진 음식을 질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두 번 배탈로 고생했던 우리 가족, 베트남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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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한 끼 식사 중국풍의 면류 요리부터 베트남식 팬케이크, 유럽식의 바게트 빵까지 식탁 위에 전 세계가 모였다. 과일주스 디저트와 맥주까지 포함해 우리 돈으로 2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음식값은 정말 쌌다. ⓒ 서부원


다채로운 현지 음식을 즐기는 식도락이야말로 여행의 묘미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 현지 음식이란, 여행 기간 동안 다른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감내해야 할 '기회비용'일 뿐이다. 갈 때마다 반찬이자 약으로 쓰기 위해 매실장아찌를 조금 챙겨가는 것도 그래서다. 매년 해외여행을 다니다보니 생긴 우리 가족만의 '노하우'다. 그렇다고 해서 고추장이나 김치를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정도는 물론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보름 가까운 이번 여행 기간 동안 소화제와 설사약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두 아이와 아내에게도 모처럼 '속 편한' 여행이었다. 두툼한 약 가방을 챙겨간 그대로 다시 가지고 돌아왔다. 되레 우리나라 음식보다 훨씬 더 담백하고 맛있다고 말했다. 두 아이는 베트남 음식의 열혈 팬이 되어, 귀국하기 싫다고 말할 정도였다. 돌아가면 다시 먹을 수 없지 않느냐는 거다.

참고로, 해외여행을 갈 때 우리 가족이 정한 첫 번째 규칙이 있다. 주전부리나 식사와 함께 마시는 음료 등을 제외하고는, 식사할 때 같은 메뉴의 음식을 두 번 시켜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 다시 와 맛볼지 모르는데, 가급적 다양한 현지 음식을 두루 먹어보자는 취지다. 비록 입맛에 맞지 않아 버리게 되는 한이 있어도 지키려는 '철칙'이다. 어느 나라를 가든 예외 없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그러한 시도 자체가 괴롭기는커녕 행복했다. 메뉴판에 나온 웬만한 음식은 다 시켜 먹었지만, 크게 비위를 거스르는 음식은 없었다. 어느 도시, 어느 식당엘 가든 까칠한 우리 가족의 입맛을 괴롭히지 않았다. 굳이 '옥에 티'를 찾자면, 요리마다 토핑처럼 얹는 독특한 향채와 우리나라 청양 고추 뺨치는 새끼손가락만 한 땡초가 잠깐 우릴 놀라게 하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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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식 월남 쌈 라이스 페이퍼가 A4용지보다 커서 놀랐다. 안에 싸는 속도 가지각색인데, 하나로 한 끼 식사가 충분했다. ⓒ 서부원


사실 떠나기 전 베트남 요리 하면 '월남 쌈'과 '쌀국수' 밖에 몰랐다. 얼마 전 집 근처 베트남 음식 전문점에서 맛본 적도 있고, TV 등을 통해 심심찮게 소개된 탓에 우리 음식처럼 친숙하다. 그래선지 '원조'의 맛이 어떨까 궁금하긴 했다. 그러나 베트남에 가면 그것들을 꼭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신 메뉴판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많은 음식들을 경험하기엔 두 주간이나 되는 여행기간조차 턱없이 짧다는.

베트남 음식은 중국, 터키와 함께 아시아의 3대 요리로 일컬어진다. 흔히 중국과 터키, 프랑스 요리를 세계 3대 요리로 치는데, 범주를 아시아로 좁히다보니 유럽에 속한 프랑스 대신 베트남이 그 자리를 꿰찬 것이다. 곧, 베트남 음식이 '먹기 위해 산다'는 프랑스 사람들의 미식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요리라는 것을 두루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과연 베트남 요리는, 맛도 맛이지만,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언뜻 우리나라와 비슷한 매운탕과 찌개류가 있는가 하면, 스파게티를 닮은 면류와 바게트 빵, 케밥 등 서양 음식들도 흔하다. 꼬치구이와 볶음밥 같은 중국풍의 음식도 많고, 우리가 익히 아는 쌈과 쌀국수의 종류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놀랍게도 이들은 길거리의 조그만 분식점 같은 곳에서도 시켜 먹을 수 있는 '보편적인' 메뉴들이다.

베트남 요리는, 날아다니는 건 비행기만 빼고, 다리 달린 건 책걸상만 빼고 다 요리해 먹는다는 중국 못지않게 메뉴가 다양하다. 게다가 동서양을 넘나들고 있다. 터키 요리가 동서양을 연결하는 교량적 위치라는, 다분히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세계적인 요리로 손꼽힌다면, 베트남 요리는 식민지와 전쟁의 역사가 남긴 여러 문화의 이식과 혼재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부터 힌두교까지 세계 모든 종교가 이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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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감초', 느억맘 베트남에선 어떤 음식을 먹든 따라오는 양념장이 있다. 멸치를 발효해 만든 '느억맘'이 그것인데, 전혀 비리지 않고 감칠맛이 나는 게 우리 입맛에도 맞다. ⓒ 서부원


베트남을 여행하다 보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타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어떤 게 베트남의 고유 문화인지 헛갈리고, 나아가 과연 그들에게 고유의 전통문화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예컨대, 베트남에선 어딜 가나 세계의 모든 종교를 두루 만날 수 있다. 그들이 큰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흔적이 유물로 곳곳에 남아있다. 그만큼 국토가 넓으냐면, 고작 우리나라(남한)의 세 배 남짓의 면적이다.

공자와 관우를 모신 사당 옆엔 가톨릭교회 건물이 오롯이 세워져 있고, 안전한 바닷길을 지켜준다는 여신 천후의 곁에는 힌두교의 시바 신과 비슈누 신을 모신 신전이 자리한다. 세계 곳곳에서는 종교 갈등으로 인한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지만, 베트남에선 그 많은 신들 모두가 그저 친근한 '이웃'이며 오랜 '친구'다. 얼핏 종교적 화해를 넘어 '짬뽕'처럼 여겨질 정도다.

20세기 초 베트남 남부지방에서 발흥한, 예수와 부처와 공자와 무함마드 등을 함께 신으로 떠받드는 신흥종교 '까오다이교'가 그 예다. 대부분이 불교 신자인 나라라지만, 여러 문화들이 뒤섞여있는 까닭에선지 이웃한 태국이나 미얀마 같은 불교적인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다. 집집마다, 가게마다 입구에 향불을 피우고, 매일 제단에 꽃을 바칠 만큼 신심이 강한 이들의 모습조차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융합되는 과정에서 생긴 습속으로 여겨진다.

그들의 언어도 '동서양 융합형'이다. 발음과 억양은 중국어와 유사하지만, 표기는 한자가 아닌 알파벳을 빌려 쓰고 있다. 본디 베트남에는 '쯔놈 문자'라는 게 있었다. 14세기경 중국의 한자에 바탕을 두고 만든 문자다. 그러다보니 한자 지식이 부족한 대다수 사람들이 사용하기가 어려워 널리 보급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제국주의 시대 초기, 베트남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알파벳을 활용한 표기법이 고안됐고, 이것이 곧 현재 베트남 문자다.

식당에서 만난 몇몇 서양 관광객들은 이렇게 말했다. 풍광은 더 없이 동양적인데도 흡사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베트남을 그저 인도와 중국 문화가 반반씩 섞인 곳쯤으로 알던 상식이 깨졌다는 거다. 그들이 '인도차이나'로 뭉뚱그려진 태국과 캄보디아, 라오스 등과 문화적으로 현격한 차이를 느끼는 건, 그곳과는 확연히 다른 음식 차이에서 비롯된 건 아닐는지.

동남아 여행이 처음인 아내와 아이들 역시 떠나기 전 떠올렸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고 말했다. 하노이와 호치민에 즐비한 식민지 시절 건물들과 봉건왕조의 황제 무덤에 장식된 화려한 대리석 조각을 통해 '유럽'을 보고,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호이안의 거리를 통해 과거 '아시아'를 만난다. 두 곳을 한꺼번에 보려면, 베트남 요리를 맛보면 된다. 동서양의 문화가 그대로 식탁 위에 옮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요리만으로도 이곳을 찾을 확실한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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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넋을 잃게 만든, 수박 주스 과육을 직접 갈아 만들어 마시기보다 씹어먹기에 좋은 주스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먹기 어렵다며 아이들은 식사 때마다 주문해 먹었다. ⓒ 서부원


사족 하나. 동서양을 고루 담은 베트남 요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게 더 있다. 바로 과일과 커피다. 연중 따뜻한 기후로 값싼 열대 과일이 그야말로 지천이다. 어딜 가나 좌판에 수북하게 쌓은 과일 더미를 볼 수 있고, 저울처럼 과일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팔러 다니는 상인들은 오토바이 수만큼이나 많다. 과육을 통째로 갈아서, 마시기보다 '씹어 먹는' 수박 주스와 멜론 주스에 아이들도 넋이 나갈 정도였다.

베트남 사람의 커피 사랑은 유별나다. 카페가, 조금 과장하자면, 열 걸음에 하나 꼴이다. 커피의 종류도 많고, 맛도 가지가지며, 마시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제국주의 시대,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처음 재배된 커피는 어느덧 베트남을 먹여 살리는 대표적인 효자 수출품이 됐다. 현재 브라질에 이어 세계 제2위의 커피 수출국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베트남 하면 쌈이나 쌀국수 대신 커피를 맨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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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명물, 커피 왼쪽은 베트남식 블랙 커피인데, 차라리 커피 농축액에 가깝다. 우리 가족은 '커피죽'이라고 불렀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 럼주를 탄 커피인데, 두 잔을 마시고는 머리가 핑 돌았다. ⓒ 서부원


#베트남 여행 #아시아 3대 요리 #쌀국수 #베트남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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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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