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의 오버...한국전쟁 '진실', 청소년이 알까 두렵나

[서평] 이임하 교수의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

등록 2015.02.16 16:36수정 2015.02.1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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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한국전쟁 이야기> 표지 ⓒ 철수와영희

'마녀사냥'일까, 정당한 문제제기일까.

한국방송통신대 이임하 교수가 쓴 책 <10대와 통하는 한국전쟁 이야기>(철수와영희 펴냄)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2013년 6월 25일 발간된 이 책을 부산광역시교육청(부산교육청) 산하 부산시립시민도서관 등 11개 도서관의 과장들로 구성된 '이달의 책' 선정협의회가 비문학 부문 '이달의 책'으로 선정한 것은 2014년 6월이다. 그 뒤 이 책은 부산 지역 11개 공공도서관에 비치되었다.


뒤늦게 논란이 시작된 시점은 올해 2월 초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월 1일 부산시민 김아무개(30)씨가 한 공공도서관에서 이 책을 접했다. 내용을 보고 충격과 분노를 느낀 김씨는 2일 페이스북에 책 내용을 소개하고, 국민권익위원회의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렸다. 일종의 '민원'을 넣은 것이다.

최초 언론 보도 시점은 2월 6일이었다. 인터넷매체 <미디어펜>은 이날 <반미·반이승만… 10대 선동하는 부산시교육청>이라는 기사에서 "추천도서 가운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폄하하고 있어 공공(公共)의 추천을 받기엔 부적절해 보이는 책이 포함돼 논란이 예상된다"라면서 책의 반미 기조가 노골적이라고 주장했다.

곧이어 '보수언론'이 대거 가세하였다. 2월 10일, 11일 각각 기사(<반미·반이승만 좌편향적 역사책… 부산교육청 '이달의 책' 선정 논란>)와 사설(<6·25 남침 북한군 미화한 책 떠받든 부산교육청>)을 통해 책을 집중 비판한 <문화일보>가 선두에 섰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종편인 <채널A>가 기사와 칼럼 등을 통해 비판 대열에 가세하면서 논란은 절정에 달했다.

부산교육청은 2월 10일 즉각 '이달의 책' 선정협의회 재심의를 열어 "휴전 상태인 현 상황에서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책은 논란의 여지가 있고,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이 접할 경우 우려가 된다"라며 추천도서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비치된 책을 빼고, 관련된 목록집 배부도 중단하기로 했다고 한다. 논란이 인 지 나흘 만의 일이었다.

이 책은 진짜 "반미·좌편향 역사책"(<조선일보> 2월 10일), "좌편향 역사책"(<동아일보> 2월 11일), "6·25가 '해방전쟁'이라는 추천도서"(<동아일보> 2월 12일)일까. 좀 더 본질적인 의문도 있다. 책을 읽은 시민이 공공기관에 민원을 넣고 이를 안 언론이 논란을 부추기면, 공적 절차를 거쳐 정당하게 추천을 받은 책이라도 논란을 이유로 추천에서 제외하는 상황이 과연 합리적일까.


보수언론 '반미·반이승만' 덧칠에 부산교육청 추천도서 선정 철회 

'보수언론'이 이 책을 '좌편향'과 '반미'로 모는 근거는 무엇일까. <문화일보>는 10일 기사에서 "전쟁 때 미국과 이승만 정부의 민간인 피해 유발에 대한 관점으로만 시종 논리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북한이 입힌 민간인 피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부산시 교육청 반미·좌편향 역사책 추천 도서로 선정해 배포> 기사에서 "전쟁 당시 살포된 '삐라'(전단)를 소재로 해 미국과 이승만 정부를 비난하는 관점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권순활 논설위원은 12일자 칼럼('횡설수설')에서 "6·25 남침 전쟁 및 한반도 분단과 관련해 이승만 정부와 미국을 맹비난한 반면 김일성과 소련, 중국에는 우호적인 내용이 많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책에 대한 '좌편향'과 '반미'의 판단 기준이 한국전쟁을 누구의 시각에서 보는지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들이다.

이들의 '좌편향', '반미' 주장은 6·25를 당시 이승만 정부와 미국의 관점에서 기술하지 않은 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없을까. 책은 저자의 집필 동기와 책의 성격에 따라 관점, 기조, 주제 등이 달라진다. 우리 군 당국이 한국군의 활약상을 강조하기 위해 쓴 역사책이라면 한국군의 관점에 치중하게 된다. 역사학자의 시각과 참전군인의 시각으로 본 한국전쟁은 서로 많이 다를 것이다. 기조나 주제가 전쟁 반대와 평화 지향인지, 아니면 자주 국방의 중요성인지에 따라 소재와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한국 전쟁 때 뿌려진 삐라를 바탕으로 한국 전쟁의 사실과 그 뒤에 숨은 뜻을 다루고 있습니다. (중략) 이 책이 읽은 이들에게 한국 전쟁과 한국 현대사를 되새김질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역사는 옛일을 외우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과 생각을 짚어 보는 길잡이니까요. (10쪽 '책을 내면서'에서)

책에는 "왜 전쟁 반대와 평화가 중요할까요"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저자는 아이들이 교과서(초등학교 <사회 6-1>)의 한국전쟁 관련 대목 일부를 배우면서 전쟁과 평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 중요하다면서도 정작 교과서는 이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고 적었다.

저자는 아이들이 전쟁의 원인, 과정, 결과만을 기술해놓은 기존 교과서를 뛰어넘어 한국전쟁이 어떤 전쟁이었는지, 전쟁 반대와 평화를 위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해보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은 듯하다. 역사를 "옛일을 외우는" 일로서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과 생각을 짚어 보는 길잡이"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전쟁에 관한 기존의 시각과 서술이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단순하게 사실을 추려서 달달 외우는 게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실 뒤에 숨은 뜻을 밝혀내는 역사 교육"(10쪽)을 지향한 까닭일 테다.

"단지 미국의 고마움만을 서술하지 않았다 해서 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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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문화일보>의 보도 <反美 · 反이승만 좌편향적 역사책… 부산교육청 ‘이달의 책’ 선정 논란> ⓒ 문화일보


이 책을 '좌편향', '반미'의 관점에서 비판한 언론들은 이러한 점들을 면밀하게 살피거나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내용을 왜곡하고, 그들만의 일방의 잣대로 이념적인 편가르기를 하는 듯한 혐의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이들은 전체적으로 이승만과 미국에 대한 긍정적인 기술이 적다는 이유로 이 책을 비난하고 있다. 가령 <동아일보>는 11일자 기사(<부산교육청, '6·25전쟁 북 미화' 좌편향 역사책 '이달의 책' 선정 논란>)에서 "곳곳에 상식과 거리가 먼 내용들이 담겨 있다"라고 하면서 "책 전체적으로 6·25전쟁 때 미국과 이승만 정부가 민간인 피해를 유발했다는 관점이 반영돼 있다. 국군과 미군, 북한 인민군과 중국군 빨치산 가운데 누가 주적인지 개념도 모호하다"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가 파악한 '관점'에 동의하기 어렵다. 한국전쟁을 '주적'을 바탕으로 기술해야 하는 듯이 보는 '전제' 역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저자의 일관된 '관점'과 '전제'는 "전쟁 반대와 평화"다. 적어도 이런 입장을 따른다면 민간인 피해 유발 주체나 주적 개념 여하는 부수적인 문제다. 굳이 '주체'와 '주적'이 있다면 당시 한국전쟁의 모든 당사자가 아닐까.

책을 낸 철수와영희 출판사도 보도자료에서 "단지 미국의 고마움만을 서술하지 않았다 해서 반미인가? 또한 전쟁 초기 서울시민에게 알리지도 않고 서울을 버렸던, 그래서 서울시민의 피난 기회를 박탈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 반이승만인가? 전쟁 상황에서 민간인 피해를 말하는 것이 좌편향인가?"라며 보수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판했다.

책의 기조나 주제를 일방적으로 재단하면서 폄하하는 문제 외에 저자의 집필 배경이나 동기를 왜곡한 문제 역시 심각해 보인다. 보수언론은 한목소리로 초등학교 교과서가 "잘못돼"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그렇게 해석하게 할 만한 문구는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아이들이 기존 교과서를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못할 것에 대한 실망감이나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을 뿐이다.

보수언론은 이밖에도 책 내용 곳곳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부풀려 해석하고 있다. <문화일보>는 10일자 기사에서 "한국전쟁의 원인이 북한 측 공산화 통일 명분 전격 남침 때문이란 점과 민간인의 엄청난 피해에 대한 첫 번째 원인제공자는 북한이란 점을 거의 기술하지 않거나 도외시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전쟁의 발발에 대해 세 곳(10쪽, 25쪽, 28쪽)에서 "남침"이라고 분명히 밝혀 놓았다.

책에 대한 '마녀사냥'은 퇴행의 증표... 합리적 토론 필요

<문화일보>는 10일자 기사에서 "북한이 입힌 민간인 피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 역시 "북한 등이 작전을 수행하면서 발생시킨 민간인 피해 등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저자는 143쪽에서 "북한군도 다르지 않았어요"라면서 북한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사례 여러 가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보수언론의 지적을 민간인 학살과 관련된 서술 분량의 균형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해당 내용은 "민간인들은 왜 죽임을 당했을까요"라는 제목의 글에 딸려 있다. 국군, 북한군, 미군의 민간인 학살 실태를 '균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주요 관심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저자의 주제의식은 "전쟁 동안 민간인 학살은 제주도에서 백두산까지, 도시에서 산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어졌어요"(146쪽)에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책 전체 주제인 "전쟁 반대와 평화"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해 당시 전쟁 수행 주체를 가리지 않고 수행된 민간인 학살의 야만성을 강조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 현실에서 '좌편향'과 '반미'는 이념적인 낙인의 하나다. 합리적인(?) 토론을 통한 개념 규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만의' 일방적인 잣대로 '좌편향'과 '반미' 낙인이 찍히면 그냥 '좌편향'과 '반미'가 된다.

몇 달 전, 재미동포 신은미씨가 쓴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네잎클로바 펴냄)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됐다가, 이른바 '종북콘서트' 논란에 휩싸인 끝에 선정도서에서 발빠르게 제외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차분하고 합리적인 토론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현재 진행형인 한국전쟁을 이해하기 위해 좋은 책이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전쟁의 근본적인 원인과 결과 그리고 전후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해 해방 전후의 혼란과 한국전쟁의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특히 '삐라'를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설명 방식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른바 보수언론의 하나인 <중앙일보>가 지난해 11월 11일 <10대와 통하는 한국전쟁 이야기>를 '긍정적인 관점'에서 소개하며 쓴 기사다. '좌편향'과 '반미'에 미혹돼 멀쩡한 책을 사장시키는 데 혈안이 된 듯한 또 다른 보수언론들이 참조해야 하는 '관점'이 아닐까. 한국전쟁은 '그들만'의 역사가 아니다.

책에 대한 '마녀사냥'은 묵시록적이다. 퇴행의 증표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미래 가능성을 가늠하게 하는 지성의 크기와 양심의 깊이는 책을 통해 결정된다. 공론장을 통한 합리적인 토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덧붙이는 글 * <10대와 통하는 한국전쟁 이야기>(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 6. 25. / 205쪽 / 1,3000원)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 - 왜 전쟁 반대와 평화가 중요할까요?

이임하 지음,
철수와영희, 2013


#<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 #철수와영희 #좌편향 #반미 #보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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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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