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의 희생 덕에... 그나마 독감 줄인다?

[재미있는 과학이야기 52] 설 명절, 죽어간 유정란을 기려보자

등록 2015.02.16 14:52수정 2015.02.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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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찾아오는 시기는 독감이 기승을 부리는 시즌과 우연인 것처럼 일치한다. 설은 보통 1월 하순과 2월 중순 사이에 들어있게 마련인데, 바로 이 시기 북반구에서는 독감 유행이 절정에 이르곤 한다.

독감 철은 무엇보다 달걀들의 '숭고한 희생'을 한번쯤 되새겨야 할 시기이다. 설 명절 시즌 달걀이라면, 떡국에 들어가는 지단을 연상하기 쉽다. 맛있는 음식 재료로 활용되는 달걀이 고맙기는 한데, 그렇다고 '숭고한 희생'에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독감과 달걀의 희생은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독감 백신의 대부분이 달걀의 희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예비된 생명체나 다름 없는 유정란들이 독감 백신 생산에 사용된다.

독감 백신 제조에 활용되는 유정란, 어마어마한 양

독감 백신에 활용되는 유정란의 숫자는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독감 백신 생산 제약회사로 세계 최대 규모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소모하는 달걀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 드레스덴의 GSK 공장에는 독감 백신 생산라인이 한참 가동되는 9~10월, 하루 평균 36만 개의 달걀이 반입된다. 연간 규모로는 수 천 만개의 유정란이 백신 바이러스 배양을 위해 '제 한 몸'을 바치고 스러져 가는 것이다.

독감 백신 제조회사들의 유정란 소모는 달걀 수요가 큰 식품회사나 제과업체를 제압할 정도로 엄청나다. 가끔씩 독감 백신이 부족해 지구촌 전체에 소동이 일어나곤 하는 해가 있는데, 이는 달걀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탓인 경우가 많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조류독감(AI)이 유행하면서, 백신 제조용 달걀 수급이 차질을 빚곤 했다. 조류 독감에 걸린 닭들이 낳은 달걀은 인간의 독감 백신 바이러스를 키우는 데 적합하지 않다.

설날과 겹치는 독감 시즌, 희생되는 유정란에게 애도를...

미국 식품의약안전처(FDA)가 2012년 세포배양 방식에 이어, 2013년 유전자 재조합 방식의 독감 백신 시판을 허용한 데는 달걀 생산 방식의 단점을 극복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세포배양 방식은 유정란을 극소량만 사용하고, 재조합 방식은 아예 달걀을 쓰지 않고서 독감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생산 단가가 훨씬 비싸서 유정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백신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다.

2014~2015년, 즉 이번 시즌 독감은 유정란의 희생이라는 측면에서 특히 아쉬움이 많은 시기로 기억될 듯하다. 독감 백신의 효율이 역대 최저 수준인 23%에 그치고 있는 탓이다.

유정란을 이용한 독감 백신은 서둘러도 생산에 몇 주가 소모된다. 빠르면 10월부터 시작되는 독감 철에 대비해 제약회사들은 일찌감치 생산 라인을 가동시킬 수밖에 없는데, 보통 매년 2월에 나오는 이듬해 독감 예측이 이번에는 크게 빗나간 것이다.

독감 백신은 3종류 혹은 4종류의 독감 바이러스의 유행을 예상해 만들어진다. 헌데 이번 시즌에는 'H3N2' 계통 바이러스의 예상이 엇나가는 바람에 50~60%였던 예년 적중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1~2월 독감이 유행하는 건 사실 우연이 아니다. 북반구를 기준으로 한다면 연중 이 시기 독감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쉬운 조건, 즉 습도가 낮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까닭이다. 동절기에 조류독감 경보가 흔히 발생되는 것은 공기가 건조한 탓이라는 얘기다.

반대로 여름철 독감이 드문 것은 습도가 높이 치솟기 때문이다. 대기 중의 습도에 따라 독감 바이러스의 전파성이 달라지는 건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그 상세한 메커니즘은 아직 낱낱이 규명되지 않았다.

일부학자들은 최근 이와 관련, 바이러스의 '육포'화 설을 내세워 관심을 끌기도 했다. 공기가 건조하면 독감 바이러스를 품은 물 알갱이들이 마치 육포처럼 물기가 거의 없는 상태가 되고, 이렇게 되면 바이러스가 공기 중을 더 잘 떠다닐 수 있어 전파성이 한결 강해진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 주간지 <위클리 공감>(korea.kr/gongga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독감 #달걀 #설 #건조 #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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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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