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단길만 핫하다? 이 지도 보면 달라집니다

[인터뷰] 대안적 소비 실천을 위한 지도 '바이왓유빌리브' 신혜숙 대표

등록 2015.02.19 20:45수정 2015.02.19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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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합정동에 있는 '바라봄사진관'은 조금 특별하다. 장애인 전용 사진관으로 시작해 이제는 비장애인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들이 낸 돈은 장애인, 노인 등 사회 취약계층이 사진을 찍는 데 사용된다. 또 사진촬영기술이 있다면 재능기부자로 참여해 사진을 찍어줄 수 있다. 사진촬영에 관심 있는 사람은 틈틈이 사진 수업도 들을 수 있다.

남산3호터널 입구에 자리 잡은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서점이기도 하고 카페이기도 하다. 주중 저녁에는 꽃꽂이 수업이 열려 업무를 마친 회사원들이 모여 꽃꽂이를 한다. 주기적으로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카페 구석구석에 전시하고 카페의 수익금 일부를 예술가에게 지원한다. 또 카페 1층 작은 공간에서는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는 서점 '치읓'이 있어 출판물을 만든 판매자와 독자가 직접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서울의 번화가 동네를 떠올리면 그려지는 풍경은 비슷하다. 가는 길목마다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있고 그 옆에는 역시 프랜차이즈 화장품 가게와 빵집이 있다. 정치권에서는 대형 프랜차이즈로부터 골목상권을 지키기 위해서 등록제가 아닌 허가제를 도입하고 상권영향평가를 의무조항으로 개정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논의가 얼마만큼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바이왓유빌리브(Buy What You Believe, www.bwyb.net)'의 신혜숙(45·여) 대표는 작지만 지역사회와 소비자에게 가치 있는 가게를 소개한다. 소비자들의 구매 행동이 골목상권을 살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5일 서울 삼선동에서 그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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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왓유빌리브> 신혜숙 대표 ⓒ 송지희


- 바이왓유빌리브는 어떤 곳인가요?
"기업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시장을 꿈꾸는 단체입니다. 사람들이 동네 가게들을 둘러보고 '아! 이런 가게들이 우리 동네에 가치가 있다. 프랜차이즈랑 달리 이건 우리 동네에만 있는 거야'라고 인식하는 가게들을 추천하면, 그걸 통해서 '대안적 지도'라는 커뮤니티 웹 지도를 만드는 곳입니다. 소비자들이 대안적 소비를 할 수 있도록 '가게지도'를 만들어주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대안적 소비라는 게 어떤 소비인가요?
"대안적 소비란 사회에 가치 있는 소비행위를 지칭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충족시켜주는 소비를 말하죠.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서 개인 가게를 이용하는 것도 대안적 소비가 될 수 있고 친환경 제품이나 공정거래 제품을 이용하는 가게를 가는 것도 대안적 소비가 될 수 있어요. 대안적 소비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으니, 계속해서 많아지겠죠."

"온종일 일해서 기업 배 불려준다 생각하니 허무"


- 어떤 계기로 바이왓유빌리브를 시작하게 됐나요?
"회사를 다니면서 '계속 이렇게 허무한 소비로는 내가 살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비를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려면 내 시간의 일부를 써야 하잖아요.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 번 돈을 기업들에게 쓰고 결국 대형 프랜차이즈 좋은 일만 해주는데, 그 기업들은 저나 가맹점 알바한테나 유통업체한테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함께 사는 세상인데 더불어 살기 위해 소비하는 거 같지 않았어요. 온종일 일해서 기업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소비한다고 생각하니 제 삶이 허무해지더라고요. 커피를 한 잔 마시더라도 상생할 수 있는 소비, 그걸 고민하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 처음에는 어떤 식으로 기획됐나요?
"2007년에 사이트를 처음 만들었어요. 소비자들이 대안적 소비를 실천할 수 있는 가게들을 소개하면서 그냥 볼 사람은 보고 공유하자는 식으로 올렸어요. 첫 사이트는 블로그여서 많은 방문자가 쉽게 검색을 해서 오더라고요. 처음에는 혼자서 할 생각이었는데 몇몇 분들이 같이하고 싶다는 글을 남겨주더라고요. 그러면서 프로젝트 그룹으로 되었어요.

자원활동가라기보다는 서로 공감하는 가치를 실행하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발전하게 됐어요. 그렇게 저 포함해 6명이 모여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어요. 각자의 직업이 있지만 일부러 시간을 쪼개어서 '대안적 지도'를 만들고 있어요. 많은 사람이 좋은 소비를 하고 싶어한다고 느낀 순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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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소비 지도에 나타난 서울시내 착한 빵집들 ⓒ 바이왓유빌리브


-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도심의 노후지역으로 이사해 기존의 저소득층 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으로 그 지역 임대료가 오르거나 지역 특성이 파괴되기도 한다), 골목상권 침해 등 요즘 우리 지역을 휩쓰는 소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가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삶 자체가 상업화되어 있어요. 심지어 인간의 관계도 상업화되어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다보니 정서적인 만족감은 거의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죠. 우리가 생활하면서 소비를 참 많이 해요. 그런데 그 소비 안에는 사람이 없는 거죠.

삶의 과정에 사람의 존재가 없고 그냥 물건을 파는 사람이나 기업과 물건을 사는 소비자만 있잖아요. 소비를 좀 더 사람냄새 나게 하고 싶어요. '소비=삶'인데 소비에 기업이 끼어들면서 인간미를 잃고 있잖아요. 기업들이 그 소비 메커니즘을 주도하면서 거기서 실제로 개인들은 피해를 보고 있잖아요. 그게 노동력 착취나 지역상권이 파괴로 나타난다고 봐요. 소비의 행태가 바뀌어야 우리의 삶도 바뀐다고 생각해요."

- 프로젝트 초반에 비해 지금은 어떤 점이 발전됐나요?
"우리 프로젝트팀 자체가 많이 성장했어요. 뭐랄까, 생각이 밀도 있어졌다고 할까. 처음에 는 단순히 윤리적 소비를 할 수 있는 가게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공정무역을 하는 카페나 기부를 정기적으로 하는 가게들을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막상 가게들을 다녀보니 단순히 공정무역 제품을 사는 걸로 해결이 되는 게 아니라, 가게라는 공간에서 그 이상의 것이 이루어져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소비가 되더라고요. 요즘에는 공정무역, 친환경 제품을 마케팅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데가 많더라고요.

의미 있는 소비활동으로 나아가려면 소비 이상의 무엇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가게 공간에서 일어나는 손님과 주인의 관계, 손님들이 그 가게와 얽힌 추억들, 그리고 그 지역사회에서 가게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답사하는 가게들이 점점 늘어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대안적 소비를 실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가게까지 다 포함해서 간 게 발전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단골부터 동네 얘기까지... 대안적 소비 지도에 이야기 담고파"

- 그럼 초반의 대안적 지도와 지금의 대안적 지도는 많이 다르겠네요?
"처음에는 수제이거나 친환경 제품을 팔면 지도에 등록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가게 안에서 사람들간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유심히 봐요. 결국은 사람이더라고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같은 데는 관계가 없잖아요. 커피를 사도 커피를 수입해온 사람, 커피를 만든 사람 등 제조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소비자간에 관계가 없잖아요.

똑같이 커피를 팔더라도 원두 콩 선정부터 제조, 서빙까지 그 주인의 철학과 그 공간에 자주 오는 사람들의 피드백이 소비를 만들어내는 곳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그 가게 공간을 이루는 요소들을 더 보려고 해요. 사람들에게 어떤 추억을 주는지, 어떠한 공간으로 활용되는지, 동네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이죠."

- 그런 공간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사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잖아요.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내요. 사람을 만나더라도 집보다는 카페에서, 밥을 먹더라도 음식점에서 먹잖아요. 거실, 서재, 음악감상실의 역할을 밖에서 다 해결하고 와요. 나의 세컨드 플레이스는 내 집처럼 나에게 정서적인 편안함을 줘야 하잖아요. 내 공간이라는 느낌을 줘야 하고. 상업적인 공간에 갔을 때와 정서적인 공간에 갔을 때의 느낌이 전혀 다르잖아요.

세컨드 플레이스는 나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들이고 내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니까 정말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공간들이 사람들한테 소비의 공간으로만 한정되는 거 같아요. 프랜차이즈는 사람과 사람의 교류 없이도 운영되고, 뭔가 내가 정서적 안정감을 느낄 공간이라고는 생각이 안 돼요. 그냥 동네 프렌차이즈 카페 가고 그런 게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그곳에 자주 가면 일상이 되거든요. 지금 우리의 문화가 인간미 없고 획일화된 것 같아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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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왓유빌리브> 구성원들이 창간준비호를 들고 있다 ⓒ 바이왓유빌리브


- 올바른 소비가 우리나라의 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보나요?
"사람들이 서울 서촌이나 경리단길 자주 가잖아요. 언론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이다 해서 우리나라가 최근 몇 년 동안 명소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인다고 하잖아요. 이런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일단 자영업자들이 손해를 보고 소비자들에게도 결국 좋지 않기 때문인데, 더 나아가서 보면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많은 동네가 충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예를 들어 사람들은 경리단길이나 서촌처럼 향수를 자극하고 빈티지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소를 원하는데, 그런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몇 안 되는 그런 곳으로) 몰려다니는 거라고 봐요. 사람들이 원하는 콘셉트의 가게가 동네마다 있나요? 아니잖아요. 프랜차이즈만 계속 생겨나는데 프랜차이즈는 20·30대의 그런 욕구를 못 충족시키니까 젠트리피케이션이나 골목 상업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해요.

우리가 동네에서 좋은 소비를 해야 소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결국 그런 고민이 우리 소비와 나아가 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봐요."

- 바이왓유빌리브의 올해 목표는?
"3월에 잡지인 <사람 우주> 창간호를 발행할 예정이에요. 일단 그것부터 잘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이 대안적 소비에 대해서 알게 하고 싶어요.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대안적 소비에 대해 알게 되어 이 논의를 조금 더 밀도 있게 하고 싶어요.

또 지금 대안적 소비 지도는 이야깃거리를 담기가 좀 어려워요. 단순히 무엇을 파는 곳이고 어떤 주인이 운영하는지 설명하기보다는 그 가게에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어떤 분들이고 그 동네에서 이 가게가 어떤 의미를 주는지까지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올바른 소비를 하기 위함이죠."
#대안적소비 #바이왓유빌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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