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는 왜 금서가 되고 말았나

[해설] '위안부 문제 본질 외면' 판단... 박유하 "삭제 이유 없어 '금서' 선택"

등록 2015.02.22 21:24수정 2015.02.2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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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표지 ⓒ 뿌리와이파리

표현은 늘 자유롭지만은 않다. 헌법은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때론 제한한다. ▲ 진실이 아니거나 ▲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니거나 ▲ 피해자에게 중대하고 현저하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힐 우려가 있다면 무조건 자유를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고충정)는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 저서 <제국의 위안부> 일부 내용이 이 세 가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9명이 박 교수와 출판사 대표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이 책의 34군데를 삭제해야만 판매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다만 '박 교수 등의 접근·취재를 막아달라'는 신청은 기각했다.

일본문학을 전공한 박유하 교수는 2013년 8월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그가 이 책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 자발적으로 모집에 응한 사람 ▲ 일본군의 '동지'이자 전쟁의 '협력자'로 묘사하고 ▲ 일본의 법적책임은 없다고 서술하는 등 54곳에서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출판·판매를 금지해달라고 지난해 6월 17일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일본군 위안부'의 본질을 둘러싼 논란

8개월 동안 심리한 끝에 재판부는 그들의 주장을 상당수 인정했다. "일본군 위안부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도 보장받지 못한 채 성적 쾌락 제공을 강요당한 '성노예'에 다름없는 '피해자'"라는 대전제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문제의 34곳에서 묘사하는 위안부의 모습이 이와 다르다고 판단했다. 다음은 삭제 대상 가운데 일부 내용이다.

19쪽 : 센다는 '위안부'를, '군인'과 마찬가지로, 군인의 전쟁 수행을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며 도운 '애국'한 존재라고 이해하고 있다. …(중략)… 어떤 책보다도 위안부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었다.

32쪽 : '가라유키상의 후예(19세기 후반 해외 성매매에 종사한 일본 여성을 가리키는 말).' '위안부'의 본질은 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

265쪽 : 조선인 위안부는 같은 일본인 여성으로서의 동지적 관계였다(기자 주 - 일본군의 동지라는 의미).

박 교수는 이 표현들이 자신의 학술 연구 결과며 개인 견해라고 말해왔다. 또 일부 문구가 아닌 전체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명예훼손으로 지적된 54항목에 대한 답변서'에서 가라유키상의 후예라는 표현의 경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책 본문에 많은 근거 자료를 기술했다고 해명했다. 위안부들이 일본군의 동지였다는 서술은 사실이라며 "이 역설을 인정해야 그 피해를 바로 볼 수 있다"고도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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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고충정)는 지난 17일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일부 내용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9명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모두 34곳을 삭제하지 않으면 판매 등을 금지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박유하 교수는 재판부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삭제를 거부했고, 이 책은 '금지도서'가 됐다. ⓒ 박소희


하지만 재판부는 해당 문구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 사실을 부정한데다 그들이 피해자라는 "본질을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또 그 내용들이 진실하거나 공익적이라고 보지 않았다. 결국 해당 대목들을 삭제하지 않은 채 <제국의 위안부>가 계속 판매·배포된다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가 훼손당할 우려가 있다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었다.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란 말이 집단을 가리키긴 하지만, 정부에 등록한 일본군 위안부는 238명, 현재 생존자는 53명인 점을 볼 때 피해자는 특정된다고도 판단했다.

그런데 왜 일부분은 삭제 대상에서 빠졌을까. 재판부는 해당 문구들은 앞뒤 맥락 등을 볼 때 대부분 박 교수의 의견 표명이라고 봤다. 박 교수가 위안부 강제 동원의 책임을 일본 국가에 물을 수 없고, 1차적으로는 매춘업자 등에게 지워야 한다고 서술한 부분 역시 그의 견해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은 있지만 "헌법상 보장되는 학문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의 보호영역 안에 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자유로운 토론' 대신 결국 법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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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 ⓒ 박유하


"이러한 견해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 등을 통해 시민사회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건전하게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판부는 결정문 끝에서 '시민사회 스스로의 해결'을 원한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기대와 달리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법원 안에 있다.

당장 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도 여의치 않다. 박유하 교수가 삭제 결정을 거부함에 따라 자연스레 '금지도서'가 됐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21일 페이스북 글에서 "책의 일부를 삭제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자주적으로 '금서' 상태를 선택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34개 항목이 명예훼손 우려가 있으니 일단 판매금지요청을 받아들여 둔다는 것이고 명예훼손이라고 최종결론이 난 것도 아니다"는 이유였다.

공은 다시 사법부로 넘어갔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지난해 가처분 신청과 함께 박 교수 등에게 위자료 2억7000만 원을 청구했다(관련 기사 : 위안부 할머니들 "세종대, 박유하 교수 파면하라"). 이 손해배상소송의 첫 변론기일은 3월 25일 오후 2시에 열린다. 표현은 끝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면 또 한 번 자유롭지 못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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