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조선명탐정>? 제대로 헛다리 짚었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 속 화폐 은

등록 2015.02.28 14:29수정 2015.02.2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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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명탐정> 포스터.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영화 <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은 불량 은괴가 유통되는 조선 후기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 속에서 김민(김명민)과 서필(오달수)은 불량 은괴를 유통하는 세력을 응징하는 정의의 사도들이다.

이런 역할을 얼마나 중시했던지, 전직 관료인 김민은 귀양 살던 외딴 섬에서 몰래 빠져나와 사건을 무보수로 처리하고 갈 정도였다. 정부도 모르게 감옥을 빠져나가 사회 부조리를 해결한 뒤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는 김민 같은 공직자들이 많다면, 아마도 세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다뤄진 불량 은괴 유통은 서민층보다는 부유한 지주나 상인층에게 더 현실적인 문제였다. 쌀과 베를 화폐로 사용하던 일반 서민들은 17세기 중반 이후로는 동전을 화폐로 사용했다. 그래서 은(銀)은 일반 백성들의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은은 동전과 달리 휴대하기 편했기 때문에, 주로 원격지와 거래하는 대규모 지주나 상인들이 선호했다. 혹시라도 은에 불순물이 섞이지 않았나 하면서 순도에 신경을 쓰는 이들은 주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상인과 통역관들을 위한 조선시대 중국어 교재인 <노걸대>에도 이런 상황이 반영돼 있다. 이 책에서는 상인이 물건을 판 다음에 좋은 은을 받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이 자주 묘사된다. 

몽골-명-청으로 이어진 동아시아 중심 체제... 세계 통용 화폐 '은'

과거에 은은 금이나 달러처럼 세계 통용 화폐의 역할을 했다. 구로다 아키노부 도쿄대 교수가 여러 국제 학술대회에서 '유라시아 은(銀)의 세기'라는 주제를 다루며 강조하는 것처럼, 은이 본격적으로 세계 통용 화폐로서의 기능을 한 것은 13세기 중반 이후였다.

몽골이 유라시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면서부터, 이 제국의 필요에 따라 은이 그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은이 유라시아 전역에서 전반적으로 통용된 것은 아니다. 원격지나 국가 간 교류에서만 그런 체계가 작동했다. 각국 내부에서는 고유한 화폐 시스템이 작동했다.


몽골이 본격화 한 은이 실물경제를 움직이는 이 시스템(아래 은 시스템)은, 서쪽으로는 영국부터 동쪽으로는 고려까지 영향을 주었다. 고려까지였다는 것은 일본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일본은 여몽연합군(고려·몽골 연합군)이 일본 원정에 실패한 13세기 후반 이래로 몽골과 공식 관계를 단절했기 때문에 이런 세계적 시스템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것은 훗날 일본이 이 시스템을 파괴하는데 앞장서는 동기를 제공한다.

은 시스템은, 몽골제국 이후에 중국을 차지한 명나라·청나라에 의해서도 계속 작동했다. 특히 세금을 은으로 납부하도록 한 명나라의 세제 개혁에 의해 더 활성화됐다. 몽골의 활약에 힘입어 동아시아가 13세기부터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됐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중심국가가 된 명나라에서 은으로 세금을 거뒀기 때문에 은에 대한 중국의 수요는 높아졌다. 이것은 전 세계의 은이 더욱 더 중국 중심으로 유통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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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걸대> 번역서인 <노걸대언해>.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의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경제·역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안드레 군더 프랑크가 <리오리엔트>에 정리해 놓은 바에 따르면, 1545년 이후부터 1800년 이전까지 전 세계에서 생산된 13만7천 톤의 은 중에서 약 6만 톤이 중국으로 들어갔다. 이것은 중국의 3대 수출품인 차·비단·도자기를 구입할 목적으로 세계 각국 상인들이 은을 갖고 중국으로 쇄도함에 따라 나타난 결과였다.

명나라와 청나라는 바다를 폐쇄하는 해금정책을 폈다는데, 어떻게 이 시기에 세계 각국 상인들이 중국에 몰려들 수 있었을까? 해금정책을 펴는 중에도 중국이 몇몇 항구를 개방해서 외국과 무역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해금정책이 펼쳐지는 시기에도 제한적이나마 바다를 통해 교류가 이뤄진 것이다.

공짜 노동력과 공짜 은으로 중국과 '강도 무역'을 한 서유럽

그런데 은을 갖고 중국에 가는 상인들 중에는 탐욕스럽고 부도덕한 그룹이 있었다. 바로 서유럽 상인들이었다.

<간결한 세계 경제사>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국 경제학자 론도 캐머런이 "16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서유럽은 고립된 몇몇 지역의 하나에 불과했다"고 말한 것처럼, 또 <리오리엔트>에서 안드레 군더 프랑크가 "19세기에 유럽 중심적 세계관이 발명되기 전, 그러니까 근세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은 아시아에 의존하고 있었다"고 말한 것처럼, 18세기 말 이전만 해도 유럽은 경제적으로 낙후한 지역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낙후'라는 것은 동아시아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그렇게 발전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서유럽인들은 중국에 갖고 갈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런데 서유럽이 15세기 말 해상 탐험을 통해 아메리카대륙을 확인하는 동시에 전 세계 바닷길에 대한 지식을 확보하고, 이것을 발판으로 16세기부터 아메리카·아프리카에 대한 지배권을 확장하면서부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16세기 이후 서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서 공짜 노동력을 착취하고 아메리카에서 공짜 은을 착취한 뒤 그것으로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교역을 했다. 한 마디로 '강도 무역'을 한 것이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작동되는 은 시스템에 참여하고자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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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때의 중국 광주(광저우) 해관(세관). 이 해관은 은이 세계 통용 화폐이던 시절에 청나라 대외무역의 거점 중 하나였다. ⓒ 김종성


우리도 당연히 은 시스템에 참여했다. 몽골이 세계를 제패할 때는 고려가 참여했고, 명나라·청나라가 중국을 차지할 때는 조선이 참여했다. 조선은 정부 간 혹은 비(非)정부 간 무역을 통해 중국제 물건을 사들이고 그 대가의 상당 부분을 은으로 지급했다.

그런데 조선이 지급한 은은 조선 자체에서 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로 일본의 은이었다. 일본은 은과 동이 풍부한 나라였다. 중국과 국교가 단절된 1551~1871년 시기에 일본은 조선과 무역을 통해 은 시스템에 참여했다. 조선은 일본에 주로 중국제 비단을 팔고, 일본은 조선에 주로 은을 제공했다. <조선명탐정>의 배경인 18세기까지만 해도, 조선과 일본은 이런 식으로 은 시스템에 참여했다.

<조선명탐정>의 시대에 '은 시스템' 지켰다면...

13세기 이후 동아시아의 힘에 의해 유지된 은 시스템은 중국이 아편전쟁(1840~1842년)에 패배하면서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경제 최강대국인 중국을 무역이 아닌 전쟁으로 제압한 영국·프랑스 등 서유럽 열강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은 시스템을 그냥 놔둘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은 시스템에 대한 파괴에 나섰다. 그 결과가 20세기 초반의 금본위제 정착이었다(순금 1온스=391.20달러(1993년)라는 식으로, 통화의 가치를 금의 가치에 연계(連繫)시키는 화폐제도 - 네이버 지식백과).

서유럽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던 것은, 16세기 이래로 아메리카·아프리카에서 공짜 화폐 및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것으로 기반으로 동아시아와 무역을 해서 국부를 축적했기 때문이다. 서유럽의 과학혁명·산업혁명·시민혁명 등은 이런 불공정행위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렇게 축적된 기술력과 군사력으로 중국을 아편에 취하게 만든 뒤 전쟁으로 제압하고 세계 패권을 쥔 것이다.

일본도 이런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의 변방 신세에 머물던 일본은 동아시아 중심의 은 시스템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이들은 19세기 후반에 금본위제 시대를 향한 작업을 서둘렀다.

1880년대 및 1890년대의 중국 해관(세관) 자료에 부록으로 딸려 있는 조선 세관 통계에는,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대량의 금을 반출하는 사례가 많다는 경고의 글이 실려 있다. 당시 조선인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지만, 일본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느라 조선의 금을 빼내간 것이다. 일본뿐 아니라 미국 역시 조선의 금에 눈독을 들였다. 거시적으로 보면, 이것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그들 나름의 준비였다.

<조선명탐정>의 시대적 배경은 서양인들이 동아시아 중심의 은 시스템을 파괴하기 얼마 전인 것이다. 만약 이 시대에 조선과 중국이 동아시아 중심의 시스템을 잘 지켰다면, 아마도 오늘날 서양 중심의 올림픽 대회가 열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올림픽 대회가 열린다 해도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이 1등의 몫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명탐정> 시대의 진정한 문제점은 조선 땅에서 불량 은이 유통되는 게 아니다. 서유럽인들이 불법적으로 착취한 은과 노동력을 기초로 동아시아와 거래하고 있으며, 이것이 동아시아 중심의 은 시스템을 점차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 명탐정 #금본위제 #은본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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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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