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 같은 사람이 그리운 날

한결같은 사람이 그립다

등록 2015.02.27 14:59수정 2015.02.2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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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의 속사정은 제 각기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 나무를 톱질하다 보면 소나무 다르고, 참나무 다르며, 포플러 또한 다르다. 참나무는 나무속의 밀도가 엄청 높아 다른 나무들에 비해 잘 썰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제 특성이기에 좋은 점이나 혹은 나쁜 점이라는 한 편으로 몰아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땔감의 쓰임새로만 보면 단연 참나무가 낫다고 할 수 있다. 밀도가 높으니 오래도록 타는 데다 그 불땀 또한 세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나무는, 높은 밀도만큼 무게도 무겁다.


사람들도 마찬가지, 오래 사귀다 보면 그 사람의 인품이나 성격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나는 한결같은 사람이 좋다. 그런 이유의 하나로 오래 전, 내 아들 이름을 '한결'이라고 짓기도 했다. '한결'이라는 말은 평생 동안 세상을 살아가는 화두로서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런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이 갈수록 부족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들을 사귀다 보면 처음에는 입안의 혀처럼 딱 맞는 것 같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모습이 달라져 놀라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자신의 이익을 좇아 비릿하게 몸을 움직이는 걸 볼 때 정말 실망스럽다. 드러내놓고 말은 할 수 없지만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하다가, 마침내 그런 결과를 보고는 어떻게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할 때가 더러 있었다. 인연이란 내가 만드는 것이기에 또한 내가 그 관계에서 사라질 질 때에야 비로소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영특한 사람도 있다. 그는 모든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한다. 기획력도 높고 창의력도 있어 진취적으로 업무를 리드한다. 암기력도 뛰어나 10여 년 전의 일도 어제처럼 기억해 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아무런 흠결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깊이가 없다. 모든 사람들에게 잘 하려고 해 모두가 좋아하기는 하지만 친밀함의 깊이가 부족하다는 것도 모두 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타고난 재능에 부러워 하지만 한편으로 그 사람의 천심유재(淺心有才)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부분이 있어 다소 위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의 모자람이 평화와 위안을 주는 건 우리 삶에 있어 낯선 것이 아니다. "재능은 쉽고, 선택은 어렵다"고 했던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라는 사람의 고백이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그가 재능을 작게 생각하고 선택을 크게 생각했던 건, 선천적으로 우월하게 타고 났다 해도 일상의 중요한 선택이 잘못될 경우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삶의 다양성을 간파했기 때문 아니겠는가. 재능은 별 것 아니다. 선택이야말로 우리 삶을 지배한다. 이렇듯 세상의 이치는 간단치 않고 그 안에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다.

톱질을 할 때 참나무의 톱밥은 가늘고 작다.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속이 물이라도 머금고 있으면 차분히 오래도록 썰어야 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소나무나 그 밖의 나무들은 톱밥도 크고 일하기도 한결 수월하다. 지게질은 또 어떤가. 같은 크기를 짊어져도 참나무가 배는 무겁다. 그 또한 밀도가 높아서 그럴 것이다. 말린 경우에도 참나무가 훨씬 무거운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적당한 크기로 도끼질해 때는 참나무는 정말 최고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무게만큼 화력이 좋고 오래 타며 완전연소로 인해 재의 양도 적다. 한 마디로 최상의 땔감인 것이다. 그러니 조금 무겁지만 사람들이 참나무를 좋아하는 건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혹시 그래서 그들의 이름에 '참'자가 들어갔을까?

아버지로서 내 아들들이 이런 참나무 같은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그들에게 해줄 건 아무것도 없다. 간곡히 기대할 뿐이다. 나를 포함해 내 주변의 사람들, 내 아내와 동생과 조카들도 그런 사람으로 거듭 태어났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까지 알았던 모든 사람들…… 직장에서, 학교에서 만났거나, 지난 시절 목로주점이나 포장마차의 카바이드 불빛 아래 소주잔을 기울였던 사람들과, 앞으로의 여생에서 내가 알게 될 사람들 모두도 그랬으면 좋겠다. 저무는 날, 그윽한 참나무 그림자에 앉아 참 삶을 더듬고 생의 단단한 의지를 키우는 사람들의 꿈은 얼마나 향기롭겠는가.
덧붙이는 글 무등일보에도 송고했습니다
#산골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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