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믿을맨'으로 돌려막기... 대통령은 변함없었다

비서실장에 이병기 국정원장... 친박 병풍 친 청와대·내각, 부메랑 되나

등록 2015.02.27 17:52수정 2015.02.27 17:52
64
원고료로 응원
a

청와대 비서실장에 내정된 이병기 국정원장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비서실장에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사진)을 내정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10일 넘게 고심해 온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은 결국 자신의 곁을 오래 지킨 '믿을맨'이었다. 박 대통령은 27일 이병기 국정원장을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기용함으로써 연초에 예고한 청와대 및 내각 개편을 마무리했다.

지난 달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 사퇴와 청와대 개편, 소폭의 개각을 예고한 지 46일 만이다.

박 대통령이 두 달여에 걸친 인사 개편을 통해 대선 승리에 공헌한 친박근혜계 인사들을 내각과 청와대에 대거 발탁함으로써 쇄신과 소통을 선택하기보다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줄 친박 친위체제가 더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직 국정원장 발탁... 깜짝 인사라기보다 고육책

우선 이병기 국정원장이 청와대 비서실장에 발탁된 것은 예상하지 못한 파격이다. 이병기 실장은 박 대통령의 원로 자문 그룹의 일원으로 친박 핵심 인사였지만 그동안 한번도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다.

이 실장이 국정원장 임명장을 받은 지 8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최고정보기관의 수장인 현직 국정원장을 청와대 비서실장에 발탁한 사례는 전례를 찾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현직 국정원장을 차출한 것은 깜짝 인사라기보다는, 그동안 숱하게 지적 받아왔던 '돌려막기 인사', '수첩 인사'라는 비판과 외교안보라인의 잦은 교체라는 부담을 감수한 고육책에 가깝다.


쇄신책으로 야심차게 내밀었던 이완구 총리 카드가 실패한 후 고심을 거듭했지만 믿고 맡길 사람이 이 실장 외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 인사를 앞두고 이 실장 외 여러 후보들이 비서실장직을 제안 받았지만 고사하거나 결격 사유가 발견돼 인선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사퇴가 기정사실이 된 상황에서 10일 동안이나 비서실장 인선이 기약 없이 미뤄져 왔다.

이 내정자도 청와대행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 실장은 이날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여러 번 사양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서실장직을) 받아들였다"라고 말했다.

변하지 않은 박 대통령의 스타일... 여당에서도 쓴소리

박근혜 대통령(자료사진) ⓒ 청와대


이번 인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인재풀이 여전히 좁고, 쓴 사람만 쓰는 인사 스타일도 당분간 변하지 않으리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 실장은 박근혜 정부 초대 주일대사로 기용된 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남재준 국정원장이 사퇴한 후 지난 해 국정원장에 전격 발탁됐고, 이번에 다시 청와대로 옮기게 됐다. 집권 24개월 만에 보직이 세 번이나 바뀐 셈이다.

전형적인 돌려막기 인사에 대해서는 여당에서도 쓴소리가 나오는 등 집권 3년차 국정운영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정원장 한 지 얼마 안 된 분이 가서 그 부분은 조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여권에서는 이 실장이 외교관으로 출발해 정부와 청와대 및 국정원을 두루 거치고 '여의도 정치'에 오래 몸담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당청 관계는 물론 대야 관계 조율을 무리 없이 해낼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또 이 실장이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군 출신과는 다르게 '비둘기파'로 분류돼 경색 국면이 장기화하는 집권 3년차 남북관계와 한일관계에 있어서도 박 대통령에게 조언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반면 정치권에 몸담으면서 오랫동안 비서 역할을 해온 이 실장이 과연 박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쓴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차떼기·북풍... 검은 그림자 아른거리는 비서실장의 과거

게다가 이 실장이 비선실세 의혹 파문과 연말정산 파동 등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토막이 난 상황에서 구원투수 역할을 잘 해낼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 실장의 기용은 소통 강화와 국정 쇄신이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인사라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국가안전기획부 시절부터 국정원에 몸담았던 이 실장에게는 북풍 공작, 차떼기 등 과거의 검은 유산이 늘 따라다닌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정치 특보였던 이 실장은 이인제 의원 측에 "한나라당에 유리한 역할을 해달라"며 '차떼기'로 모금한 5억 원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난 해 7월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 실장은 "제 일생일대 뼈아픈 실수다. 100번 사과 드린다"고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또 이 실장이 강하게 부인했지만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공작이던 안기부의 '북풍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도 받았다. 

야당에서는 "음지에서 일하는 정보기관의 수장을 국정운영의 중심인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한 것은 사상 유례없는 잘못된 인사"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청와대 비서실장에 최측근 인사를 기용하면서 새로 신설하는 정무특보단에 윤상현·김재원 의원 등 국회에서 친박계 '호위무사' 역할을 해온 의원들을 발탁해 친위 체제를 강화한 것을 두고는 여당에서도 탐탁치 않아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소통에 문제를 드러낸 윤두현 홍보수석을 내보내고 김성우 사회문화특보로 교체하긴 했지만 기대에 못미친다는 지적이다.

국민 뜻 반영 없는 고집 인사... 부메랑 되나

집권 3년차를 맞이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병기 비서실장 기용을 통해 전면적인 쇄신과 변화보다는 익숙함을 선택했다. 청와대와 내각에 친박 인사들을 대거 포진해 바닥으로 떨어진 국정동력을 끌어올리고 국정 난맥상에 대한 비판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시간을 끌다 타이밍을 놓치고, '바꾸겠다'는 의지보다는 '지금 이대로'라는 메시지를 담은 이번 인사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박 대통령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회의론이 만만치 않다.
#박근혜 #이병기
댓글6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