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 우표로 되살아난 '영원한 별밤지기'

'우체국장 아들' 고 박승철씨 천체 사진 담긴 특별 우표 나와

등록 2015.03.01 20:18수정 2015.03.0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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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사업본부에서 27일 발행한 특별 우표 '밤하늘 별자리 이야기'는 고 박승철씨가 생전에 촬영한 천체사진들이 담겨있다. ⓒ 김시연


27일 아침 특별한 우표를 구하려고 일찍부터 서둘렀다. 우정사업본부에서 이날 양자리, 황소자리 등 황도 12궁과 계절을 대표하는 목동자리, 백조자리 등 별자리 16가지를 담은 '밤하늘 별자리 이야기' 특별 우표 160만 장을 발행한 것이다.

16장의 별자리 우표들에는 아름다운 밤하늘 사진을 배경으로 그에 얽힌 그리스 신화가 어우러져 있다. 뿐만 아니라 모양도 기존 사각형에서 벗어나 '별자리 지도(성도)'처럼 원형으로 배치돼 있어 수집 가치가 높다. 하지만 이 우표들엔 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밤하늘 별자리 우표로 돌아온 '영원한 별밤지기'

우표 속 별자리 사진은 모두 아마추어 천문인들 사이에 전설로 남아있는 고 박승철(1964-2000)씨 작품이다. 박승철씨는 2000년 12월 29일 37년이란 짧은 생을 마치기까지 천체 사진가이자 망원경 제작자, 천체관측 교육자, 과학 저술가로 활약한 아마추어 천문가다(관련기사: 한여름 별빛축제와 별지기의 추억)

특히 국내 첫 천문 월간지인 <월간 하늘> 편집장을 맡아 국내 아마추어 천문학의 저변을 넓혔고 천문학 비전공자로서 국립 천문대 운영요원으로 활동했다. 그가 찍은 1000여 장에 이르는 천체사진들은 아직까지 각종 천문학 관련 서적에 인용될 정도로 독보적이다.

"대부분 과학 분야에서 아마추어의 영역이 없는데 왜 천문학에서만 아마추어 천문이라는 영역이 있는 것일까? 첫째로 하늘은 너무 넓은데 천문학자는 너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대한 우주 공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먼저 아마추어의 눈에 발견된 뒤 나중에 전문가에게 보고가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는 것이다."(박승철, 나만의 별 찾아 헤매는 밤하늘의 사냥꾼, <신동아>, 2000년 2월호)

1964년 3월 5일 화왕산이 있는 경남 창녕군 도천면 우체국장 아들로 태어난 박승철씨는 당시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는 영상을 보고 나서 별에 꽂혔다. 박씨가 서강대 재학시절 만든 천문 동아리 일기장 1권에는 자신의 초등학생 시절 경험담이 실려 있다.


"1973년에서 1975년 사이 여름날 어느 저녁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굉장한 눈요기를 했는데 혜성이었다. 초저녁 서쪽 하늘에 걸린 이 거대한 혜성이 나의 삶을 결정지어 버렸다."

박씨는 이후 천문학과 진학을 꿈꿨지만 몇 차례 고배 끝에 서강대 영문학과에 들어갔다. 애초부터 전공엔 관심이 없었던 박승철은 1987년 서강대 천문 동아리를 만들어 천체 관측과 망원경 제작에 몰입했다. 당시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하던 천체 망원경이 한 대에 수백만 원에 이르는 고가여서 두꺼운 유리를 사다 수만, 수십만 번씩 연마기로 갈아 반사경을 만든 것이다. 당시 같이 활동했던 심재철, 김지현, 이한주 등 후배들은 민간 천문대인 안성천문대를 만드는 등 지금까지 아마추어 천문학계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

일용잡부에서 소백산 천문대 운영요원으로



<월간 하늘>을 그만둔 박승철씨는 1993년 5월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운영하는 국립 소백산 천문대를 무턱대고 찾아갔다. 일용잡부라도 좋으니 천문대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고 실제 두 달 동안 돈 한 푼 받지 않고 잡일을 하다 망원경 조작을 담당하는 운영요원으로 채용됐다.

물론 정식 연구원은 아니었지만 천문학 전공자도 아니면서 천문대에서 일한다는 자체가 그 당시로선 큰 화제였다. 중학교 중퇴 학력으로 천문대 수위를 거쳐 세계적 천문학자가 된 밀턴 휴메이슨과 비교될 정도다. 

대학 동아리 후배 한종현은 "선배는 이론적인 연구보다는 관측자로서 사는 게 인생 목표였다"면서 "세계 유명 천문대들을 쭉 모아 놓은 사진을 보며 이런 데서 일 안 하면 죽어버리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박승철씨는 이후 1998년 12월까지 5년간 소백산 천문대에 있으면서 1994년 목성과 충돌을 앞둔 슈메이커-레비 혜성, 1996년 햐쿠타케 혜성, 1997년 헤일-밥 혜성 사진 등을 남겼고 일부는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천체사진가인 조상호씨는 "이 무렵 님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국내 아마추어 천문의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당당히 끌어올린 것"이라면서 "실제로 90년대 대혜성인 햐쿠타케 혜성이나 헤일-밥 혜성 사진들과 별자리 사진들은 외국의 최고 사진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룰 정도"였다고 평가했다.

소백산 천문대를 그만둔 박승철씨는 민간 천문대 운영에 참여하면서 천체관측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자신의 고향인 화왕산 정상에 개인 천문대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겨울 한 사설 천문대 행사에 다녀오는 도중 교통사고로 숨지면서 그 꿈은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

한종현씨는 "선배는 개인적인 성과보다 아마추어 천문학 저변 확대에 힘쓴 대중적인 과학자였다"면서 "선배의 노력 덕에 오늘날 국내 아마추어 천문가 실력과 장비들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고 저변도 훨씬 넓어졌다"고 평가했다.

박승철씨가 뜻밖의 사고를 당하기 불과 20일 전에 인터넷에 직접 만든 '밤하늘 풍경'이란 홈페이지는 지금도 가족들이 계속 관리하고 있고 <성운성단 산책> 등 그가 생전에 쓴 책과 사진들은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지금 그가 찍은 천체사진들로 별자리 우표가 발행되기에 이른 것이다.
#박승철 #별자리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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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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