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의 굴레를 초월하는 '눈물'

[그림책이 건네는 세상살이 이야기3] 사노 요코의 <100만 번 산 고양이>

등록 2015.03.03 09:25수정 2015.03.0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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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었던 땅이 시나브로 녹아들고 따뜻한 햇살과 솔솔 부는 바람이 솔솔 느껴지는 3월이다. 딱딱하게 말랐던 겨울나무에 새 움이 뜨고, 꽃샘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개나리의 노란 봉우리가 고개를 들 무렵, 우리는 '봄'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말이다. 봄의 생명들은 마치 죽었던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계절이라는 윤회의 굴레에서 숨죽이고 있던 생명이 깨달음으로 다시 태어나 화려한 꽃으로 탄생하는 걸까?


생명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죽으면 그 업에 따라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을 우리는 '윤회'라고 부른다. 불교의 교리에 따르면, 부처의 지위(열반)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의 삶은 여기에서 저기로 혹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돌아가며 거듭나게 된다고 한다. 깨달음이 있어야 비로소 평안한 천국, 아니 극락왕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사노 요코의 <100만 번 산 고양이>는 이러한 윤회의 굴레를 기분 좋게 벗어난 고양이 한 마리를 소개한다. 백만 년이라는 억겁의 세월을 사는 동안 이 고양이는 얼마나 제 잘난 맛에 사는지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면서도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자신을 귀여워하고 자신의 죽음을 애도한 그 누구를 위해서도 눈물 흘리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을 싫어한다.

그러나 어느 날, 백만 년 산 고양이가 길에서 사는 도둑고양이(요즘 우리는 이들을 '길양이'라고 부른다. 음식물을 훔쳐 먹는다 해서 붙여진 도둑고양이의 명칭은 이제 길에서 살아야하는 안타까운 고양이의 삶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담아 '길양이'라는 이름으로 진화했다)로 다시 태어난 날, 그는 아름다운 그녀, 하얀 고양이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또 알콩달콩 새끼 고양이까지 낳고 행복한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하얀 고양이는 할머니가 되어 조용히 세상을 떠나게 되고 백만 번 산 고양이는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또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백만 번이나 운다. 그리고 조용히 하얀 고양이 곁에서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고양이가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게 된 초월점이 '사랑'이라 생각하게 된다. 자신만을 사랑하며 누구도 사랑하지 못한 고양이가 하얀 고양이를 열렬히 사랑하며 인생 최고의 가치인 '사랑'이라는 깨달음을 갖게 됨으로 윤회의 굴레를 벗어난 듯하다. 또는 고양이를 사랑한 그 사람들의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며 진짜 사랑을 가르쳐 준 하얀 고양이와의 사랑을 통해 윤회의 늪을 벗어난 듯하다. 하지만 아니다. 고양이가 갖게 된 그 깨달음, 초월점은 바로 '눈물'이다.


'눈물'은 오로지 '깨달음'에서 비롯되는 산물이다.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가치를 지닌다. 물론 인간은 진정한 사랑을 느낄 때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 뿐이 아니다. 인간이 눈물을 흘릴 때는 인생의 보석 같은 '가치'를 깨달았을 때이다. 진리의 가치, 나눔의 가치, 희생의 가치, 사랑의 가치. 가치를 깨닫지 못한 자들은 눈물을 모른다.

'눈물'은 차가운 땅을 녹이는 촉촉한 봄비이다. 더러운 세상을 씻어 내리는 소낙비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때로 어둡고 암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눈물'을 잃은 이들 때문이다.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들 덕분이다.

나라를 잃은 서러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이들이 이 땅의 독립을 이루었고, 민주화를 위해 흘린 뜨거운 눈물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오늘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눈물은 가진 것 없는 이들의 희망이 된다. 하지만 오늘도 우리가 흘려야할 눈물은 많다.

아직도 울고 있는 세월호의 그들과 함께 울고, 삶에 지쳐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는 그들과 함께 울고, 소외된 곳에 외로움에 떨고 있는 그들과 함께 울자. 힘없는 민초들의 눈물이 힘 있는 자들의 눈물이 될 때까지 울자. 울다 울다 백만 번쯤 울다 가슴으로 울게 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은 달라져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노 요코 #100만 번 산 고양이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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