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한강대교 폭파... 그런 일이 있었냐고?

아픈 역사 간직한 한강 다리 곳곳, 자전거·도보 탐방으로 '딱'

등록 2015.03.11 20:11수정 2015.03.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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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텃밭 한강대교 중간에 위치한 노들섬에 있는 노들텃밭. 텃밭 뒤로 한강대교 아치가 보인다. ⓒ 곽동운


현재 서울시와 관련된 한강 다리는 몇 개일까? 총 26개다. 지난해 11월 구리암사대교의 임시 개통으로 26개로 늘어났다. 동쪽 강동대교에서부터 서쪽 신행주대교까지 한강변을 따라 늘어서 있는 다리들은 한강철교와 같은 열차 전용 교량도 있고, 방화대교처럼 자동차만 다닐 수 있는 다리도 있다. 물론 사람과 자동차가 동시에 이동할 수 있는 교량이 대다수다.

서울의 팽창과 함께 한강에도 차곡차곡 다리들이 놓이게 됐다. 한강 다리들은 '한강의 기적'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상징물이 된 것이다. 한강 다리 교각 아래로 우리의 근현대사가 흘러갔고, 또 흐르고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셈이다. 역사성만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만의 색깔이 강한 다리들도 생겨나면서 한강 다리를 따라 도보 탐방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보행로의 확장과 연결로 정비 등으로 한강 다리 자체가 트레킹 코스로 자리 잡은 것이다. 


현대사 비극 품은 한강대교

한강에 처음으로 들어선 인공 교량은 한강철교다. 1900년도에 들어선 한강철교는 말 그대로 철도 전용 다리였기에 일반 사람이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지금이야 교통카드만 있으면 전철을 타고 느긋하게 한강을 넘어갈 수 있지만, 옛날 구한말의 백성이 기차표를 쉽게 끊을 수 있었겠는가?

일반 백성이 편리하게 한강을 넘을 수 있게 된 건 1917년부터였다. 한강 인도교라고 불렸던 한강대교가 개통됐기 때문이다. 한강철교 제작 때 남은 자제들로 건설되어서 그런지 개통 당시 한강대교는 대교(大橋)라는 말이 어울리지는 않았다. 중앙 차로 부분이 4미터, 좌·우측 보도 부분이 각각 1미터, 총 6미터의 폭이었기 때문이다.

한강대교는 당시 경성 사람들의 나들이 장소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룻배에 의존해 도강해왔던 한강을 느긋하게 걸어서 건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무척 신기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한강대교는 그 긴 역사만큼 큰 아픔도 가지고 있다. 한국 전쟁 시기였던 1950년 6월 28일 다리가 폭파됐기 때문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서울 함락이 눈앞에 이르자 당시 이승만 정권은 한강대교 폭파라는 극단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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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철교 63빌딩 부근에서 촬영했다. ⓒ 곽동운


폭파 작전은 기습적으로 감행됐다. 당시 한강대교에는 수많은 피난민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어떠한 사전 통보도 없었다. 그래서 500명이 넘는 피난민들이 폭파와 함께 생명을 잃거나 한강에 수장됐다.

어처구니가 없었던 건, 당시 시내에서는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음성이 계속해서 퍼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때 이승만 정권의 수뇌부는 이미 대전으로 피난을 간 상태였다. 수도 서울을 버리고 시민의 피난 행렬을 묶어둔 채 앵무새처럼 녹음 방송만 틀어댔던 셈이다.

한강대교 폭파로 군사적인 피해도 엄청났다. 한강 북부에 남아 있던 국군의 퇴각로가 봉쇄됐기 때문이다. 만약 순차적인 퇴각이 이뤄졌다면 국군은 한강 이남에서 전열을 정비해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할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1950년 7월 14일에 전격적으로 단행된 전시 작전 통제권 이양도 없었을 수도 있었다.

분명 한강대교 폭파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그런 사실들을 모르는 듯했다. 필자가 몇 차례 걸쳐 한강 다리 트레킹을 진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한강대교가 끊겼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는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리가 끊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도 절단한 주체를 잘못 알고 있었다. '미군의 공중 폭격으로 교량이 폭파되지 않았냐'고 물었던 참가자도 있었으니까. 필자는 한강대교 설명을 마칠 때 이런 말로 항상 마무리를 지었다.

"인민군의 남침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한강대교 폭파에 면죄부가 부여될 수 없지요. 자기는 안전하게 대전에 내려가 있으면서 서울을 사수하겠다고 거짓말이나 해대고... 그게 바로 이승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칭송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뭘 건국했다는 건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선유도를 품고 있는 양화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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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대교 선유도에서 촬영한 사진임. ⓒ 곽동운


지금은 그런 명칭이 통용되지 않지만 예전에는 '제1한강교', '제2한강교'처럼 한강 다리에 번호들이 매겨졌다. 제1한강교는 앞서 언급한 한강대교이고, 제2한강교는 이번에 소개할 양화대교다. 1965년 양화대교가 들어서기까지 한강에는 인도교가 두 개밖에 없었는데 한강대교와 1936년에 준공된 광진교가 바로 그것이었다. 둘 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양화대교는 우리나라 기술진에 의해 한강에 만들어진 최초의 인공 교량이 된 것이다.

양평동과 합정동을 연결하는 양화대교는 서울 서남부권의 교통량 해소라는 목적과 함께 서부전선의 물자 수송을 위한 군사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건설됐다. 그래서 유사시에는 군사 작전에만 이용하도록 그 용도가 제한됐다. 양화대교는 선유도를 품고 있어 한강 다리 트레킹을 하기에 가장 좋은 다리다. 또한 합정동 방면으로는 절두산 성지를 지척에 두고 있어 역사 탐방까지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다.    

선유도는 처음엔 섬이 아니었다. 원래는 선유봉(仙遊峰)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말 그대로 신선들이 노닐었다는 선유봉은 맞은편 잠두봉과 함께 중국 사신도 즐겨 찾았다는 절경이었다. 잠두봉은 뽕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인데 흥선대원군 시절 절두산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지금은 천주교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선유봉은 일제 강점기 때 여의도 비행장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채석 작업이 이뤄져 그 높이가 점점 낮아지게 됐다. 해방 이후에도 채석 작업이 진행됐고 결국, 그 원형을 잃게 됐다. 이후 한강의 강폭이 넓어져 섬이 되었고, 1978년 그 자리에 정수장이 건립됐다가 지난 2000년에 폐쇄됐다. 선유도 공원은 그 정수장을 개조해 만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선유도의 역사는 곧 한강 개발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그런 아픔을 품고 있는 선유도는 한강을 찾는 서울 시민의 좋은 휴식처가 됐다. 선유도는 산책하기도 좋고, 소풍 가기도 좋은 곳이다.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확 트인 한강을 넘어 인왕산과 남산, 멀리 북한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잠수교와 잠실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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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교 한강다리들 중에 가장 접근성이 좋은 다리. ⓒ 곽동운


한강에 있는 다리를 직접 걸어서 건너다보면 자연스럽게 순위가 매겨진다. 그 중 단연 1등은 잠수교다. 도보로 한강 다리를 건널 때 가장 중시되는 부분은 진·출입의 편리성이다. 다리에 설치된 보행로는 만족스럽지만, 다리 자체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잠수교는 보행로뿐 아니라 진출입의 편이성에서도 최고점을 받기에 충분했다. 한강 시민 공원에서 바로 잠수교로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잠수교는 795m로 한강 다리 중에서는 가장 짧다. 넓게 확보된 보행로와 진·출입의 용이성, 거기다 최단 거리로 한강을 건널 수 있기 때문에 잠수교는 한강을 가장 편하게 건널 수 있는 다리 1위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한강 다리 중에는 지하철과 속도 경쟁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바로 잠실 철교가 그곳이다. 1979년 10월. 지하철 2호선의 일부 구간으로 개통된 잠실철교는 교량 중앙에 철로가 있었고 양옆에는 도로가 놓여 있었다. 약 4미터 정도의 폭을 가진 이 도로는 현재 자전거 도로와 인도로 사용되고 있다.

이 자전거 도로를 따라 전동차와 속도 경쟁(?)을 벌이는 라이더들도 있다. 그만큼 잠실철교는 자전거와 전동차가 나란히 달릴 수 있는 공간인데 그 간격이 가까워 전동차에 탄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찰될 정도다. 달리 말하면 전동차에 탄 승객들이 라이더가 힘들어하는 모습도 쉽게 관찰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전동차를 따라잡겠다고 너무 세게 페달을 밟지는 말자.

한강은 큰 강이고, 이와 비례해 담긴 이야기도 아주 많다. 봄날을 맞이해 한강을 직접 건너보는 건 어떨까? 한강과 한강 다리에 녹아 있는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건너보는 것이다.

"님아, 이 강을 걸어서 건너보세요! 대신 옷은 따뜻하게 입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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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철교 전동차와 나란히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잠실철교 ⓒ 곽동운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길 위의 인문학 역사트레킹(http://blog.daum.net/artpunk)에도 실렸습니다.


● 한강다리 트레킹 추천 코스

1. 양화대교 - 한강대교 구간: 합정역 ▶ 절두산성지 ▶ 양화대교 ▶ 선유도 ▶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 63빌딩 ▶ 한강철교 ▶ 노들텃밭(한강대교)

2. 이동거리: 약 10km / 소요 시간: 약 3시간(휴식시간 포함)
#한강다리 #한강대교 #한강철교 #양화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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