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가 흔들리는 이유... 이명박 보면 안다

대통령 기록조차도 임의로 활용하는 한국, 미국이 참 부럽다

등록 2015.03.13 17:38수정 2015.03.1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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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의 이메일 사적 이용 논란이 미국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힐러리 전 국무장관이 재직시절 개인 이메일로 6만여 개의 메일을 주고받은 것이 <뉴욕타임스>에 의해 폭로됐다. 그중 3만여 건은 폐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힐러리는 이 논란에 대해 "전혀 보관할 필요가 없는 개인적인 내용이어서 폐기"했다고 밝히면서 다만 "어떤 형태로든 업무와 관련된 것은 국무부가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논란으로 힐러리는 차기 대선후보 입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미국사회에서 이메일 개인 사용이 왜 문제가 되는지 그 역사를 알아야 한다. 1980년 후반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바로 이란-콘트라 사건이다.

흔들리는 힐러리, 하지만 MB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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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 사용논란 해명 기자회견 힐러리 미 전 국무부 장관이 지난 10일, 뉴욕 UN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 국무부 재직 시절 개인 이메일을 사용한 것에 대해 기자 회견을 가졌다. ⓒ 연합뉴스/EPA


"이 사건은 "국가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NSC)가 레바논에 억류되어 있는 미국인 인질을 석방시킬 목적으로 비밀리에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고 그 대금의 일부를 니카라과의 반군에 지원한 사건이다. 이란에 대한 무기판매는, 전쟁 중인 이란에 지원하지 않고 테러리스트와 흥정하지 않는다는 미행정부의 공식입장에 위배되는 것이며, 반군에 대한 지원은 반군에 대한 일체의 직접적·간접적 지원을 금지한 의회의 볼런드 수정법을 위반한 것이다." - 두산백과사전 중에서

당시 이 사건의 조사와 폭로과정에서, 연루된 주요 인사들이 사건 관련된 전자메일의 삭제와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더 큰 논란이 되었다. 그 결과 이전까지는 개인의 것으로 간주되던 이메일 그 자체가 하나의 '기록'으로 간주되어 기록성·공적보존·보안 등 공적 영역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1993년 미국 공공기관은 이메일을 기록관리의 대상으로 포함하게 됐다. 그런데 이번 힐러리의 개인 이메일 사용은 위 사건들을 연상 시켜 부정적 여론을 키울 가능성이 높다. 현재 시행중인 '연방기록법'도 위반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사건을 우리 공공기관의 실태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나라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은 이메일을 공적 기록으로 보존하도록 규정하는 조항 자체가 없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많은 공직자들은 공적기록으로 남는 공식적인 공문 수·발신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고 개인 이메일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공공기관에서 이메일을 공적으로 보존 및 공개했다는 소식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실제 이명박 정부 시절, 내부 제보를 통해 발각된 사건이 있다. 청와대 행정관이 용산참사 사건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당시 발생했던 '군포연쇄 살인사건'을 활용하라는 홍보지침을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이메일로 보낸 것이다. 뿐만 아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생산한 수많은 내부 파일을 '디가우저'로 파괴한 사건까지, 기록에 관해 벌어진 수많은 법 위반 사례를 잊을 수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의 국무장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직책인 대통령이 생산한 대통령기록에 대해서도 외부에서 전혀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재직시절 생산되었던 비밀기록 전체를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묶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이 심각한 이유는, 비밀기록은 책임 있는 공직자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중요기록'이라는 점이다.

비밀기록 엉터리로 관리한 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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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차 사이판 다녀 온 MB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출간된 지난 1월 3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이 전 대통령은 가족들과 사이판에서 휴가를 보내고 귀국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에 도착한 이 전 대통령이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오르고 있다. ⓒ 남소연


쉽게 말해 이명박 정부 시절 생산된 비밀기록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 책임자들도 반드시 참고해야 하고, 이 기록을 근거로 급변하는 한반도 사태를 대변해야 한다. 보안업무 규정은 비밀기록을 "비밀"이란 "그 내용이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국가 기밀로서 이 영에 따라 비밀로 분류된 것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록들을 이명박 전 대통령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묶었고, 이와 관련해 비밀기록으로 유추할 수 있는 수많은 내용들을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이라는 형태로 일반인들에게 공개해 버렸다. 일부 전문가들은 책의 내용이 너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혹시 비밀기록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하고 있다.

실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서는 대통령기록관에 가서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누가, 언제, 어떤 방법으로 대통령기록을 열람했는지 공개하라는 요구에 대해 대통령기록관 및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입을 닫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필자는 미국의 이번 이메일 논란이 놀라우면서 부럽기까지 하다. 주위에도 도대체 공직자가 개인 이메일을 사용한 것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다.

공직생활 중 생산되는 기록을 공적으로 보존해야 할 중요가치로 생각하지 않고, 무원칙으로 훼손 및 활용하는 한국 공적 영역의 맨얼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전진한 기자는 알권리연구소 및 세상을 바꾸는 꿈이라는 단체 창립준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002년부터 정보공개 및 기록관리 운동을 해왔으며 명지대기록관리대학원에서 기록관리 공부를 했습니다.
#이메일 기록 #힐러리 #이명박 #대통령기록 #이란 콘트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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