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한복판에 흉가 만든 학교 이사장, 왜?

[기획-인천대, 분쟁사학에서 국립대학법인으로②] 이사장 백인엽의 부정부패

등록 2015.03.22 14:12수정 2015.03.2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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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후 비리 사학에 구 재단 이사들이 복귀하고 있다. 그들이 쫓겨난 뒤 평화롭게 발전하던 대학들이 다시 혼란에 빠진 반면, 만연한 사학비리에 대한 감시는 손을 놓아 버렸다. 교과부는 매년 사학에 대한 감사를 통해 비리를 적발해 왔으나, 2010년에는 아예 감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반면, 비리 사건에 연루된 사학의 이사장과 대학 총장들이 특별 사면됐고,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는 그들을 정이사로 복귀 시켰다.

이에, 1980년 대표적 비리 사학인 선인학원이 어떻게 시공립화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등 교육의 85%를 차지하는 사학이 제자리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 기자 말

선인학원 학원민주화 투쟁 당시 주된 동력은 인천대학교 학생이었다. 인천대 학생들이 학내 집회 후 ‘백인엽 퇴진’ 등의 구호를 연호하며 학내를 돌고 있다.<사진출처ㆍ디지털인천남구문화대전> ⓒ 한만송


1편 <분쟁 사학, 선인학원을 아시나요?>에 이어서 씁니다

9900명 부정 편입학, 61억 원 받아

전두환 독재정권은 집권 초 개혁정부의 모습을 보인다. 당시 일부 부정 축재자가 걸려 들었다. 사학 비리가 만연하다 보니 백인엽 이외에도 경희학원 원장, 명지대 계열 회사인 명지건설 대표 등의 덜미가 검찰에 잡혔다.

당시 문교부 감사에서 선인학원의 비리도 하나하나 밝혀졌다. 1979년 1월부터 무려 9900명을 부정한 방법으로 편입학하게 했다. 기부금 61억 원 중 상당액을 백인엽이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백씨는 1981년 3월, 비밀계좌에 넣은 61억 원 중 7억 5000만 원을 빼내 경기도 광주 땅 1200평(약 4000m²)을 7000만 원에 사들여 가족묘지로 조성했고, 1980년 5월에는 1억 1000만 원하는 투자용 개발신탁 수익증권을 샀다. 1억 1800만 원은 생활비와 캐딜락 승용차 관리비 등으로 지출했다. 4억 원은 서울 충무로 2가에 있는 2층짜리 점포를 자신의 명의로 샀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1981년 3월 5일부터 11일 사이 인천대학 편입시험에서 떨어진 학생 중 이아무개(22)군 등 8명으로부터 부정 편입학 대가로 1인당 500만~1000만 원의 찬조금을 받아 비밀계좌로 관리하다 검찰에 압수당했다. 백씨는 그의 처와 가공인물 등 5명의 이름으로 은행에 비밀계좌를 개설했고, 비밀계좌의 돈을 학교 운영에 사용하지 않고 유용했다. 당시 드러난 비리는 일부에 불과했다.

권위주의 정권시절 선인학원 학원민주화 투쟁은 제도 문제로도 번졌다. 옛 선화여상 담벼락에 적힌 구호. ‘노태우정권 타도하자’라는 구호가 현재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 한만송


'군바리 정신'으로 불법확장 한 선인학원

백인엽은 1964년 10월부터 1981년 3월 사이 남구 도화동 235의 1번지 등, 여덟 필지의 대지 16만 3700평에 연면적 4만 3897평의 인천대학 교사(校舍) 등, 교사 8개를 85억 원을 들여 건축한 후 준공 검사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사용했다. 또한 1973년 9월부터 1979년 4월까지 불도저 등을 8대 사들여 이를 등록하지 않고 교사 건축 공사에 사용하기도 했다.

선인학원이 들어선 도화동 일대는 해발 152m의 '부채산(부채 모양의 산)'이었다. 이곳엔 중국인 공동묘지와 월남한 피란민들의 판잣집이 들어차 있었다. 백씨가 이곳에 선인왕국을 세운 것이다.

백씨는 학교를 확장하기 위해 먼저 이른바 '도깨비 집'이나 '유령의 집'을 만들었다. 원주민들이 공포와 불안에 떨다 헐값에 집을 팔게 하기 위해 마을 한가운데 집을 사들인 후 반쯤 부숴 유령의 집처럼 만든다. 중국인 공동묘지도 외교적 문제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장 시켰다.

백씨는 선인학원 초·중·고교 교사와 학생들을 사병처럼 다뤘다. '돌 하나 나르기 운동' 등을 전개해 오전 수업이 끝나면 학교 신축 공사장에 투입했다. 학생이나 교직원에게 '백 장군님'이란 호칭 듣기를 즐겼다고 한다. 무자격 교사들을 채용해 돈을 챙기고, 또한 이들을 퇴직금도 주지 않고 내쫓기 일쑤였다. 백씨가 이렇게 축적한 돈은 2000억 원이 넘는다는 소문이 당시 파다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isisa.net)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선인학원 #백인엽 #비리사학 #6군단장 군사 독직 사건 #인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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