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은 피하고, 질타엔 공격... 김무성의 처세술?

[주장] 묵찌빠 같은 말로 비판 피하고... 청춘을 만만하게 보나

등록 2015.03.26 15:50수정 2015.03.2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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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찾아 온 김무성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 백남음악관 입구에서 ‘문화비즈니스와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을 위에 강단으로 오르고 있다. ⓒ 이희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연일 화제다. 김 대표는 '청년'을 주제로 삼은 행보의 일환으로 지난 23일 신림동을 방문했고, 25일에는 한양대학교에서 강연을 했다. 가난한 청년들의 주거밀집 지역인 고시촌에서 정부 정책의 실패를 비판하는 피켓시위대를 마주치기도 했으나 "오래 전부터 계획된 방해세력"이라고 24일 발언하며 비판했다. 한양대 특강에서는 "사회 혼란 때마다 배후조종하는 종북세력"을 거론하면서 국론 분열의 책임을 회피했다.

김 대표는 비판을 피해가는 방법으로, '배후'를 지목하면서 불순한 의도라고 지적한 셈이다. 자신을 향한 질타를 '공격'으로 치환하는 방어적인 태도는, 청년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시작한 '청춘무대'의 의도와 꽤 거리가 멀어보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후에 내세운 주장이다. 신림동 고시촌을 방문한 이후에 김 대표는 청년 주거문제를 언급했다. 이어서 한양대학교에서는 '경제발전'과 '통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강연의 주제로 삼았다.

'주차문제'와 '층간소음'이 청년 주거문제라니

지난 23일, 김무성 대표는 서울 관악구에서 청년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신림동 인근 북카페에서 청년 1인가구의 고충을 듣겠다는 취지였다. 김 대표측의 방문은 주거문제가 심각한 서울에서 청년들이 발 딛고 살기 힘든 처지를 헤아리겠다는 자세인 듯 보였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런데 대화가 계속되면서 뜬구름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김 대표가 청년 1인 가구의 층간 소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물론 층간소음 문제가 최근 각종 사건에서 화제가 된 것은 사실이고, 문제의 해결책이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보증금 없는 고시촌에 거주하는 청년들을 만나서 하기에 적절한 것일까? 이런 문제의식은 층간소음이 아니라, 얇은 벽에 옆 방의 낮은 기침소리마저 고스란히 들리는 고시텔의 현실을 전혀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꼴이다.


뒤이어 자리를 함께 했던 김성태 의원이 한 발언도 비슷한 차원의 인식을 보여준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 의원은 원룸 등 다가구 주차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내 집 마련'조차 힘들어 고시촌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에게 '주차 공간의 협소함'이 고충임을 이해한다고 말한 상황인 것이다. 한 평 남짓 크기의 방에서 먹고 자는 사람의 처지를 간접적으로나마 겪어봤다면, 과연 주차를 시급한 해결과제로 거론할 수 있었을까?

유흥가와 고시촌이 만나는 신림의 상반된 풍경만큼이나, 집과 차가 없는 청년들에게 '층간 소음', 혹은 '주차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주장은 상당히 동떨어진 소리일 뿐이다. 이를 언급한 이들로서는 고심 끝에 내놓은 대책일지 모르겠으나, 이해당사자인 고시촌 주거민들에게는 그저 '현실을 겉도는 정치'를 다시 한 번 체감하는 순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청년과의 만남'을 위한 자리에서 피켓을 들고 비판의 목소리를 낸 청년들을 무시한 것은, 도대체 누구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인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청년 주거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겠다면 이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의식이 필요했다. 태도와 내용에서 모두 민망한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이날의 행사가 당시 참석한 4·29 재보궐선거 관악을 새누리당 후보를 알리기 위한 자리였다면 더욱 그랬다.

자유를 유보해서 경제발전? 5·16 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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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기 위한' 자유의 포기 박정희 시대는 '잘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합리화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자유는 연탄가스처럼 위험한 것이어서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의 유신 홍보물. ⓒ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제공


25일 모교를 찾은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더욱 거침없었다. 한양대학교에서 학생들 앞에 선 김 대표는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자유를 유보해서라도 경제를 빨리 발전시켜야 한다. 이게 박정희 대통령의 5·16 혁명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이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수진영 찬양'이 의도였다면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매우 착잡할 따름이다. 그들만의 '권력'을 위해 시민의 '자유'를 유보시킨 쿠데타를 미화한 비유도 문제지만, 더욱 안타까운 부분은 문장을 끝맺은 논리에 있다.

군사반란이 경제발전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도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집권여당 대표의 입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슬픈 일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오늘날의 한국은 21세기로 접어든 민주주의 사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랑스럽다는 것과, 그의 행적이 모두 정당하다는 것은 분명 별개의 주장이다. 전자의 감정이 후자의 사실관계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1948년 이후 민족 최고의 중흥기를 이룩하고 있다"면서도 "국민소득 2만8000달러 갔지만 다시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공포심을 자극한 발언도 참담한 수준이다. "잘 살기 위해서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박정희 시대의 표어를 되풀이한 김 대표의 발언은, 한국이 "비약적인 경제의 발전,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말과 어긋난다. 이제 "민족 최고의 중흥기를 이룩"했다고 말하고선, 오늘날에는 무엇을 위해 자유를 제한하자는 말인가? 이는 보수진영을 자랑할 때는 'G20 경제대국' 대열에 진입한 발전 규모를 언급하면서도, 비판에 대응할 때는 '언제 경제가 위기에 빠질지 모른다'고 말을 바꾸는 식이다.

5·16을 미화하며 '경제발전을 위한 혁명'으로 왜곡한 김 대표의 언변은 마치 상황에 따라 손가락을 접었다 펴는 묵찌빠놀이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위가 날아들면 주먹을 불끈 쥐다가도, 상대방이 주먹으로 응수하면 빈 손을 열어보이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니까 말이다. 비판에 대한 반박과 합리화를 위해 발언 속의 현실이 파도처럼 놀랍도록 출렁거릴 정도다.

활짝 편 손으로 사과를 요구한 피켓시위대에게 악수라도 청했다면 조금이라도 소통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한양대 특강에서 "한 국가의 경제는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어떤 정책을 잘 써서 확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청년문제의 책임을 외면하는 손사래로 그쳤다.

기억한다, '도와주세요' 피켓 들었던 그를

지난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와주십시오' 피켓을 들고 읍소작전을 폈던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의 모습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던 와중에 그는 피켓을 들고 섰다. 그리고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도와주면 다 바꾸겠다'던 말은 승리 후에는 선거철 홍보문구로 머물고 말았다.

지난 23일 신림동에서 김 대표가 만난 피켓은, 작년을 기억하는 청년들의 절박한 물음은 아니었을까 싶다. '도와달라'던 정당이 선거가 끝나자 돌변한 태도에 "공약을 지키라"고 외치고, "고시촌에서 죽어간 청년을 아느냐"고 되물은 셈이다. '경제발전'과 '통일에 대한 인식'을 언급한 특강에 대해서는 또 이런 비판에 부딪힐지도 모른다. '발전된 경제의 혜택은 누구에게로 갔느냐'고, '비판에 대한 인식은 언제 바뀌느냐'고 말이다.

'로봇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 제작으로 홍보를 시도한 김무성 대표로서는 청년 문제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법으로 인해 소통은 여전히 풀지 못한 과제로 남았다. 자신에게 가해진 비판에 모두 '불순세력'으로 몰아가는 '종북론'으로 일관한다면 반응은 더욱 싸늘해질 것이다. 유권자를 향한 태도변화가 깊게 각인된 현재로서는 더욱 그렇다.

임시방편적 대책이 아닌 확실한 현실개선을 위해서는 자세를 적극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오늘날 경제는 침체되고 청년실업률은 11.1%에 달해 IMF 이후 15년 만에 최대치에 달했다. 청년들조차 희망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는 이미 천천히 죽어가는 상태라는 자각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현실을 힘겨워하며 미래를 비관하는 청년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반값등록금일까, 아니면 최저임금 대폭 상승일까? 쉽고 빠르게 답을 찾으려는 시도에 앞서 명심해야 할 한 가지는, 적절한 선택사항 중 어디에도 진영논리를 위한 '색깔론'은 없다는 사실이다.
#김무성 #5·16 쿠테타 #청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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