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기자=기레기' 이 소리 안 듣길 바라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214] 조능희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등록 2015.03.28 13:41수정 2015.03.2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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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방송 후 저를 체포하러 온 정치검사들과 수사관들을 막았던 조합원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제는 조합이 저를 필요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어요?"

지난 16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아래 MBC 노조) 11대 위원장으로 취임한 조능희 PD(피디)의 말이다. 앞서 단독 출마한 조능희 PD는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된 MBC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98.2% 찬성률로 당선했다.

인천 출신으로 서울대에서 불문과를 졸업한 조 위원장은 1987년 MBC PD로 입사해 <경찰청 사람들>과 <다큐스페셜>등의 교양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았고, 2008년 <PD수첩>의 CP(책임프로듀서)를 맡아 활약했다. 또한 1997년엔 노조 홍보국장을 역임했다.

사실 MBC노조 위원장 선거는 2월이었으나 한 차례 연기되었고, 언론에서는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일 것'이라는 추측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었다. 지난 23일,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MBC 사옥 내 노조사무실에서 조 신임 위원장을 만나, 위원장 선거가 한 차례 연기된 사연과 해직자 문제 그리고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조 신임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겨울이 길고 추워도 싹은 움틀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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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능희 신임 MBC노조 위원장. ⓒ MBC노조


- 지난 16일 취임했으니 일주일이 지났어요. 어떻게 보내셨어요?
"일단, 노조 살림이 굉장히 커요. 게다가 170일 파업 후 회사의 손배가압류와 해고자 임금보전 등으로 수입과 지출이 단순하지 않아요. 그 살림살이를 새로 꾸려진 집행부와 함께 인수받았습니다. 현재는 앞 집행부가 추진하던 업무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영진 반응까지 고려하려니 경우의 수가 많네요.

지난주 목요일(19일)에는 170일 파업을 이끈 집행부의 업무방해죄 2심 결심 공판이 있었어요. 1심 국민 참여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것인데, 검찰은 이번에도 징역 3년과 2년을 구형하더군요. 검찰의 구형 다음에 저희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하는 변론을 하고 피고인들은 최후 진술을 했지요.


위원장이 되어서 방청하는 재판이라 느낌이 좀 다르더군요. 변론과 최후 진술을 들으며 울컥하는 것을 억지로 참았지요. 이번 공판에서는 김재철 사장의 당시 측근으로부터 파업에 대한 사측의 주장이 허위임을 밝히는 의미 있는 진술이 나왔어요."

- 어떤 내용의 진술이었나요?
"법원에서 (파업이)불법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 중에 회사가 파업에 대비를 못하게 갑자기 전격적으로 했는지 여부가 있는데, 당시 파업을 회사가 예측하고 있었다는 것이 당시 김재철의 측근이었던 경영진의 진술로 확인된 것이죠. 지금까지 현 경영진은 조합에 불리하게 하려고 몰랐었다고 주장해 왔는데 그게 허위라는 것이 드러났어요."

- 업무파악은 얼마나 하셨나요?
"저희 조합원들이 가진 목표는 정확해요. 공정방송과 자유언론이죠. 그런 목표를 위한 업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직접 회사를 상대하는 세세한 여러 업무들은 공부해야 할 것이 있어요. 아직 전체 집행부가 모여서 회의한 적은 없고요. 개인 휴가를 낼 수 있는 전임자 몇 명이 먼저 업무 인수인계를 시작해서 오늘(23일) 오후 전체 회의를 할 예정이거든요. 아직도 파악하는 중이죠."

- 당선 소감으로 "겨울의 찬바람이 아무리 매섭고 춥더라도 봄바람에 움트는 새싹을 막지 못하듯이, 방송독립과 자유언론을 향한 우리의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무슨 의미인가요?
"어머니가 팔순입니다. 장독대 화단에 상추 심는 것을 도와주면서 어머니께 들은 말입니다. 이 얘기를 조합원들에게 해주고 싶었어요. 공정방송을 가로막는 사람들의 인생도 길게 보면 하찮은 거예요. 봄이면 새싹이 솟아나는 자연의 이치는 거스를 수 없잖아요.

저희가 MBC에 들어온 건 좋은 방송을 하려 온 건거니까, 그걸 못하게 하려고 아무리 부당해고, 부당징계, 부당전보를 해도 결국엔 공정방송을 하려는 가치와 원칙이 봄바람의 새싹처럼 되살아난다는 거죠.

박정희 독재와 이어지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서 아무리 많은 언론인을 해고하고 탄압했어도 결국 언론자유의 싹은 돋아나서 열매를 맺었죠. 이는 역사가 증명해요. 8명이 해고당했어도, 방송독립과 자유언론을 향한 우리의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지요."

- 외부에서 MBC노조를 두고 '노조가 죽었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노조활동을 해도 MBC보도가 나아진 것이 없지 않으냐고 우려하는 것이지요. 저희가 직접 방송하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보이지만, 계속 회사에 옳은 방송을 하고 왜곡하지 말라고 지적하면서 기록하는 일은 하고 있어요. 당장은 안 보이더라도 결국은 효과가 있을 겁니다. 지금 효과가 안 보인다고 노조가 아무것도 안 한다거나 죽었다는 것은 맞는 말이 아니지요. 겨울이 길고 추워도 싹은 움틀 겁니다."

- 적지 않은 나이잖아요. 한 인터뷰를 보니 해직언론인들이 권유를 뿌리치지 못해서 위원장을 맡았다던데...
"아마 저에 대한 기대가 있었겠지요. 제가 <PD수첩> 광우병 방송으로 겪은 여러 가지 경험이 있잖아요. 저를 감옥에 넣으려는 정치검사들의 비열한 행태를 잘 겪어냈으니, 위원장 일도 잘 할 수 있겠다고 기대하는 것 같아요. 조합의 현 상황을 그렇게 해석하는 분위기가 있지요.

사실 그런 일을 잘 헤치고 나올 수 있었던 건 조합 덕분이거든요.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치 검사의 MBC 유린을 막아줬고, 조합의 힘을 빌려서 많은 압력을 물리치며 거의 모든 소송에서 이겼죠. 아마도 저만큼 조합 덕을 많이 본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걸요?

항상 조합원에게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저에게 조합원들이 기대하는 것도 있고요. 그래서 이런 인연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게다가, 아무리 나빠 봤자 해고잖아요. 그런데 해고자들이 저에게 권유하는데 그걸 어떻게 거절하겠어요. 능력이 부족할까 걱정되었을 뿐이지요."

- 처음 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왔을 때, 어땠어요?
"조합 일을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뒤집어 보면 제가 바로 그 '다른 사람'이 된 거지요. 저에게 처음 제의가 왔을 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인데, 그게 나라면 어쩔 수 없다'란 생각을 했어요. 이 말은 23년 전 제가 AD일 때 어느 PD선배가 조합 전임자가 되면서 저에게 한 말이에요. 제가 입후보하면서 그리고 취임하면서 누누이 조합 창립 정신을 따르겠다고 했는데, 그건 이런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나요?
"나한테까지 올 줄은 예상 못했죠. 그러나 제안이 왔을 땐, 외면할 수는 없었어요. 저는 광우병 방송 후 저를 체포하러 온 정치검사들과 수사관들을 막고 있는 조합원들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해요. 그런데 이제는 조합이 저를 필요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어요?" 

- 2월에 위원장 선거가 한 차례 연기되었잖아요. 그때는 어떤 상황이었어요?
"제가 일주일만 후보 등록을 연기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근데 그게 일주일만 연기되는 것이 아니라 절차상 다시 공고해야 하고, 공고 한 달 후 선거한다는 규정이 있어서 늦어진 거죠."

- 왜 일주일 연기를 요구하셨어요?
"사실, 걱정이 되었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적임자인가 생각했고, 걱정하는 가족들과 이야기를 할 시간도 필요했고요. 그래서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 일부에선 위원장을 할 사람이 없어서 무산됐다가, 조 위원장이 다시 나선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아니었나봐요?
"위원장 후보는 많을수록 좋지요. 제가 바로 등록했으면 재공고를 안 해도 되었을 텐데, 규정을 잘 모른 제 불찰도 있지요. 일주일 연기했는데, 결과는 한 달이 늦어졌어요. 조합원들이 집행부를 꾸리고 그중에 누군가는 위원장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안 될 이유가 생기면 헤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것이 인연이겠지요. 그렇게 위원장 후보들을 찾다가 저에게 온 것이고요. 저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인연이 있었던 것이겠지요."

- 1월에 예능국 소속이었던 권성민 PD가 인터넷에 웹툰을 올렸다는 이유로 해고 되었잖아요. 그 시기가 위원장 선거할 때라 조합을 흔들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하는 견해도 있던데...
"권성민 PD의 해고는 소가 웃을 일이죠. 현 경영진의 무원칙과 권한남용, 비판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힘을 써야할 공영방송사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고요. 이렇게 부당한 일들이 자꾸 벌어지니까 MBC와 MBC경영진에 대한 냉소가 확산되고 있지요.

결국은 이런 경영진을 선임하고 비호하는 정부여당에게도 부담이 되고 있어요. 집행부 교체기에 조합을 흔들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은 지나친 생각이고요. 다만 '그동안 조합원에 대한 부당한 일들이 얼마나 반복되었으면, 오죽하면 그런 견해가 생겼을까'라고 이해할 수 있겠네요."

"현재 8명 해고자... 안광한 사장이 해결할 수 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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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능희 신임 MBC 노조 위원장이 23일 노조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MBC노조


- 지난 집행부도 파업 후유증을 치유하려고 노력했지만, 부족한 것 같아요. 아직도 남아있는 파업 후유증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느 누가 집행부를 해도 부족하단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업무를 인수받다 보니 전 집행부의 고민과 노력들이 훨씬 더 이해되었지요. 신구집행부 합동회의에서 제가 진심으로 고맙고 수고하셨다고 했어요. 남은 과제는 우리들의 몫이죠. 취임하고 일주일 동안 가장 생각나는 것이 법정에 간 것이라 했잖아요. 이것도 일종의 파업 후유증인데 이런 것을 포함해 여러 후유증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죠.

그러나 후유증에는 장단점이 있어요. 우리 조합원들은 그렇게 부당한 탄압을 받고도 이탈자가 거의 없이 조직을 지켰어요. 눈앞의 이익보다 원칙과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부당한 탄압이 계속되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소송에서 저희가 이겼고 조합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으니 앞으로도 잘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 이탈자가 없다고 하셨는데... 비제작 부서 전보로 인해 오상진, 문지애, 최현정, 최일구 등 아나운서나 기자, PD들의 퇴사가 줄을 잇고 있는데 이건 어떻게 보세요?
"퇴사하신 분들은 모두 170일 파업을 우리와 함께 했지요. 우리 조합의 가치와 원칙을 여전히 존중하는 분들이죠. 그분들께 '이탈'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아요. 그것은 사측의 부당한 인사권 남용에 대응하는 개인의 방식 차이일 겁니다. MBC가 길러낸 인재들인데요, 언젠가 함께 일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어요."

- 해고자 복직 문제에 진전이 없는데, 복직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김재철 사장조차 해고자 2명을 복직시켰어요. 결자해지란 말이 있잖아요. 지금 해고자들은 현 안광한 사장이 김재철 사장 밑에서 부사장 겸 위원장으로 있던 인사위원회를 통해 양산된 것이지요. 현재 해고자 8명 모두에게는 안광한 사장의 낙인이 찍혀 있어요. 그래서 결자해지란 말이 나오는 것이고, 안 사장이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저도 김재철 사장시절 안광한 인사위원장으로부터 3개월 정직을 받았는데 법원에서 무효판결을 받은 적이 있어요. 1심 2심에서 모두 승소했거든요. 그때 회사는 저의 월급과 휴가를 돌려줬어요. 안광한 사장도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다는 거죠. 사측이 파기한 단협에는 1심판결을 존중한다는 조항이 있거든요.

그건 MBC에 노동조합이 생긴 1987년 이후로 사측과 지켜온 정신이에요. 그런데 그걸 팽개치고 끝까지 간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MBC 구성원들이 현 경영진을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이 문제는 현 경영진이 풀 수 있고요, 또 풀어야합니다."

- 오는 4월 1일 2012년 170일 파업에 대한 해고 및 정직징계 소송의 2심 공판이 진행되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 거라고 전망하세요?
"상식과 정의가 있는 법원이라면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릴 거라고 봐요."

- 임기가 2년이잖아요. 임기 내에 꼭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공정방송 복원이죠. 공정방송협의회에서 당당하게 회사와 토론하면 좋겠어요. 작년에 기자협회 50주년 기념으로 현업 기자를 상대로 신뢰도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MBC를 신뢰한 기자는 303명 중에서 단 2명이었죠. <한겨레>는 71명, KBS는 39명의 기자가 가장 신뢰한다고 답했어요. 단 2명이라니요? 조합원들은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고 싶은 거죠. 적어도 MBC기자는 국민으로부터 '기레기'라는 소리를 안 들었으면 좋겠고, 현장에 나가서 돌팔매질 당하고 카메라 깨지고 '니들 가라'는 소리를 안 듣길 바라요."

- 마지막으로 각오와 함께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깨어있는 시민이 후원하는 매체들과 언론이 좋은 거죠. '요즘은 MBC 안 봐' 란 소리 들을 때 저희는 참담하고요. 그런데 적어도 <오마이뉴스>는 그런 면에서는 부럽지요. 이제는 'MBC만 봐'란 소리를 다시 듣도록 조합원들과 함께 노력해요. 할 수 있어요. 왜냐면 그때 방송하던 사람들이 여전히 MBC에 남아 있거든요. 여기저기 방송 못하는 곳으로 쫓겨나 있을 뿐이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 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능희 #MBC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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