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말년, 주호민, 조석... 전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서평] 위근우의 웹툰 작가 탐방기 <웹툰의 시대>

등록 2015.04.01 16:58수정 2015.04.0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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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만화'라는 장르가 죽어가는 분야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각종 만화 잡지가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후 만화방이 대거 늘어나면서 단행본을 구매하는 사람의 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더불어 출판 시장의 하락세가 겹치면서 만화계의 불황은 갈수록 심해졌다. 이에 '만화가는 굶어 죽기 쉽다'는 말이 퍼지기도 했고, 독자적인 만화 시장이 형성된 일본과 비교되면서 씁쓸한 현실이 지적돼온 바 있다.

그러나 오늘날, 위 이야기는 사뭇 달라졌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이 만화를 볼 수 있게 됐다. 길거리나 사무실 혹은 출·퇴근길 대중 교통에서도 웹툰 감상은 익숙한 풍경이 됐다. <미생> <닥터 프로스트>같은 드라마와 <은밀하게 위대하게> <패션왕> 등의 영화도 화제의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이 정도면 바야흐로 '웹툰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소 사그라지던 만화의 인기가 인터넷과 만나면서 '웹툰'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거듭난 것이다. 한동안 잃었던 입지를 순식간에 되찾자, 웹툰의 가능성을 알아본 포털사이트들이 나섰다. 그렇게 포털엔 웹툰 연재 게시판이 생겨났다. 최근에는 웹툰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이트 <레진 코믹스>가 인기를 얻고 애플 서비스를 시행하면서 또 다른 만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위근우 <아이즈> 기자의 책 <웹툰의 시대>는 이런 배경과 상황을 모두 정리해 담았다. 일단 겉으로는 네이버 웹툰 사업부의 제안으로 진행한 인터뷰 기사들을 모은 것인데,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느낌이 또 색다르다. 장르와 작품, 작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솔직한 감정이 차곡차곡 쌓인 글이 책장마다 가득하다.

위근우가 만난 24명의 웹툰 작가들

<웹툰의 시대> ⓒ RHK

<웹툰의 시대>는 위근우 기자가 네이버 웹툰에 작품을 연재한 24명의 웹툰 작가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모아 엮은 책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한겨레> 토요판 '웹툰 내비게이터' 코너와 현재 재직 중인 <아이즈>에 썼던 원고들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웹툰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할 질문들, 각 작품의 제작 과정도 엿볼 수 있다. 여기에 작품론과 작가에 대한 저자의 비평도 더해졌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질 작가들의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신과 함께>의 주호민, <이말년 씨리즈>의 이말년, <마음의 소리>의 조석 작가 등이 대표적이다. 심리학이나 스릴러 등 웹툰 안에서도 특정 장르를 추구하는 작가를 조명한 것도 눈에 띈다.


시니와 혀노처럼 두 명이서 짝을 이뤄 작업하는 작가 팀들을 인터뷰한 부분도 흥미롭다. 이렇듯 웹툰을 다양한 장르와 성격 별로 세밀하게 나눈 책의 구성이 독자의 이해를 친절하게 돕는다. 미처 읽어보지 못한 웹툰이라도, 일상적인 대화에서 거론되면 어느 정도 '읽어본 척' 할 수 있을 정도랄까.

'기존의 형식을 파괴한 리얼리티 예능 웹툰'의 예로는 정다정 작가의 <역전! 야매요리>를 꼽았다. '야매'에 가까운 작가의 요리 노하우에 그림을 감칠 나게 더한 것이 매력인 이 웹툰은, 작가가 투영된 야매 토끼 캐릭터에 온갖 '드립'과 '병맛' 의성어가 가미된 작품이다. 작가가 직접 요리를 해보면서 얻은 특유의 레시피와 유머 감각이 매력이고, 때로 사진을 추가하는 '포토툰'을 선보이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신선함도 드러냈다.

"소금을 소금소금 뿌린다"는 식의 식재료 이름을 활용한 의성어(혹은 의태어) 멘트나 패러디 등 작가 특유의 개그 센스도 센스지만, 역시 <역전! 야매요리>의 가장 큰 매력은 요리에서 부담을 제거하면 예능이 남는다는 걸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개그 센스가 요리를 재밌게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여기선 요리 자체가 예능이다.

'야매'라는 말에서도 가늠할 수 있듯 그의 요리 방식은 정해진 재료와 최적의 레시피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를 위해 요리를 엉터리로 망치는 건 아니다. 혹자는 '야매'로 요리를 만들다가 실패하는 것이 이 만화의 즐거움이라 말하지만, 그보다는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이 만화의 진정한 즐거움이다." (본문 74쪽 중에서)

작품마다 다른 흥미 요소와 특이점, 작가의 성격과 작품에 반영된 생각을 짚어낸 것도 인상적이다. 문화 비평 매체에서 기자로 일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웹툰의 장르적 특성이나 작가의 미모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숨은 매력을 찾아내서 알려준다. 작품이 주는 느낌을 표현한 지점에서는 웹툰 팬으로서의 솔직한 감상이 드러나기도 한다. 위근우가 만난 24명의 웹툰 작가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작품처럼 하나같이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로 가득 차 있다.

작가로서의 고뇌와 뒷 얘기까지

"나는 흔히 방아쇠가 당겨진다고 표현하는데, 그렇게 머릿속에 부유하던 소재들이 붙는 순간이 있다. 아마 다음 만화도 그렇게 방아쇠가 당겨지는 시점부터 시작하게 되겠지." (본문 18쪽 중에서)

책의 첫 부분인 주호민 작가 인터뷰에서 인용한 발언이다. "이승과 저승의 신에 대해 공부하다가 용산 참사가 터지는 걸 보면서 <신과 함께> '이승편'을 만들었다"는 그가 소재 착안의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발상을 방아쇠라고 표현한 것도 재밌지만, 다큐멘터리나 시사를 다룬 뉴스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는 부분은 그의 다음 작품이 무엇이 될지 기대하게 만든다.

소재를 얻는 방법도 제각각이고, 인터뷰의 방향도 작가마다 다르게 흐른다. 학창 시절부터 입시 미술을 공부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운명처럼 작가의 길로 들어선 사람도 있다. 디자인 전공을 바탕으로 "그림으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결국 같다"며 웹툰 작업을 해나가는 작가도 있고, 심리학과 출신으로 '이야기를 파는 지식 소매상'처럼 심리학을 다룬 웹툰을 연재하는 작가도 있다.

한편에선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웹툰 연재를 시작하면서 악플과 회의감에 부딪힌 경험을 토로하기도 한다. 스릴러 장르의 웹툰을 그리는 황준호 작가는 "정서적으로도 내용 전개도 너무 힘들다"고 고백한다. 그에 대해서, 작품 세계와 달리 "선량한 얼굴과 뽀얀 피부에 심지어 교회까지 다니는 유머러스한 젊은 작가"라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고 저자는 썼다. 저마다 작업하며 느끼는 고충도 작가가 된 계기도 천차만별이다. 마치 그들이 그려내는 웹툰 속의 세계와 메시지가 색색깔로 다른 것처럼 말이다.

각각 스토리와 그림을 맡아 팀으로 일하는 두 명의 작가는 어떻게 분업을 이뤄냈는지 설명한다. 처음엔 의견 대립이 있었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작업을 했다고 말한다. 분명 각자 표현하려는 바와 욕심이 다르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웹툰의 시대>는 이와 같이, 웹툰 작가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작품에 담긴 의미와 함께 그들이 말하는 작가로서의 고뇌와 뒷얘기까지 담았다.

웹툰의 존재 이유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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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 네이버


"누군가 내 만화 덕분에 월요병이 없어졌다고, 혹은 우울했는데 작가님 만화 보고 견딘다는 메일을 받으면 기운이 난다"는 김진 작가의 고백은, 독자와 소통하며 얻은 동기 부여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웹툰이라는 장르가 존재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대중이 만화를 보는 이유도, 누군가 이를 그리는 까닭도 어쩌면 결국에는 '즐거움'이라는 한 단어에 압축되어 있는 셈이다.

매주 반복되는 마감의 압박 속에서도, 심리적 부담과 육체적 피로를 이겨내고 연재를 이어가는 작가들의 심정도 아마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비롯된 듯하다. '휴재의 유혹'을 딛고 창작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작은 모니터 안의 세계'가 주는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프로게이머'처럼 '웹툰 작가'가 "초창기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후 가장 이질적이고 새로운 성공 서사의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웹툰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발전한 특유의 문화라는 것이다. <웹툰의 시대>는 다양한 작품의 서사와 배경, 의미를 차분하게 짚어낸다. 웹툰이 어떤 이유로 현재의 열광적인 인기를 얻게 됐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위근우씨는 웹툰이라는 새로운 기반 위에서 만들어낸 흐름을 기록하느라 출판에서 두각을 드러낸 작품을 담아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드러낸다. 또한 네이버가 아닌 다른 플랫폼에서 활약한 작가들을 포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도 언급한다. 본문에 수록된 솔직담백한 인터뷰들은, 웹툰을 향한 저자의 관심과 진심 어린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물일 것이다.

자신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위해 노력을 쏟는 작가들의 모습에서, 하루 620만 명의 방문자를 낳는 포털 웹툰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웹툰을 사랑하는 인터뷰어의 자세까지 은은히 담은 이 책은, 제목처럼 현재 열린 웹툰의 시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24명의 작가와 작품에 더해서, 젊은 창작가의 고민까지 말이다. <웹툰의 시대>는 먼 훗날에 웹툰이라는 장르를 돌아볼 때 필요할 역사의 기록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웹툰의 시대>(위근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 / 2015. 3. 3. / 1만4000원)

웹툰의 시대 - 웹툰 전성기를 이끄는 젊은 작가 24인을 만나다

위근우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 2015


#웹툰의 시대 #위근우 #네이버 웹툰 #조석 #주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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