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지켜온 동아리에 한 명도 안 들어온다네요

[아이들은 나의 스승 34] 문 닫을 위기 놓인 문화유적답사 동아리

등록 2015.04.02 17:46수정 2015.04.0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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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동아리 첫 답사 때 뒤풀이 장면 답사를 마치면 항상 짜장면을 먹으면서 평가회를 했다. 그때의 장면을 한 아이가 필름 카메라로 담아 그 아래에 간단한 '메모'를 남겼다. ⓒ 서부원


꼭 17년 전 이맘때쯤이다. 교사로 부임한 첫 해, 전공과 취미를 살려 문화유적답사 동아리를 새로 만들었다. 초임 교사로서 살아있는 역사 수업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있기도 했지만,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책과 씨름하고, 방학 때조차 등교해야 하는 아이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도 있었다. 그즈음 한창 '답사'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이기도 했다.

여느 동아리 같으면 선배들의 몫이지만, 동아리 홍보를 위해 직접 각 교실을 돌아다녔다.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으면, 애걸하듯 찾아가 가입을 종용하였다. 당시는 역사가 아이들에게 그다지 중요한 과목도 아니었던 데다, 낯선 신출내기 교사를 미더워하지 않을 거라 여겨 정말이지 몇 날 며칠을 발 벗고 뛰어다니며 '영업'을 했다.

의외로 호응이 나쁘지 않았다. 단숨에 10여 명이 모여들었다. 친구를 따라왔다며 멋쩍게 웃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어릴 적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는 아이에서부터 다른 과목은 몰라도 역사만큼은 줄곧 100점이었다는 아이까지, 시작치고는 꽤 튼실한 답사 동아리가 꾸려졌다. 첫 답사는 1박2일 여정으로 충남 부여와 공주를 아우르는 백제 문화권으로 다녀왔다.

그로부터 해마다 네 차례씩 정기 답사를 다녔다. 학기 중인 봄과 가을에는 가까운 곳으로 하루짜리 답사를, 여름과 겨울 방학을 이용해서는 1박2일, 또는 2박3일로 여유 있게 답사를 다녀왔다. 고3 아이들조차 수능이 치러지는 당해 여름을 제외하고는 빠짐없이 참여하는 등 해를 거듭할수록 활동이 활발해졌고, 학년 초 '영업' 없이도 신입 회원들이 줄을 섰다.

초기엔 답사 때마다 승합차를 빌려 직접 운전해 다녔고, 아침과 저녁 식사는 취사도구를 챙겨 스스로 해결하는 등 비용을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당시에는 말 못할 고생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같이 소중한 추억이 됐다. 다녀오면 어김없이 답사 보고서를 만들었고, 각자 찍은 사진들에 코멘트를 달아 교내 게시판을 활용해 조촐한 사진전도 열었다.

졸업생이 시나브로 늘어나자 해마다 연말이면 답사반의 이름으로 송년회가 열린다. 17년째가 되다 보니, 어느새 선후배 사이가 띠 동갑을 넘어섰고,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한 선배들도 많다. 여름 방학 중 1박2일 답사 때는 부러 휴가를 맞춰 후배들을 찾아오는 선배들도 있다. 이렇듯 문화유적 답사반은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의 대표 동아리로 발돋움했다.

큐브, 마술, 앱 제작... '조변석개'하는 동아리 선호도


4년 전 동아리 활동의 마지막(?) 전성기 4년 전 경북 포항 일대로 1박2일 답사를 갔을 때 경주 옥산서원에서 찍은 단체사진이다. 이후 동아리 활동이 급격히 위축되고 부침을 거듭하였다. ⓒ 서부원


그러나 몇 해 전부터 관심이 줄어들고 부침을 거듭하더니, 급기야 올해는 신입생을 단 한 명도 유치하지 못했다. 풀 죽은 2학년 회장의 말로는, 선배들이 1학년 교실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열심히 홍보했지만, 눈길조차 건네는 후배가 없었단다. 더욱이 지도 교사인 내가 1학년 수업을 하지 않는 터라 어찌 손 써볼 수조차 없는 상태다. 그야말로 올해로 대가 끊길 위기다.

십수 년째 이어오던 몇몇 동아리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부도난 기업 쓰러지듯 사라진 터라 도저히 남일 같지 않았다. 학술 동아리는 대부분 가뭇없이 사라졌고, 학교 행사 때마다 사물놀이로 흥을 돋우던 풍물패는 '퓨전 난타'라는 퍼포먼스 동아리로 옷을 갈아입었다. 아이들의 동아리에 대한 선호도가 마치 유행을 타듯 조변석개하기 때문이다.

한때 폭발적인 인기를 끌다 불과 한두 해 만에 문 닫은 큐브 동아리와 마술 동아리가 단적인 예다. 올해도 스마트폰 게임의 확산을 타고 생겨난 낯선 동아리 하나가 아이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고 있다. 애플리케이션 제작 관련 동아리다. 그러나 한쪽에선 벌써부터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이 모인 곳이라는 둥, 내년이면 맨 먼저 사라질 동아리라는 등의 수군거림이 들린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스포츠 동아리조차도 롤러코스터를 탄다. 월드컵 시즌 때는 축구 동아리로, 프로야구가 인기를 끌면 야구 동아리로 아이들이 대거 몰리는 경우다. 국가 대표 이용대 선수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끌던 시절엔 배드민턴 동아리가 꾸려지기도 했다. 물론, 그는 요즘에도 TV 광고 등을 통해 간간이 얼굴을 비추지만, 동아리는 지금 사라지고 없다.

답사 동아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거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전에 없던 '특이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해마다 선호도가 높은 운동과 방송, 음악 관련 동아리를 제외하고는 논술과 토론, 영어회화 동아리의 약진이 눈에 띈다. 대학 입시, 특히 수시모집 전형에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동아리들이다. 거칠게 말해서, 동아리가 예체능과 입시 관련 분야로 확연히 양분돼버린 것이다.

대학 입시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물론, 최근 들어서는 동아리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입시 제도의 변화에 따라 수많은 동아리가 명멸한다. 한때 상위권 대학의 논술 전형이 확대되자 학교마다 논술 동아리가 유행하고, 면접이 강화되자 요즘엔 토론 동아리가 대세다.

기존의 영어, 시사, 경제 분야에 더해, 계열별로, 과목별로 토론 동아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활동 내용이 대개 비슷한 탓인지 동아리 이름을 하나같이 영문 이니셜로 지었는데, 이름만 봐서는 무슨 동아리인지 당최 알 수 없다. 한 해가 멀다 하고 바뀌는 입시 제도에 덩달아 춤추다 보니, 물론 이들 중 '장수'하는 동아리는 거의 없다.

선후배들끼리 끈끈한 유대를 자랑하던 고유의 동아리 문화도 학교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동아리의 이름만 남고 선후배 관계가 끊어진 곳도 부지기수다. 흔히들 '동아리가 활성화된 학교가 좋은 학교'라지만, 그건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요즘 생겨나는 동아리 대부분은 입시 공부를 위해 또래들끼리 모인 스터디 그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를 위로하는 졸업생의 전화

아이들로부터 선택 받지 못한 동아리라고 해서 당장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개설된 동아리마다 제한된 모집 인원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선호도가 높은 동아리는 선배들이 면접을 통해 선발하고, 탈락한 아이들은 '차선'을 찾아 지원하게 된다. 그때마저도 신청자가 없으면 '차차선' 지원을 기다려야 하는데, 늦어도 4월 초면 동아리의 존폐 여부가 대강 결정된다.

올 들어 세 번째 동아리 활동 시간, 한 무리의 1학년 아이들이 가입 신청서를 들고 찾아왔다. 탈락의 고배를 몇 차례 맛본 아이들이다. 대가 끊길 처지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무조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떨떠름한 표정의 그들에게 문화유적 답사에 대한 관심과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최소한의 '자격 심사'인 셈이다.

"영화나 사진 같은 걸 보여준다고 해서 왔는데, 아닌가요?"
"동아리 활동 두 시간 동안 그냥 여기서 쉬었다 가면 안 돼요? 떠들지 않고 가만히 있을게요."

선배들의 활동 내용을 소개하고 앞으로의 연간 활동 계획을 설명할 때쯤, 그들은 하나둘 다른 동아리로 옮기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부분의 동아리가 꾸려진 터라 사실상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없는데도 막무가내다. 그들이 바라는 동아리 활동이란 그저 '쉬는 시간'이다. 계획을 짜고, 자료를 찾고, 답사를 가고, 보고서를 만들어야한다고 하니 화들짝 놀란 것이다.

아이들은, 말 그대로, '그냥' 온 거다. '차선'이든 '차차선'이든 제 좋아서 왔으리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신청서 하나 달랑 들고 찾아온 그들을 받아줄 수는 없었다. 그들은 동아리 활동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고, 하나같이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그들 중 절반은 족구 동아리에서, 나머지 절반은 탁구와 농구 동아리에서 탈락한 아이들이었다.

엊저녁 오랜만에 한 졸업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때 동아리 회장으로 후배들을 이끌었던 아이다. 서로 안부를 나누기 전에 후배들이 답사반에 많이 들어왔는지를 물었다. 그때가 동아리의 전성기였다고 자부하는 그에게 문 닫을 위기라고 대답하려니 솔직히 난감하고 미안했다. 그는 그러리라 예상했다며 되레 나를 위로했다.

"대학도 별 차이가 없어요. 제대 후 복학해 보니 제가 활동했던 고전강독 모임이 사라져버렸어요. 학과 공부에 도움이 될지언정 취업에는 별 보탬이 되지 않는다며 후배들이 뿔뿔이 흩어졌다고 하더군요.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만 대학에서 살아남듯, 고등학교 동아리가 대학 입시에 종속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학벌과 대학 입시가 온존하는 한 아이들이 따라갈 수밖에 없으니, 아쉽지만 살아남으려면 시류에 발맞춰 동아리가 변해야겠죠."
#동아리 활동 #문화유적답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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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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