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상태 부른 '절친'의 한마디 "모자 벗어봐"

[나의 암 극복기15]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했다가, 고열에 시달리다

등록 2015.04.02 20:39수정 2015.04.2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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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는 암울한 투병 생활을 써 왔지만, 지금부터는 제 나름대로의 암을 다루는 방법과 병으로 인해 우울해진 마음을 털어내는 희망 열차로 달립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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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따뜻하게 하는 식품 구지뽕나무 뿌리, 생강나무, 감초, 대추를 넣어 끓여서 마신다. ⓒ 김경내


사람에게 측은지심이 없다면 세상살이 참 팍팍할 것이다. 반면, 평소에 좀 삐딱하든 관계의 사람은 이때다 하고, 못마땅해 하던 사람이 안 좋은 처지에 놓였을 때 긁는 사람도 있다. 물론 최소한의 교양이나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더 많기에 인간 세상이 유지되고 있겠지만.
 
혼자서 걷거나 쇼핑을 하는 것 외에는 부득이하게 빠질 수 없는 모임에만 얼른 얼굴을 내밀었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는데, 봄바람이 햇살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꽃내음도 가끔 묻혀 오는 날 작정하고 모임에 나갔다.

그 모임에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 있다. 그러기에 그 사람만 모르는 척해 주면 완벽하게 나는 환자가 아니다. 나는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말하기 전에는 절대로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하여, 내 딴에는 아픈 티를 안 내려고 옷도 신경 써서 입고, 두건도 예쁘게 접어서 썼다.

매달 모이는 모임이었는데, 다섯 달 만에 만난다는 것은 실제로 느끼는 시간보다 훨씬 긴가보다. 모두 반갑게 인사를 하며, '어디 아팠냐? 죽은 줄 알았다'며 농담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농담이 어찌 그리 반갑고 정겨운지 오랜만에 내가 살아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모두 하하호호 즐거운데 느닷없이 나를 향해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있었다.

"너 모자 예쁘네, 한 번 벗어봐."

그 사람은 내 머리가 이제 나기 시작하는 까까머리라는 걸 아는, 그중에서 나와 제일 친하다는 친구였기에 적이 당황스러웠다. 더구나 모르는 척해 달라고 일부러 전화까지 했었는데. 당황하는 나를 본 친구는 엄청나게 다정스럽게 나를 위해 주는 것처럼 다시 말했다.


"너 이제 머리 좀 나지 않았어? 뭐 어때, 요즘은 한 사람 건너 암 환자래, 어지간한 암은 다 고칠 수 있다더라."

우발적인 폭행이 왜 일어나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을 향해 한 번도 품어보지 않은 적개심이 일었다. 작은 방안이 잠깐 술렁였고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내가 심호흡을 하고 평정심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는데, 맞은편 친구가 얼굴이 벌게지더니 화를 벌컥 내며 말했다.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 아니야."
"뭐 내가 나쁜 말 했어? 없는 말 했어? 얘가 하도 별나게 쉬쉬하니까 다 까발리고 지 맘 편하라고 하는 소린데."
"본인이 말 안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너 그러지 마, 아픈 사람 두고 그러는 거 아니야."

맞은편 친구가 화를 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친구야말로 1년 전쯤에 폐암 수술을 했던 것이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그제야 그 친구가 한동안 모임에 나오지 않았던 사실과 활발하던 성격이 다소 의기소침해진 이유를 알게 됐다. 옆에서 대신 역성을 들어주는 바람에 모자를 벗는 수모는 면했지만, 두고두고 그 일은 나를 괴롭혔고 사람에 대한 회의를 갖게 했다.

친구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은 수술한 상처만큼이나 아프고 컸다. 그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내가 뭘 잘못 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각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 친구에 대한 괘씸한 마음에 잠을 설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열로 응급실 신세... 씩씩하게 혼자 걸어 나왔다

아침이 되자,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잠을 못 자거나 화를 이기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게 됐다. 목이 붓고 열이 나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눈은 빨갛게 충혈됐고, 목이 부으니 먹을 수가 없어서 기운이 떨어졌다. 열은 40도를 웃돌아 41도에 가까웠다. 아이들은 다 출근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으로 비몽사몽 헤매면서 드는 생각은 '이러다 죽는 거구나'였다. 죽음의 두려움 때문인지 살고 싶은 의욕 때문인지, 스스로 119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수술 후, 두 번째로 응급실 신세를 졌다.

병원에 도착할 무렵 고열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졌었나 보다. 눈을 뜨니 옆에는 아무도 없고 또 혼자다. 집에서도 혼자, 병원에서도 혼자, 또 혼자다. 열은 많이 내렸다. 누군가를 불렀더니 간호사가 달려왔다. 집에 가겠다고 했더니 '혼자 갈 수 있느냐, 데리러 올 사람이 없느냐, 병원에 좀 더 있다가 가도 된다'고 했다. 응급실 베드가 없어서 야단인데 더 있다 가도 된다는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는지를 알았다. 나는 의식적으로 씩씩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어 나왔다.

병원에서는 약 처방전을 주지 않고 그냥 해열제 이름을 가르쳐 주면서 사 먹으라고 했다. 나는 별것 아닌가 보다, 그냥 열이 좀 올랐었나 보다,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약국에 들렀다. 약사에게 병원에서 일러 준 약을 달라고 했더니 증세를 말해 보란다. 나는 열이 올라서 응급실에 갔던 얘기를 했다. 약사는 병원에서 일러준 약보다 효과가 더 좋은 약이 있다며 그 약을 권했다. 약사가 권하는 약이니 어련히 알아서 주랴 싶어서 그 약을 받아 집으로 와서 약사가 일러 준 대로 먹었다.

그런데 해열제를 한 번 먹었는데 거짓말처럼 열이 내렸다. 시간이 좀 지나자 열이 내리다 못해 이마와 손발이 너무 차가웠다. 조금 있으니 으슬으슬 한기가 들었다. 5월이었는데 집안에 난방을 올리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좀처럼 한기가 풀리지 않더니 급기야는 한겨울에 맨발로 눈밭에 서 있는 것처럼 손발이 시렸다. 수면 양말을 신고 장갑을 꼈다.

또 병원에 가야 하나 어쩌나,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약초를 다루는 분에게 전화해서 사정 얘기를 했다. 생강과 대추를 진하게 달여서 따뜻하게 해서 계속 마시라고 했다. 인삼과 대추를 끓여서 마시는 것도 좋지만, 꿀은 찬 성분이니까 넣지 말라고 했다.

마침 집에 인삼과 대추가 있어서 끓였다. 일삼아 계속 마셨다. 2시간에 걸쳐서 2리터 정도 마셨을까, 추위가 조금씩 놓이기 시작했다. 이틀을 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인삼 끓인 물을 마셨다. 열흘쯤 지나자, 양말과 장갑을 벗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일까를 고심하다가, 인삼과 대추는 끓여서 마시고 생강과 마늘을 반찬에 듬뿍 넣어서 먹었다. 그래도 해열제를 먹기 전처럼 체온이 정상으로 올라가지는 않았다.

주위에서는 영지버섯이나 상황버섯을 먹을 것을 권했다. 알아봤더니 영지버섯은 1kg에 120만 원이고, 상황버섯은 1kg에 400만 원이나 했다. 입이 쩍 벌어지는 값이었다. 버섯의 성질은, 영지는 찬 성질을 갖고 있다고 했다. 상황버섯은 좋다고는 하지만, 비싼 만큼의 값을 할지가 의문이었다. 또 약초 선생님과 의논했다.

선생님께서도 상황버섯이 비싼 만큼의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며 값도 싸고 구하기도 쉬운 구지뽕나무도 효능 좋은 약재라고 했다. 며칠 후 약초 선생님이 생강나무와 구지뽕나무 뿌리와 감초를 가지고 오셨다. 그 세 가지에 대추를 넣어서 달였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은근한 한약 냄새가 났다. 한약 냄새는 구지뽕나무에서 나는 것이라고 했다.

초벌과 두 번째는 끓여서 마시고 세 번째는 끓여서 그 물로 밥을 지었다. 그렇게 한 달가량 했더니 몸이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분명히 해 두고 싶은 것은, 병원에서 처방한 약 외에 내가 먹은 것은 약이 아니고 보조 식품이다. 누가 무엇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절대로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해열제를 먹은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병원약과 체온을 올리는 식품을 꾸준히 많이 먹었지만, 해열제를 먹은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해열제를 먹기 전처럼 체온이 정상적으로 돌아오지는 않고 평균 체온보다 1도 ~ 1.5도가량 낮다. 하여 한여름에도 스웨터를 입고 양말을 신고 지낸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참 미련스러웠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모자 벗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렇게 예민하게 굴지 말고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덤으로 사는 목숨이라고 여기며 욕심 미련 다 버리자고 다짐해 놓고 이 무슨 가당찮고 못난 자존심인가! 모두가 너그럽지 못한 내 좁은 소가지 때문이란 자책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일을 겪었기에 이제는 웬만한 일 정도는 그저 웃어넘기는 여유가 생기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못난 대가 한번 톡톡히 치른 셈이다.

다음 병원에 갔을 때 주치의에게 해열제 얘기를 했더니 더 좋다고 해서 홀랑 넘어간 내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병원에서 약 이름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면서 먹으라고 할 때는 그 약만 먹으라고 했다. 아쉬운 것은, 병원에서는 아무리 간단한 약이라도 정식으로 처방전을 내렸더라면 약사는 처방전대로 약을 줬을 텐데 하는 핑계를 대 본다. 환자들은 앞으로 약을 살 때 병원에서 권하는 약 외에는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듣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측은지심 #화 #내 탓 #구지뽕나무 #생강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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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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