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찾는 술래가 되어보는 건 어때?

경상도 여자의 전라도 생활 이야기

등록 2015.04.02 09:35수정 2015.04.0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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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무스카라가 고개를 들었다. ⓒ 김윤희


봄이 왔다고 떠들어대고 냉이나물, 냉이된장국을 해 먹는다며 친구들에게 자랑하던 때가 한 달 전이다. 그러곤 3월이 되어서는 주변의 변화를 세심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나무가 꽃을 피우고 풀들이 자라니 그저 봄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 더 이상 주위를 살펴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떠 밖을 바라보니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비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 공중에서 대형 분무기를 달아놓고 칙칙 소리를 내며 물을 뿌리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습식 사우나에 설치된 기구에서 김이 세어 나오는 것과 비슷하게 물을 뿜어대는 것과 같았던 것이다.

이걸 비라고 할 수 있을까? 요즘처럼 건조한 날씨에 이런 수증기같은 비라도 내려주니 고맙기는 하지만 단지 식물들의 꽃잎이나 잎사귀에 보이지도 않는 물방울이 맺히는 정도이니 비가 왔다고 하여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좀 시원하게 내려주지 내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니 내리는 것도 아니고 참."

시원하게 비가 내려주지 않는다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향해 투덜댔다.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래도 비가 내렸다고 날리던 마른 먼지가 누그러졌고 숨쉬기도 한결 편안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무딘 것일까? 아니면 취미활동을 한답시고 바쁘게 지냈던 탓일까? 넓은 마당은 한 주 사이에 많이 달라져 있었다. 왜 이 아름다운 변화를 나는 오늘에서야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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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아직도 수선화는 싱그러워보인다. ⓒ 김윤희


수선화가 핀지 벌써 20일이 지났다. 수선화는 제 몫을 다했다며 스스로 꽃잎을 말려가고 있었다. 지는 수선화는 피는 모습만큼이나 지는 모습도 다소곳했다. 지는 수선화를 아쉬워하던 내 눈에 다른 꽃들이 눈에 띄었다. 수선화 주위로 제비꽃이 피었고 무스카라가 고개를 내밀어 수선화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튤립도 고개를 디밀거나 꽃대가 올라와 잎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나는 봄을 상징하는 목련이며, 개나리, 진달래나무가 꽃잎을 틔우는 것에만 신경을 썼었다. 그래서 고개를 공중으로 쳐들고만 다녔었다. 그러하니 땅을 뚫고 올라오는 꽃들이 있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그저 고개를 좌우로 돌려 허공에만 시선을 두었던 것이다.

주위가 온통 낙엽으로 뒤덮인 것처럼 어두운 갈색을 띠던 땅 위에는 빨강, 노랑, 보라, 연분홍, 진분홍, 하얀 색깔들로 마당이 물들어져 있었다.

옛 여인들은 이런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수를 놓았을지 모른다. 허나 수를 잘 놓을 자신이 없었던 나는 꽃들의 아름다움을 남겨 두기 위해 손가락을 정신없이 눌러댔다. 그리고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가 되어 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꽃이 담긴 사진들을 보냈다. 친구들은 사진을 보며 즐거워했고 잠시 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급히 어딘가를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던 친구들은 잠시 멈춰 서서 꽃들을 들여다보며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내가 어찌 자연의 변화에 무심한 시선을 돌릴 수 있겠는가? 친구들을 위해 변화하는 자연을 담아 보내기 위해 다시금 몸을 맞추고 고개를 땅에 묻을 수 밖에.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산을 오르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이맘때면 도시에서 사람들이 나물을 캐려고 찾아오는 일이 잦다. 산을 오르기 위해 집을 지나치던 이들 대부분은 넓은 마당 안에 시선을 던진 채 가만히 서 있곤 한다. 가만히 서 있던 사람들은 마당 가득 피어 있는 꽃들을 보고는 탄성을 지른다.

"어머, 여기가 어디야? 사람 사는 집이 맞아. 뭐 이리도 예쁜 꽃들이 많이 피어있데. 어머머. 들어가도 싶어지네."

그렇게 꽃을 보고 감탄하던 사람들이 안을 살피다가 꽃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오고 마는 것이다. 그때 문간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더 놀라는 것이다. 산과 집과의 경계가 뚜렷하지도 않고 인기척이 없어 산속의 일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곳에 살고 있느니 정말 행복하겠어요? 좀 둘러봐도 되요? 사진 좀 찍을 게요?"

나는 그들의 말에 그저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들의 말대로 나는 행복하다. 빌딩이나 건물 사이에 앉아 있지 않고 시간에 쫓겨 허둥댈 일이 없으니 정말 살만 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잠시 한 눈을 팔면 금세 이곳은 많은 변화로 인해 달라져 있다.

마당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몸을 낮추어 마당 곳곳에 핀 꽃들과 화려한 꽃을 피운 나무들을 둘러본 다음 사진을 찍어댔다. 돌아가는 발걸음을 차마 떼지 못하고 입구에서 서성이다 돌아갔다. 앞으로 걸어가는 몸과 달리 고개가 자꾸만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곳을 떠나가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하루 묵고 가시오'라는 말이 목울대까지 차오르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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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흰색, 남보라색을 세 종류의 히아신스가 피었다 ⓒ 김윤희


이 집 마당은 룸메이트의 작품이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그는 돈을 버는 족족 나무와 꽃들을 사서 심었다고 했다. 사계절 내내 알록달록한 꽃이 마당 가득 피어 있기를 바랐다고 했다.

봄이 시작되는 3월이면 마당에는 집안으로 들어오는 길을 따라 수선화가 핀다. 4월이 다가오면 히아신스, 무스카라, 꽃잔디, 제비꽃이 피어 마당에 풍성한 색깔을 입힌다. 누런 잔디가 자라는 가로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마음이 절로 즐거워진다. 4월 중순이 되면 튤립이 사방에서 피어나 내 마음을 더욱더 설레게 한다.  

4월이 시작되어 목련이 활짝 피어올랐다. 몇 번의 서리를 맞고도 잘 피어난 목련은 순백의 미를 뽐내며 피어났다. 연못 주위로 개나리가 만개해 마당 안은 더 싱그러워졌다.

낮이 길어지면서 새들이 일찍 일어나 마당으로 찾아왔다. 새들은 연못에서 물을 먹거나 몸을 씻기도 하고 내 눈을 피해 몇 주 전에 다시 올라온 작은 시금치를 몰래 쪼아 먹기도 했다.

겨울 내 닫혀 있던 창문이 자주 열리고 희미하게 방안으로 히아신스의 은은한 향이 스며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봄의 향을 맡고 팔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따스해졌음을 느꼈다. 눈으로 찾아온 봄이 코로 피부로 느껴지면 나도 모르게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한 손에 국화차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흙을 헤집어 풀을 뽑아내는 일을 자주 하고 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흙의 감촉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쓰다듬는 듯 부드럽다. 

자연은 정말 신비롭다. 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제 스스로 싹을 틔우고 제 스스로 꽃을 피우는 것이다. 모든 조건이 맞아야 하겠지만 힘든 환경에서도 제 할 일을 잊지 않고 피어나 사람들을 유혹하는 아니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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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피어난 붉은 튤립이다. ⓒ 김윤희


이렇게 봄은 소리 없이 찾아온다. 잠시 내가 다른 일에 한 눈을 파는 사이 흙속에 잠자던 봄이 일어나 고개를 디밀고는 내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다시 내가 한 눈을 하는 사이에 소리 없이 떠나갈 것이다. 봄은 사람들과의 숨바꼭질을 즐기는 것 같다. 앞만 보며 달려가는 사람은 언제나 봄을 찾는 술래가 될 수밖에 없다. 봄을 찾는 여유를 가질 수만 있다면 술래가 되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봄 #수선화 #히아신스 #무스카라 #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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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경의로움에 고개를 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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