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심훈' 지키는 여정 참 외로운 일"

[인터뷰] '심훈 이야기' 출판 준비중인 3남 심재호씨

등록 2015.04.05 20:16수정 2015.04.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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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국에 올 수 있을까요?"


심훈(1901~1936) 선생의 삼남인 '심훈 미주기념관' 심재호 대표(80)가 지난 4일 심훈 문학의 고향인 충남 당진에 있는 필경사 내 부친의 묘소(당진시 송악읍 부곡리)를 찾았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거주하는 그의 한국 방문은 3년 6개월 만이다. 심훈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저항시인 겸 영화인으로 농촌 계몽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설 <상록수>를 이곳 필경사(筆耕舍, 붓으로 밭을 일군다는 뜻)에서 집필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칼칼했다. 메모지에 써내려가는 손놀림은 느리지 않았다. 적당히 짙은 글씨에서는 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전에 없던 지팡이가 들려 있다. 움직임도 예전에 비해 많이 둔해졌다. 하지만 그의 직관에는 날이 서 있었다. 


심훈 삼남 일가족, 40년 만에 묘소 앞에 서다


심 대표의 자녀들은 물론 일부 증손자까지 온가족이 동행했다. 중국에 사는 신 대표의 장남인 성보씨(52)가 말했다. 


"한식을 맞아 온 가족이 할아버지(심훈 선생) 묘소에 모였어요. 그동안 가족들이 각각 묘소를 찾아 왔지만 온 가족이 한 데 모인 건 40년 만에 처음입니다."

  

당진시는 심훈 기념관 조례를 제정(2012년 12월)하고 지난해 9월 심훈 기념관을 개관했다. 심훈 기념관은 당진시와 심 대표의 공동노력으로 설립됐다. 그만큼 심 대표는 당진시에 조언과 유품 기탁 등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수백여 명이 모여 열린 개관식에 정작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꼭 오고 싶었죠. 오지 않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어요. 이미 지난 일이니 사연을 다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간단히 한 가지만 말하자면 당진시에서 보낸 초청장을 개관식이 있은 다음 날에서야 받았어요. 시에서 나를 초청할 마음이 없었던 거죠. 간접적으로 '오지 않았으면 한다'는 당진시의 입장도 전해 들었어요. 게다가 개관식을 앞두고 시에서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보여 당진시장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기까지 했어요. 아직까지 답변을 받진 못했지만..."


심훈기념관 공동 설립 심 대표, 개관식 불참 이유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가 언급한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이 궁금했다.


"당진시 담당 공무원이 이메일을 통해 아버지 유품인 육필 원고에 대해 '약속대로 빨리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위협으로까지 느껴지는 강압적인 문구였어요. 그래서 '육필 원고를 준다고 약속한 일이 없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고 따져 물었어요. 당진시장에게 조사와 해명도 요구했죠. 이후 해당 공무원으로부터 '잘못 알았다.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것'이라는 사과를 받긴 했지만 전혀 진정성을 느끼지는 못했어요."


그는 아버지 심훈이 남긴 육필 원고를 50년을 쫓아다니며 모았다. 개인의 것이 아닌 민족의 자산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모은 원고 사본 등 4000점의 유품을 당진시에 위탁했다.


"당진시에 필경사는 물론 아버지 묘지도 맡겼어요. 아버지 육필 원고를 사본형태로 모두 넘겼어요. 2013년 1월 당시 이철환 당진시장과 쓴 협약서(심훈선생 유품 전사본 인도 및 관리에 관한 협약)에는 '심훈 선생 유품의 사용과 관리에 대해 당진시에 일임, 원고 사본 등 4000점의 자료(심훈의 책상·문갑·의자·친필원고·대본 및 각본·편집자료·작품구상 메모·사진)를 위탁 사용 하도록' 돼 있어요. 상업적 이용을 빼고는 심훈 문학관과 기념관에 원고 사본을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줬어요. 그런데 '친필 원고 원본을 왜 넘기지 않느냐'고 하니 도대체..." 


그는 이날 가족들과 지난해 개관한 심훈 기념관을 둘러 봤다. 소감을 물었다.

 

"애를 많이 썼고 수고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기념관 논의를 시작한 지 15년 만에 문이 열렸네요. 그동안 당진군수 3인과 시장 2인, 그리고 책임 과장 8명이 바뀌었어요. 하지만 기념관에는 심훈 정신이 빠져 있어요. 심훈 정신의 세 가지는 독립운동, 저항운동, 자생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정신을 알게 하는 전시물은 거의 없더군요. 관련 없는 책만 꽂아 두고... 개선이 필요합니다."


"심훈 정신 빠진 심훈 기념관... 개선 필요"


- 전시 자료가 부족한 게 아닐까요?

"지난 달 워싱턴에서 3일 동안 심훈 원고 전시회를 했어요. '약소민족의 저항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원고 중 일부를 전시했습니다. 약 200여 명이 전시회장을 찾을 만큼 성황이었어요. 관람객들의 주요 관심은 일본이 심훈의 원고 어디에, 어떤 문구에 빨간 줄을 그었냐에 쏠렸어요. 내가 당진시에 건넨 4000점의 원고 사본이면 일 년 사시사철 전시품을 바꾸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이걸 하나도 활용하지 않고 있어요. 수장고에도 심훈과 전혀 관련 없는 자료들만 들어 있더군요."

  

그는 심훈을 위하고 지키는 일을 "참 외로운 일"이라고 표현했다. 지나온 여정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주르륵 눈물 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그가 지금까지 '참 외로운 일'을 자처하고 있는 이유는 '아직 믿고 줄 곳'이 없기 때문이란다. 


"참 외롭고 참 괴로운 일이예요. 그래서 국민 모두가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버지 유품을 찾는 일에 평생을 쫓아 나섰지만 자식 것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 우리 민족의 유산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솔직히 이걸(육필 원고를) 믿고 줄 곳이 없어요. 제대로 지킬 거라는 믿음이 가지 않아요. 일례로 원고 원본을 달라고 하면서도 안전을 보장하는 '보험'조차 들 생각은 전혀 안 해요. 어찌됐든 남북이 통일돼 통일정부가 선 다면 기꺼이 내줄 생각이에요"


'심훈 이야기' 출판 준비 중

 

그는 아버지와 관련된 모든 얘기를 직접 풀어 놓은 '심훈 이야기' 출판을 준비 중에 있다.

 

"심훈 기념관 설립 안내서라고나 할까요. 꼭 하고 싶었던 얘기를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으로 쓰고 다듬었어요. 300쪽 분량입니다."


그가 인터뷰 말미에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 심훈은 내 삶의 시작이자 의무였어요. 심훈 기념관 설립은 내게 남은 피 한 방울까지, 내 고향과 내 민족에게 바치는 마지막 의무였죠.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만 오는 9월 16일 개관 1주기 기념식 때 또 오겠다는 꿈은 잃지 않고 있습니다."

2015.04.05 20:16 ⓒ 201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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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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