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노비'에서 탈출해 자유로운 유목민이 되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디지털노마드가족] 농촌 현실에 적응하기

등록 2015.04.09 17:39수정 2015.04.0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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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도 6월,  우리 부부는 전라북도 장수의 산골에서 자급자족을 하면서 살고자 했으나 그동안 머리와 입을 쓰는 일들을 주로 하였기에 자급자족하면서 사는데 필요한 기술들을 잘 몰랐다.

우선, 농사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현재 심을 수 있는 채소와 키우는 방법에 대해 마을 어르신들께 여쭈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근에 귀촌한 가족이 산에서 채집할 수 있는 오디, 복분자, 취나물, 신선초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산책하러 나갈 때면 식물과 열매들을 채집하여 효소를 만들거나 장작더미들을 가져왔다.


텃밭에 심었던 씨앗과 모종들이 나날이 자라더니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을 보니, 그동안 바쁜 일상에 묻혀 생명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마음껏 느껴볼 겨를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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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꾸고 효소 만들기 ⓒ 김태균


어느날, 강 너머에 사시는 할머니 집 앞을 지나다 인사를 했는데 오이 한더미를 주셨다. 오이가 휘거나 작다는 이유로 상품성이 없어 못 파는 것들이라고 한다. 먹을 수 있는 것인데 모양이 예쁘지 않다고 버리는 것은 아까운 마음이 들었는데 가지와 옥수수 등 많으니 언제든지 와서 따가라고 하신다.

다음날 가서 상품성이 없는 것들만 따는데, 농사에 관심있으면 마을에 놉장 할머니에게 연락해 놓을 테니 하루에 4만 원씩 용돈도 벌겸 사과 따는 일을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고 마을분들도 알게 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싶어 우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마을회관 앞으로 갔다. 마을에서 허리가 구부정하신 연로한 할머니들이 한 분씩 오시더니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할머니들은 젊은 놉이 왔다며 좋아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젊은 놉이란 옛말로 젊은 노비라고 한다. 갑자기 우린 산골의 노비가 된 것인가?

트럭을 운전하시는 아저씨는 마을 몇 곳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을 태웠고, 사과 농장에 도착했다. 1만평이 넘는 사과 밭을 운영하고 있는 대농장이었다. 다같이 농장주가 준비해 놓은 아침식사를 먹고 장갑과 가위를 분배받아 각자 나무를 골라 사과가 햇빛을 잘 받아 빨갛게 되라고 사과잎을 땄다.


나무 높이 달린 사과는 사다리에 올라타 잎사귀를 땄는데 연로하시고 몸이 성한곳이 없는 할머니의 손길이 재빨라 할머니들의 속도에 맞춰 따기가 쉽지 않았다. 사과잎들을 따다보면 그냥 떨어지는 낙과들이 많았다.

할머니들은 낙과들을 한데 모아 가방에 따로 챙기셨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봉지 한개를 주시며 낙과들을 챙겨가라 하셨다. 일을 마치고 트럭에 올라탔을 때 봉지에 담긴 풍성한 사과를 보니 마음이 넉넉해졌다. 그리고 오랜만에 땀을 흘려 노동을 하니 몸이 탄력을 받아서인가 마음과 정신이 맑아졌다.

다음날이 되니 안 쓰던 근육들이 뭉쳐 온몸과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셔 새벽녘부터 눈 뜨기가 쉽지 않았으나 동 트기 전에 나갈 채비를 하여 길을 나섰다. 내 몸이 아프니 몸이 성한 곳 없다는 칠팔십 되시는 할머니들의 마음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땀을 많이 흘리고 몸을 쓰는 일을 하기에 밥과 간식을 자주 주셨지만 먹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갔다. 할머니들은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는 것을 옛과거에서부터 동네 뒷이야기까지 수다로 승화시켰다.

한 달 여 동안 일손이 필요하다는 곳에 연결이 되어 사과, 토마토, 오미자 밭에서 일했다. 그 후 몸이 회복되는데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추운 겨울엔 손가락 마디가 쑤셔와 제대로 펴기가 여간 어려운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필요한만큼만 농사를 지을 때에는 생명의 경외감을 느끼고 채소와 대화를 하며 여유롭게 가꿀 수 있지만 누군가의 지시 하에 돈을 받고 함께 일을 할 때는 나만의 속도로 즐기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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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한기에는 쉬면서 공부하기 ⓒ 김태균


한해 농사가 끝나고 달콤한 휴식기간인 농한기에 온 세상이  눈으로 덮인 겨울 날, 우리가 원하는 삶에 대해 그림을 그리며 독서와 인터넷 서핑으로 공유경제와 디지털노마드에 대해 심도있게 공부했다. 우리는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유목민으로 사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디지털노마드로 전세계를 돌아다니게 되는 시초가 되었다.

#귀농 #귀촌 #디지털노마드 #자급자족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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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탐험을 좋아하고 현재 덴마크 교사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기발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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