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는 왜 '일베 로고' 퍼뜨리기 집착할까?

대학, 방송사, 축구클럽까지... 단순한 '관심병' 이상의 문제

등록 2015.04.11 18:16수정 2015.04.1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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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KBS에서 방송된 <이광용의 옐로우카드2> 화면. 자세히 보면, 독일 축구클럽 '바이에른 뮌헨'의 로고에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문 이름 철자인 'MUHYUN'이 삽입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래 로고는 'MUNCHEN'이 들어가야 맞다. ⓒ KBS 방송 갈무리


"해냈다, 해냈어! 일베가 또 한 건 해냈어!"

그동안 각종 사회적 물의를 꾸준히 일으켜 '문제적' 커뮤니티라는 대중의 인식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아래 일베)가 '일베 로고'  퍼뜨리기로 다시금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8일 방송된 KBS '이광용의 옐로우카드2'에는 독일 축구클럽 '바이에른 뮌헨' 로고가 'MUNCHEN(뮌헨)'이 아닌,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름의 영문 철자인 'MUHYUN(무현)'을 합성한 이미지가 등장했다. 노 전 대통령마저 자신들만의 유희 소재로 삼아 희화화하고 조롱·비하의 대상으로 삼던 일베의 그간 행적을 되짚어보면, 이번 KBS '일베 로고' 사건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관련 기사: 또 '일베' 논란...KBS는 정녕 부끄러움을 모르나?).

해당 프로그램 당사자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방송을 진행했고, 이 이미지는 버젓이 전파를 타고 시청자들의 안방에까지 도착했다. 당황한 시청자들이 항의하자, 이광용 아나운서는 즉각 자신의 SNS에 "저희 제작진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실수를 범했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잘못"이라고 밝히며 사건의 진상확인과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미 문제가 벌어진 이상 시청자들에게 찝찝함은 남은 상황.

꾸준하고 치밀하게 진행돼 온 '일베 로고' 퍼뜨리기

세종대학교 로고에 대학교를 뜻하는 'ㄷ'을 삭제하고, 'ㅂ'을 삽입해 일베를 상징하는 'ㅇㅂ' 문구를 의도적으로 삽입한 일베 게시물. ⓒ 일베 갈무리


이화여대와 건국대사대부고 로고에 의도적으로 고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의 이름 한자 철자를 삽입한 '일베 로고'다. 해당 로고는 한 일베 유저가 제작해 일베에 게시했고, 해당 게시물들은 일베 유저들의 높은 추천수를 받아 '일간 베스트' 게시판에 등재됐다. ⓒ 일베 갈무리


문제는 '일베 로고'가 비단 KBS에만 등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베 로고'는 SBS <8 뉴스> <런닝맨>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등 뉴스, 교양, 예능 프로그램 등 지상파 방송은 물론이고 각종 종합편성채널에도 꾸준히 등장해 왔다. 일베가 우리 일상에 꾸준히 침투하고 있는 셈이다(관련 기사: 방송가에 다시 부는 '일베 주의보').


그런데 이런 침투 작업이 매우 주도면밀하고, 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베 닉네임 '노란색패딩'은 11일 새벽 일베 게시판에  이화여대, 세종대, 건국사대부고 등의 로고에 노 전 대통령의 한자 철자나, 일베를 상징하는 'ㅇㅂ'을 삽입한 게시물을 올렸고, 일베 유저들의 추천을 높게 받는 게시물들을 따로 모아놓는 '일간 베스트' 게시판에 등재됐다.

'일베 로고'가 검색엔진에 많이 노출되도록, 키워드를 댓글창에 입력하는 일베 유저들. ⓒ 일베 갈무리


일베 유저들은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 등에 일베 로고가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도록 댓글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는 등 이를 돕기도 한다. 인터넷 용어로 말하자면, 일명 '화력 지원'이다.

일베의 표적 대상은 무차별적이다. 대학이나 고등학교를 대상으로함은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 로고까지 그 침투의 폭이 다양하다. 언제 어디서 누구든 정말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일베 로고' 구설수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마치 도시 괴담처럼 '일베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에 대한 저널리즘적 보도 비평은 대부분 이러한 논란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더라는 지적에서 시작해, 논란을 벗어나려면 방송 등 관계자들이 더 신중하게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허무하게 끝을 맺는 식이다.

일베는 왜? 단순한 '관심병' 그 이상의 문제

일베 연구로 주목 받고 있는 박가분의 <일베의 사상>과 김학준의 석사학위 논문 ⓒ 일베 선행연구 표지 갈무리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베가 왜 이런 '일베 로고' 퍼뜨리기에 집착하는지, 한 걸음 더 들어가서는 왜 자꾸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지 사회가 적절한 해답을 내놓고 해결책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일베에 대한 국내 연구 결과물들은 현재 약 20건 정도가 있으며, 그 중 박가분의 <일베의 사상>과 김학준의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학위 논문이 많은 주목을 받는 편이다. 특히 일베 정신에 대한 200페이지가 넘는 김학준의 분석은, 지난해 9월 서울 광화문 광장 세월호 단식농성장 앞에서 단식투쟁을 하던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일베의 '폭식 투쟁'이 세간에 충격을 준 이후 <시사IN> 보도를 통해서도 개략적으로 소개된 바 있다.

김학준의 거시적 분석에 따르면, 일베의 조롱 문화는 단지 그들의 논리체계를 강화하는 부수적 폭발장치일 뿐이다. 오히려 근본적 문제는 산업화 시기 이후로 강화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유동성과 이를 강화하는 국가체제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불안에 있다.

무기력해진 개인들은 삶의 대안을 찾지 못해 철저하게 체제의 논리에 '순응'하기도 하는데, 일베 회원들은 이러한 방향을 택하며 타인의 고통을 '가볍게' 취급한다는 것이다(관련 기사: 이제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

한편 박가분은 일베를 일종의 꿈을 꾸지 않으려 발버둥 치다가 동물화된 인간으로 분석한다. 일베가 보기에 모든 인간들은 결국 우습고 모순적이다. 그런데 일베의 독특성은 "그렇다면 우습고 모순적인 인간들은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그들만의 독특한 윤리의식으로 도약한다는 데 있다.

이상과 현실 괴리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병맛' 만화 시리즈의 한 장면. 우스운 그림체의 주인공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여자친구 등 판타지를 꿈꾸다가 느닷(맥락) 없이 잠에서 깨며 '아 시X 꿈'하고 끝나는 식이다. ⓒ 병맛 만화 갈무리


그들에게 어떤 인간도 성역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어떤 가치와 이상이 있다고 주장하며, 고통을 호소하는 사회의 비교적 소수자들인 여성·진보·호남은 그들에게 '떼 쓰는 사람들'로 규정돼 조롱의 표적이 된다.

그들의 굴절된 윤리의식 앞에서 타인의 사회를 향한 적극적 인정투쟁은 '무임승차'로 규정되고, 전 대통령의 비극 자살까지도 노리개의 대상이 되며 그밖에 모든 숭고하고 엄숙한 상징들은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뒤틀리며', '가치전도'가 일어난다.

불확실하고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어떤 가치와 이상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심리적 경향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을 부정하는 일베의 태도야말로 이념적이다. 어떠한 주장이든 가치판단을 함축할 수밖에 없고 불확실한 상황을 명확한 것으로 드러내고 시시비비를 가리려면 오히려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상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필요도 있다. 일베는 이런 인간본성의 소중한 측면들을 지속적으로 탈색시키고, 스스로를 '일베충', '베충이'로 칭하며 자신들의 인간성을 반복적으로 자결시킨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박가분과 김학준 모두 일회적 처벌과 제한만으로는 일베가 일으키는 사회적 물의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치권이 보다 나은 삶의 대안을 기획·제시함과 동시에 대중들의 정치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일베정신은 우리 삶 곳곳에 침투하게 되리란 것이다.

○ 편집 ㅣ 조영미 기자
#일간베스트저장소 #일베저장소 #일베 #일베 로고 #산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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