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공부하면 냉혈동물, 하등동물 된다"

[인터뷰]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정의롭게 공부하는 법②

등록 2015.04.20 18:38수정 2015.04.2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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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의 정의롭게 공부하는 법①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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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희훈


조국(50)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공부란 무엇일까. 그는 부산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박사 학위를 땄다. 지금은 서울 강남 지역에 살면서 서울대 교수로 있다. 조국 교수는 정치권으로부터 꾸준히 러브콜을 받고 있는 스타 지식인이다. 혹시 그에게 공부는 출세를 위한 사다리가 아니었을까.

지난해 6월에 펴낸 책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에서 "돈과 힘보다 사람이 우선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누구나 말로는 이렇게 멋지게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서울대 법대생이었던 그는 출세의 지름길인 사법고시를 보지 않았다. 또 스물여덟 나이에 울산대학교 교수가 됐고, 이듬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감옥에 끌려가 옥살이를 했다. 이후 정치권의 러브콜에 응했다면 권력에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서울대 연구실을 지켰다. 출세와는 정반대의 길을 간 것이다.

"고시 공부하라는 부모님, 교수님 말을 듣지 않은 건... "

조국 교수가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것은 그의 나이 열여덟 살 때의 일이다(정확히 만 16세 11개월). 또래보다 2년 일찍 그것도 학벌의 정점인 서울대 법대에 진학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는 천재였을까. 조국 교수는 겸연쩍은 얼굴로 "그렇지 않다"고 했다.

"교사였던 부모님이 제가 여섯 살 때 저를 집 앞 초등학교에 청강생으로 보냈다, 집에서 먼 유치원에 보낼 수 없어 학교 쪽에 요청했고 받아들여졌다"면서 "1년간 청강생으로 지내다가 수업을 잘 따라가니, 학교에서 정식 초등학생으로 입학시켜줬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족보'가 꼬이니 소동도 많았다. 그는 "새로운 학년에 올라갈 때마다 반 친구들은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친구들 입장에서는 내가 동생 친구이니 그럴 만도 했다"면서도 "끝내 반 친구들을 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저는 동기들한테는 편하게 말을 놓지만, 나이 때문에 후배들한테는 말을 놓지 않는 습성이 있다"고도 했다.

- 대학에 진학할 때 왜 법대를 선택했나.
"문과에서 공부 잘하면 당연히 법대에 가야 한다는 당시 분위기에 저도 자유롭지 못했다.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초·중·고 생활기록부 장래희망란에는 판사라고 적혀 있다. 고등학교 때 미국 드라마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를 즐겨봤다. 하버드 로스쿨 학생들이 논리적인 토론을 벌이는 모습에 흠뻑 빠져들었다. <수사반장>도 즐겨봤다. 법대에 진학한 건 이들 드라마의 영향도 있었다."

- 서울대 법대 82학번이다. 전두환 정권 치하의 당시 대학은 드라마 속 모습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경찰이 캠퍼스에 들어와 있었고,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때 교내외 시위에 참여하는 등 학생운동을 했다. 사법고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고시 공부를 하라는 부모님과 교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건 치기어린 정의감이나 감옥에 간 선배·친구에 대한 미안함·부채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1987년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 진학한 뒤, 친구인 진중권 현 동양대 교수, 이진경 현 서울산업대 교수 등과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한 공부에 나섰다. 당시 급진적인 노동운동조직인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만든 주역인 대학 선배 백태웅 현 미국 하와이대학 로스쿨 교수를 도왔다. 1991년 박노해씨에 이어 1992년 백태웅 교수까지 구속되면서 사노맹은 사실상 해산됐다.

이후 사노맹 관련 서류에 조국 교수의 이름이 나왔다. 그는 1993년 6월 사노맹 산하 남한사회주의과학원 사건으로 구속됐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였다. 울산대 법학과 전임강사가 된 지 1년 만의 일이었다. 감옥에서 5개월 남짓 옥고를 치르고,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나왔다. "우리나라에 북한 김일성주의나 스탈린주의가 아니라 노동과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병아리 지식인으로서 한계가 있었지만, 의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듬해인 1994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로 유학길에 올랐다. 박사학위를 딴 뒤, 국내로 돌아와 법학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형사법을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는 장치로 바꾸기 위해 학자로서 공부하고 또 실천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공동체의 문제와 모순이 보이는데, 그것을 외면하거나 호도하는 것은 지식인의 자기부정"이라고 말했다.

'정의로운 공부'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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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희훈


조국 교수에게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정의로운 공부를 해라"고 말했다. "자신의 직업을 잘 해내기 위한 공부와 호기심이 생기는 일에 대한 공부가 중요하다, 이 두 공부를 잘 한다면 행복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면서 "이 두 공부를 유지하면서도 자신 바깥의 타인, 더 나아가 사회와 세상에 관심을 갖는 것이 정의로운 공부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타인의 꿈과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면서 "어떤 사람은 어떤 일에 대해 슬퍼하고 고통 받고 또는 환호하는지 알게 된다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올해 4월에는 우울한 소식만 전해지고 있다. 지난 9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메모지가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 전 회장으로부터 3000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 총리는 연이은 거짓말이 들통나면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조국 교수는 정의로운 공부를 강조했다.

"공부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높은 지위를 얻고 돈을 버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은 용인될 수 있다. 정의로운 공부를 했다면, 결정권이 있는 위치에 올랐을 때 정의 실현과 같은 뜻을 펼칠 생각을 해야 한다. 하지만 돈을 받는 문화를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뜻을 펼치기 어렵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세상은 아직도 공부를 돈과 권력을 갖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1주기를 대하는 정부·여당의 태도 또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집권층 내에서는 희생자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세월호 사고 유가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국 교수는 공감 능력을 강조하면서, "공감의 제도화에 대해 공부하자"고 말했다.

"고도성장 사회가 되면서 힘 있는 자와 돈 있는 자가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정의로운 공부를 한 사회라면 '억울함을 풀어줄게'라고 해야 하지만, 승자만이 살아남으면서 '억울하면 출세하라'라는 말이 확산됐다. 집권층은 공감능력을 잃어버린 냉혈동물, 하등동물이 됐다. 무상급식을 중단한 홍준표 경상남도지사와 '땅콩회항' 사건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행동이나 '일베 현상'도 그래서 나온 것 아니겠다. 공감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조국 교수 #공부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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