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쓰레기 모으는 엄마, 왜 그랬을까

[다다와 함께 읽은 책10] 신혜원 지음 <할머니에겐 뭔가 있어!>

등록 2015.04.17 16:42수정 2015.06.18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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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건 무슨 나물이야? 맛나네."
"지난 가을에 뜯어다 말려둔 나물이지. 이렇게 맛있는 줄 알았으면 좀 더 뜯어서 말릴 걸."

"엄마, 이건 민들레지? 우리 형님도 이렇게 무쳐 드시던데. 통풍에 좋다면서."
"그렇지, 이것도 지금밖에 못 먹어. 조금만 지나면 풀이 억세지니까."


내가 퇴근해 집에 올 때까지 아이들을 봐주시는 친정엄마 덕에 저녁 메뉴 걱정을 잊은 지 오래다. 누가 "거긴 요즘 반찬 뭐해 먹고 살아?" 물으면 주저없이 "엄마가 해주는 대로" 한다. 생각할수록 감사한 일이다. 하루는 너무 기운이 없어 퇴근길에 '엄마 오늘은 고기고기고기 반찬' 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묻지도 않고 '오냐' 하신다. 

집에 가서 보니 제육볶음 외에 모르는 나물 반찬이 두어 가지 올라와 있다. "야 애들이 어찌나 이 나물을 잘 먹는지... 이거에다 밥 다 먹었다"라는 엄마의 자랑이 쏟아진다. 지난 가을에 뜯어다 말린 나물인데, 더 말려놓지 못해 아쉽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그러면서 고기만 먹지 말고 정체불명(?)의 잎을 싸먹으라고 내미는데... 쌉싸래한 맛이 입 안에서부터 봄이 오는 듯 한 기분이었다.

"이건 또 무슨 풀이야?"
"그거 구기자잎. 텃밭에 심은 건데 참 맛있다야. 이것도 지금 아니면 못 먹어. 엄마도 이거에 싸서 저녁 먹었어."

생각해보니 몸에 좋은 음식은 다 엄마 덕에 먹을 수 있었다. 직접 기른 유기농 상추며 풋고추, 호박, 깻잎, 가지, 열무 등등. 이게 다 매년 초여름이면 블루베리 수확까지 할 수 있는 2평 남짓한 엄마의 텃밭 때문이다. 거기에 '돈 주고도 못 산다'는 엄마표 된장부터 마늘고추장, 조선간장, 청국장 등 양념까지.

모두 엄마 손을 거쳐 나오는 귀한 식재료들이다. 물론 잘 정리되지 않은 엄마집 냉장고를 볼 때면 한숨이 나올 때도 있다. 그렇지만 대체 이것들이 다 어디서 난 것인지 궁금할 때가 더 많았다. 책 <할머니에겐 뭔가 있어!> 주인공처럼.


사지도 않는데 넘쳐나는 먹거리, 비결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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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겐 뭔가 있어! ⓒ 사계절


'작고 예쁜 달걀 한 알, 고소하고 짭조름한 나물, 하얀 눈송이 같은 옥수수 뻥튀기, 미끌미끌 고소한 땅콩, 쫀득쫀득 달콤한 곶감' 할머니는 이걸 다 어디서 사는 걸까? 수상하고 궁금한 마음에 할머니에게 자꾸 물어도 할머니는 알 수 없는 말들만 한다.

답답한 마음에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녀 봐도 "사긴 이런 걸 어디서 사?", "밭에서 나온 거지", "사고 싶어서 못 사"라는 소리만 듣게 된다. 사지도 않는데 할머니 집에 넘쳐나는 먹거리들. 깜장봉지, 분홍보따리 한 가득 싸주시는 먹거리들. 할머니에게는 정말 뭔가 특별한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지난해 엄마와 주말농장을 하며 겪은 일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세 고랑쯤 되는 공간에 방울토마토며 옥수수, 오이, 가지, 고구마, 조 등등을 조금씩 심었다. 주말농장이 집에서 꽤 떨어져 있어 자주 가보지 못했지만, 날이 추워지기 직전까지 소소하게 수확한 것들을 먹을 수 있었다.

엄마가 부지런히 오가며 세세하게 농작물들을 살핀 탓이다(할머니의 '특별한' 능력에 대한 힌트 되시겠다). 손녀들에게 싱싱한 거 하나라도 더 먹인다면서. 방울토마토 한 바구니를 앉은 자리에서 해치우던 아이들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엄마 눈빛이 유난히 밝아 보였다.

그렇지만 주말농장 노동은 생각보다 고됐다. 엄마는 음식물 쓰레기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모았다가 퇴비로 썼다. 쌀뜬물도 모아 밭에 뿌렸다. 사서 쓰는 퇴비보다 훨씬 좋다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귀찮게 뭐하러 그러냐"고 툴툴 대면서도 엄마가 밭에서 거두는 건 잘도 받아 먹었다. 우리 아이들 눈에도 엄마는 '뭔가 있는 할머니'로 보였을 거다. 그런 엄마에게 최근 걱정이 하나 생겼다.

"우리집 이제 정말 새로 지을 건가 보다. 재건축 담당자가 또 사인을 받아 갔어. 텃밭 참 좋은데... 야채비도 하나도 안 들고 무공해로 먹을 수 있고... 집 공사 들어가면 아쉬워서 어쩐다니?"

그렇게 되면 왠지 엄마보다 내가 더 서운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 딸은 할머니네 집이 좀 멀었으면 좋겠단다. "놀러갈 수 있잖아"라며.

"그래도 친할머니도, 외할머니도 모두 가까운 데 사시니까 자주 보고 더 좋지 않아?"
"아니, 그래도 멀었으면 좋겠어. 놀러가는 게 더 좋아."

미안하지만 딸, 엄마는 지금이 딱 좋구나.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할머니에겐 뭔가 있어!

신혜원 글.그림,
사계절, 2014


#할머니에겐 뭔가 있어! #신혜원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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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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