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안중근 명복 비는 일본 사찰, 이런 사연이

[서평] 청년 안중근의 꿈 <코레아 우라>

등록 2015.04.23 11:12수정 2015.04.2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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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순 형무소의 형무소장 구리하라 사다키치는 안중근 의사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중략) 안중근 의사의 후원자이자 지지자, 팬이기도 했던 구리하라는 안 의사가 사형 당하는 날까지 그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려고 했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 당할 때 입은 한복은 안 의사의 어머니가 지어준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일설에 의하면 한복을 지어보내긴 했으나 뤼순 형무소에 미처 도착하지 못해서 구리하라가 자기 아내를 시켜 준비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코레아 우라>에서


사형이 확정된 직후부터 안중근 의사가 쓴 유묵은 200여 점이 넘는다고 한다. 그 중 많이 알려진 것은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뜻을 담은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과, 일본 헌병 지바 도시치에게 써줬다는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이 둘은 다른 유묵 24점과 함께 보물 제569(1~26호까지)호로 지정돼 있다.

2014년 8월 14일, 일본으로부터 우리에게 돌아온 '경천(敬天, 하늘을 우러르는 마음으로)'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며칠 앞둔 당시 자신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뤼순 형무소 소장 구리하라 사다키치에게 써준 유묵이라고 한다. 이 '경천'이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박삼중 스님의 안중근 의사를 향한 30여 년의 세월과 노력 덕분이다.

30년간 쫓은 안중근 의사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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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아 우라> 책표지. ⓒ 소담출판사

책 <코레아우라>(소담출판사 펴냄)는 우리에게 '사형수들의 어머니'로 알려진 박삼중 스님이 지난 30여 년간 안중근 의사 관련 자료 수집을 위한 노력과 염원들을 바탕으로 쓴 '청년 안중근의 꿈'이다.

안중근 의사는 상당수의 유묵을 일본 승려 쓰다 가이준에게 맡겼다고 한다. 아직 존재조차 확인되지 않은 유묵이 다수라는 말도 있다. 박삼중 스님은 그간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찾아 하얼빈과 뤼순 형무소, 일본의 다이린지 등을 셀 수 없이 오고 가다 이 유묵을 일본의 골동품상에서 발견했고, 여러 차례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돌려받았다고 한다. 덧붙여 우리나라의 독립 의지와 염원을 담은 유묵 '독립'은 현재 한 일본 승려와 반환 협의 중에 있다고 한다.


일본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사찰에서 안중근이란 이름을 만나다니! 나도 모르게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통역 가이드에게 비석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안중근 유묵비라고 했다...(중략)

"어떻게 한국을 대표하는 애국지사의 유묵비가 일본 절에 세워져 있는 건가요? 제가 알기론 일본 사람들 중에는 안 의사를 두고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테러리스트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요?"

"그렇게 생각하는 일본인이 많지요. 어쨌든 일본의 영웅을 죽인 사람이니까요. 그렇지만 안중근을 추모하는 일본인들도 곳곳에 있습니다...(중략) 이렇게 매일 향을 피워 안 의사의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 <코레아 우라> 제1장에서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장에선 일제 강점기 말 서대문형무소 담벼락에서 태어났다는 스님이 우여곡절 끝에 불가에 귀의한 후 사형수들의 어머니로 불리기까지, 그리고 1984년에 재소자 관련 행사차 간 일본의 다이린지에서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만나게 됨으로써 안 의사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과정을 담담히 들려준다.

안중근 의사와 일본 헌병 지바 도시치(아래 지바)의 우정은 유명하다.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아래 이토)를 저격한 후 "3일 동안 한국인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이 빗발칠 정도로 당시 일본인에게 이토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다고 한다.

군인 정신이 투철했던 지바에게도 안 의사는 당장 때려죽이고 싶은 원수였을 것이다. 지바 또한 다른 일본인처럼 처음에는 안 의사를 몹시 살벌하게 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지바는 안 의사가 사형된 후 그리 오래지 않아 전역했는데, 그날부터 매일 안 의사의 위패를 모셔 놓고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지바가 사망한 것은 1934년. 그는 아내에게 자신의 위패와 안 의사의 위패를 나란히 모셔달라고 유언한다. 이에 그의 아내는 죽는 날까지 안 의사를 위해 향을 피우고 기도한다. 그의 아내 또한 죽기 전 양녀에게 안 의사를 잘 모셔달라고 유언한다. 다이린지에 안중근 의사 유묵비가 세워지고, 수십 년 동안 안 의사를 추모하는 향이 피워져 온 것은 이런 사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어떻게 대를 이어 자기 나라의 영웅을 죽인 원수를 추모하는 정성이 가능할까? 안 의사가 사형 당한 것은 의거일(1909년 10월 26일)로부터 5개월을 꽉 채운 1910년 3월 26일. 그 5개월 동안 안 의사와 의사가 만난 사람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안 의사의 무엇이 수많은 일본인을 감동하게 하고 오늘날까지 숭모하게 하는 걸까?

우리가 안중근을 알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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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 wikipedia


제2장 '나는 군인 안중근이다'에선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처단해야겠다고 결심하는 동기를 시작으로, 의거 전후 안 의사에게 일어난 일들, 지바를 비롯해 투옥 중에 만난 사람과의 일들, 그리고 재판 과정과 일본의 태도 등, 뤼순 형무소에서의 5개월을 들려준다. 안중근 의사가 화자가 되어 들려주는 소설 형식이라 더 진솔하게 와 닿았다.

제1장처럼 설명 형식인 마지막 장에선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갖는 의미와, 하얼빈 의거가 당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 미친 영향, 유묵 '경천'이 우리 품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하루라도 빨리 찾아 와야 하는 이유, 오늘 우리가 안중근 의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등을 들려준다.

책 <코레아 우라>은 애국지사로만 생각하고 말기 십상인 안중근 의사를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나아가 세계 질서를 무너뜨린 일본과 그 수장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세계의 영웅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러일 전쟁(1905년)에서 승리한 일본은 당시 중국 정부의 용인으로 뤼순과 다롄의 영토권과 난만저우(남만주) 철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무렵 일본은 한국과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에서 장악력을 갖고 동양을, 나아가 세계 여러 나라를 삼킬 야욕을 갖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하얼빈 방문은 이런 배경을 깔고 있었다.

이에 안중근 의사가 그 야욕의 수장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억울한 사정을 세계 만방에 알림과 동시에 일본의 야욕을 세계인들에게 알린 것이다. 당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지 않았다면 동양의 훨씬 많은 사람이 일본의 총칼에 짓밟히고 더 나아가 세계의 지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저자가 30년 동안 수집하고 정리한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일까? 책은 우리에게 그간 많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그 가치에 비해 크게 부각되지 못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을 들려주고 있다. 올해는 광복 70년이자, 안중근 의사 순국 105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고자 기획한 이 책이 많은 사람의 가슴에 꽂혀 안중근 의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코레아 우라>(박삼중) | 소담출판사 | 2015-03-26 | 1만 4800원

코레아 우라 - 박삼중 스님이 쓰는 청년 안중근의 꿈

박삼중 지음,
소담출판사, 2015


#안중근의사 #하얼빈의거 #유묵 경천 #박삼중스님 #보물 제5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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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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