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쓰는 로봇... 기자 지망생이 좌절한 미래

[서평] 달콤하지만도 씁쓸하지만도 않은 <유엔미래보고서 2045>

등록 2015.04.24 16:17수정 2015.04.2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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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처음 쓰게 된 건 2013년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만 쓰지 않는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남의 불편까지 감수하며 고집을 부릴 만큼 용기가 있진 않았다. 그렇게 뒤늦게 접한 스마트폰은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그 전까지 전혀 사용하지 못했던 애플리케이션이 신세계를 선사해줬다. 불필요한 대기 시간은 버스 애플 덕분에 사라졌고, 심심한 시간도 웹툰 애플이 채워줬다. 그러나 잃은 것도 있었다.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사라졌고, 스마트폰이 손에 없으면 불안해지는 '노모포비아' 증후군도 일상적으로 겪게 됐다.


불과 2년 전의 경험을 들춰내는 까닭은 <유엔미래보고서 2045>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래는 이렇게 설계돼 있으니 그 환경에 잘 적응해보렴' 같은 뉘앙스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입견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 건 고집을 부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그 책의 가치를 판단할 순 없다. 2045년의 미래를 알려준다는데 내게 해가 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런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인간의 수명 연장,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인공 지능, 생태계 환경을 위협하는 지구 온난화. 현상에 관한 설명과 예측, 그리고 그 현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내용이 전개된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래 연대표로 간결하게 정리하고, 2045년 일상의 가상 시나리오를 소개한다. 그중에는 '과연 이게 가능할까' 싶어 의구심이 생기는 부분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본문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죽음이 멀어지면 종교가 사라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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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미래보고서2045> ⓒ 교보문고

첫 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합성 생물학과 생명공학의 협력 결과, 인간 신체가 대체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2025년경이면 인간 신체의 78개 이상의 장기가 3D 프린터로 제작될 수 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건강과 장수를 도와주는 단백질 'Sirtuin1'을 만드는 유전 물질을 섭취하고, 노화의 비밀이 담긴 텔로미어(염색체 말단 부분)의 소실 속도를 늦춤으로써 인류의 수명은 100세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뇌 임플란트와 리버스 엔지니어링 기술을 통해 2025년경부터는 알츠하이머 역시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 내다본다.


인체의 가장 중요한 부위 중 하나인 뇌를 교체하는 기술이 개발될 수도 있다. 미래학자 이안 피어슨은 2050년 인간이 뇌를 슈퍼 컴퓨터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피어슨은 컴퓨팅 파워가 50년 내에 인간을 사이버 공간에서 영생할 수 있다고 봤다. 이렇게 되면 업로드한 마인드를 기계에 다운로드해 계속 살아갈 수 있다. 영화 <트랜센던스>처럼 육체는 죽지만 정신은 컴퓨터와 가상 현실에서 있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른다.

미래에도 불치병은 있다. 그럴 때는 냉동 보존으로 수명 연장을 이룰 수 있다. 사실 냉동 보존 기술은 1962년 처음 제안된 아이디어다. 그러나 냉동 보관 중 세포의 의학적, 화학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어 이를 방지해야만 하는데,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1990년대 후반 이미 개발됐다. '유리화'하는 방식으로 특정 조건에서 뇌가 작동을 중지하면 기억의 장기 보존이 가능하고 나중에 복구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윤리적 문제가 발목을 잡을 것이다. 천문학적 비용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생명의 순리를 거스른다는 비판이 있는 것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은 환자를 냉동한 후 생물학적 쌍둥이로 부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논쟁을 부를 여지가 많다.

책에서는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인간의 결혼에 대한 욕구는 점차 약화할 것으로 바라본다. 한 번 결혼하면 80년 가까이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결혼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또 가상 현실의 발달로 인간은 더 이상 육체적인 쾌락보다 사이버 공간이 주는 정신적인 쾌락을 추구할 수 있다고 본다. 출산 역시 '디자이너 베이비'가 탄생하면서, 인공 수정을 통해 출산하는 현상이 더 자연스러워질 것으로 예측한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다른 대상에 대해 애정을 느낄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종교에 관한 이야기다. 수명 연장으로 죽음이 멀어지는 만큼 과학이 종교를 밀어내는 현상이 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죽음의 공포가 줄어들고, 노인들도 종교보다 일을 더 중시하게 되면서 종교의 필요성과 수요가 사라진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2040년 이후에는 기술 발달로 빈부 격차가 사라지고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게 돼 유일한 걱정거리인 죽음을 직시하게 되고, 종교나 영성에 심취하게 되는 정반대의 연구도 있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종교는 점점 더 영향력이 강해질 것 같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면서 인간은 보다 더 인간적인, 정서적인, 영적인 것을 찾을 공산이 크다. 결혼이 사라진다면 오히려 애착 관계를 위해서라도 사람들을 종교를 구하려 하지 않을까?

퓰리처 상은 이제 컴퓨터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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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랜센던스> 영화에서는 천재과학자 윌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시킨다. 윌은 온라인에서 본인만의 세계를 넓혀간다. ⓒ 알콘 엔터테인먼트


2장에서는 인공 지능과 미래의 로봇이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예측과 분석이 주로 소개된다. 구글의 기술 이사이자 발명가인 레이 커즈와일은 인공 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는 기술을 갖게 되면, 더는 인공 지능이 아니라고 했다.

그 시기는 2045년으로 예상된다. 커즈와일은 인간의 지능과 인공 지능은 유기적으로 결합할 것이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반면 물리 천체 학자인 스티븐 호킹은 인공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순간 인류는 멸망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사실 가장 뼈 아픈 부분은 기사 작성하고 소설 쓰는 인공 지능이 개발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컴퓨터가 알고리즘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1952년부터였다고 한다. 페란티 마크 1이 시초인데 본래 연애 편지를 쓰기 위해 개발됐다고 한다. 이 기술이 지금까지 업그레이드되어 기사를 작성하는 뉴스봇이 탄생했다.

2013년 <LA타임즈> 알고리즘은 새벽에 LA에 찾아온 가벼운 지진에 관한 기사를 처음으로 써서 신문에 게재했다고 한다. <내러티브 사이언스>와 <포브스>도 컴퓨터가 쓰는 기사를 이용한다. 대부분 날씨, 스포츠, 금융 등 데이터 관련 기사를 작성한다. <내러티브 사이언스>의 크리스티안 해먼드는 2017년 컴퓨터가 퓰리처상을 받을 것이며, 2030년이 되면 기사의 90%를 인공 지능이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절망적인 뉴스다.

하지만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다른 대부분의 산업에서도 인공 지능이 영향을 미친다. 무인차가 개발되면서 기존 운송업, 운수업에 종사하던 이들은 모두 대체된다. 또 현재도 상용화된 무인기의 보편화는 기존 택배 서비스, 경비원, 소방관 등의 대체를 동반한다. 그뿐인가. 3D 프린터의 개발은 모든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샘솟는다. 인공지능과 로봇, 인간을 더 힘 빠지게 만드는 건 아닐까?

꼭 그렇지만도 않단다. 의료 로봇의 도입으로 사람들은 굳이 병원을 이용하지 않고도 건강을 챙길 수 있다. 또 현재의 정부 기관 시스템도 대부분 미래에 필요가 없어진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부작용을 감시할 사람은 필요할 것이다.

미래에는 현재의 3D 프린터를 뛰어넘는 4D 프린터도 개발될 예정이다. 제작된 물건이 입력된 상황에 처하면 저절로 형태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현재진행형인 사물인터넷 시장도 2020년 현재의 7배로 성장해 최대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예측한다. 이러한 기술들이 보편화되면 인간의 삶은 보다 편리해질 것이다.

생존의 문제, 지구 온난화

세 번째 장에서는 지구 온난화를 화두로 제시한다. 사실 지구 온난화라 하면 우리 세대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여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2021년이면 지구 온도가 1℃ 올라가고, 2041년이면 2℃ 올라간다는 책의 내용을 접하면 미래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지구 온도가 평균 3℃ 이상 상승하는 2056년이 오면, 자연과 인간의 시스템이 영구적으로 붕괴될 수 있다고 책은 경고한다. 기후 변화로 가장 피해를 보는 국가는 아프리카다. 가뭄, 식수 부족 등으로 아프리카는 죽음의 땅이 된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방법은 지금 당장 행동하는 것 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의 저자 나오미 클레인은 자본주의와 기후 변화가 반대 방향을 지향해 갈등을 빚는 것이라 지적한다.

심각한 기후 위기에도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많은 국가가 자신들의 삶을 변화하기를 꺼려서 지구 살리기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인권 운동이나 인종 차별 문제처럼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기후 위기에 얽힌 각국의 이해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령 중국은 온실 가스 감축에 그동안 반대했다. 선진국들이 지금껏 실컷 배출해오던 온실가스로 지구 온난화 위기가 왔는데 이제 막 성장하는 중국에게까지 온실 가스를 감축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2014년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온실 가스 감축에 합의했다. 세계 1, 2위의 온실 가스 배출국이 감축에 합의한 사실은 그만큼 지구 온난화 문제가 지구 구성원 모두의 문제임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피해만 보는 국가만 있는 건 아니다. 시베리아 지역의 동토가 녹아 훌륭한 경작지가 될 수 있다. 또 수온의 변화로 어업에서도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미래에 물 부족에 직면할 브라질과 대조적으로 러시아는 담수 차원에서 어려움이 없다. 2030년이 되면 러시아의 영향력은 더 강해질 것이라 예측된다.

러시아 말고도 주목받는 땅은 캐나다, 스칸디나비아 등이다. 또한 남극의 경우 2092년경에 현재의 알래스카 기후와 비슷해진다. 2048년 남극조약이 끝나는 만큼 각국의 남극 개발 시도가 곧 도래할지도 모른다.

지구 온난화로 미래에 주목받을 산업은 탄소 배출권 거래, 신에너지 산업 등이다. 실제로 세계 각국은 지금도 석유보다 더 값싸고 효율적이면서도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우리 정부 역시 올해 에너지 신산업에 1조 83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풍력 발전, 스마트그리드, 태양광 발전, 핵융합 발전 등의 기술 등은 미래의 주요한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책은 술술 읽혔다. 허황된 말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재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추어 미래를 제시했기에 그럴듯해 보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회 문화 제도 등의 변화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다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곧 찾아올 미래는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니었다. 피터 드러커는 "계획이란 미래에 관한 현재의 결정"이라 말했다. 현재 당신의 계획에 미래는 포함돼 있는가?

○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락규 기자가 활동하는 팀블로그 별밤(http://byulnigh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유엔미래보고서 2045> 박영숙·제롬 글렌 지음 / 교보문고 펴냄 / 2015.01. / 1만 5000원

유엔미래보고서 2045

박영숙.제롬 글렌.테드 고든 지음,
교보문고(단행본), 2015


#유엔미래보고서 #유엔미래보고서 2045 #인공지능 #지구온난화 #수명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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