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에 반짝이는 어린 포도 잎을 보며

초보아빠 시절이 그립다

등록 2015.04.24 11:31수정 2015.04.2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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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나무 두 그루를 해가 잘 드는 테라스 옆에 심었다. 테라스는 테이블을 놓거나 일광욕을 할 수 있으며 정원과의 조화를 위한 곳이라는데, 그렇다면 그곳은 테라스도 아니다. 겨우 1평이나 될까? 아무 치장 없이 인조목으로 대충 만들어 네 사람 앉기도 힘드니까. 그래도 목로 주점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판자로 된 널빤지 의자가 하나 있어 가끔 차 한 잔을 들고 나서거나, 막역한 친구들과 소주를 마실 때 사용하기도 한다. ​


그곳의 나무 난간에 기대 포도나무를 심어놓은 게 지난 4월 초다. 그 날 포도 나무를 포함하여 모두 23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배, 감, 사과, 앵두, 물앵두, 무화과, 매실, 대추, 다복솔, 모과, 수양 단풍, 호두, 복숭아, 주목... 나무를 구하긴 했는데 가져오면서 무슨 종류인가를 잊어버렸다. 그래서  나중에 그 형상을 봐가며 위치를 다시 옮길 작정으로 적당히 양지바른 곳에 일단 심었다. ​

급한 성질머리라 이튿날부터 묘목을 쳐다봤다. 언제 싹이 나오려나, 아침이면 햇볕을 발갛게 받고 있는 그 놈들을 쳐다보는 게 일과가 됐다. 2주쯤 지나니 드디어 싹을 비치는 놈들이 생겼다. 맨 먼저 사과 나무의 몸피가 달라졌다. 쑥색의 푸르스름한 색을 비치더니 이내 순정한 눈을 슬며시 내미는 게 아닌가. 집을 짓고 내 손으로 심은 첫 나무의 새싹이라니, 생명을 향한 진한 감성이 머릿속으로 밀려 왔다.​

다음이 모과였다. 몸 전체에서 오돌오돌한 돌기들이 솟구치더니 가늘고 긴 이파리를 팔랑였다. 이제는 제법 풍모가 그윽하다. 앵두와 물앵두도 거의 동시에 발그스레하게 움을 틔우더니 작은 부채형의 이파리를 바람에 일렁였고, 복숭아도 작은 잎이나마 틔웠다. 조금 큰 나무로 가져온 수양 단풍과 매실, 다복솔은 이미 성목으로서 큰 잎으로 아래 나무들을 그윽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이 무화과, 대추, 호두나무다. 무언가 뾰족한 것이 나오려는 듯 싶은데 최근까지도 의미 있는 몸짓을 보이지 않아 날마다 이 놈들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며 성원을 보내고 있다. 이제 포도나무 얘기를 해야겠다.

초보아빠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포도나무. ⓒ 고성혁

사실 포도 얘기를 하기 위해 지금껏 너스레를 떨었다. 드디어 오늘 아침, 포도나무의 솜털 부숭한 어린잎을 본 것이다. 따스한 해가 건넛산을 넘어설 제 햇살 속에서 경이롭게 피어 있는 새 생명의 어린 잎을 보는 감흥! 며칠 전 연분홍으로 돋은 돌기를 몇 개 발견하고 흥분을 주저앉히며 기다려 왔는데 비 온 뒤 끝의 오늘, 일제히 그 앙다문 입술을 터트리고 생기를 내뿜은 것이다. ​


무엇이든 새 생명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지만 특별하게 포도의 새 잎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솜털이 촘촘한 연두와 연분홍의 어린 것이 고개를 외로 꼬고 놀란 모습으로 빼꼼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란 얼마나 황홀한지. 아마 손자를 보면 이러지 않을까? 내게 포도 잎은 언제나 경외와 찬탄의 대상이다. ​

사실 포도 나무에는 내 '초보 아빠'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동생, 세 식구서 내내 사글셋방을 떠돌다가 서른 즈음 처음으로 9평의 작디작은 집을 살 수 있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코딱지만 한 집이었어도 우리는 행복했다.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결혼했고 집세를 마련하기 힘들어 방 하나를 증축, 함께 살았다. 그렇게 방 세 개를 나눠 어머니, 나, 그리고 동생 식구들이 살면서 포도 나무를 마당에 심은 것이다.​

그 나무는 무럭무럭 컸고, 해마다 솜털이 부숭부숭한 형용으로 내 눈을 설레게 했다. 그러다가 나도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낳았다. 첫 아이가 세 살 무렵부터 포도나무는 새까만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그 때는 키가 부쩍 커져 슬라브 옥상까지 닿았다. 조카들을 포함해 다섯 아이들은 여름이 되면 언제나 그곳에 올라갔고 나무들과 이파리를 만지며 어서 열매를 맺어줄 것을 간청했다. 큰 아이는 어쨌는가. 이놈은 저녁까지 그곳에서 놀다가 텐트를 치고 나와 함께 자자고 조르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한없이 자애로운 눈길로 어린 손자들을 쳐다보시며 '내 집'에 사는 기쁨을 누리시는 듯했다. 아, 스물다섯 해도 전 일이다. ​

그때 나를 졸랐던 녀석들은 이미 내 곁을 떠났고, 어머니도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남기신 채 영원한 길로 가셨다. 고아가 돼버린 것이다. 이제는 그 때의 슬라브 옥상 같은 '널빤지 의자'에 앉아 아이들의 귀가를 기다리며 아내만 바라보고 있다. 아, 오늘 아침 포도 잎은 내게 묵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반추의 통로였구나.
덧붙이는 글 무등일보에도 송고했습니다.
#산골 #봄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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