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을 꿈꾸며 '정치'를 바라보는가

[시골에서 읽는 인문책] 고성국,지승호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

등록 2015.04.26 19:39수정 2015.04.2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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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
 고성국·지승호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5.4.24.

겉그림. ⓒ 철수와영희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 얘기는 조선 무렵부터 불거졌다고 하며, 오늘날에도 이 얼거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공장이나 위해시설은 서울에서 벗어나고, 서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서울로 몰립니다. 무슨 일이든 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고 여겨 버릇합니다.


시골에서도 서울바라기이고, 커다란 도시에서도 서울바라기입니다. 아무튼 서울에 한발을 걸치고 살아야 뭐가 되든 된다고 여깁니다. 서울에 있는 '서울'대학교가 서울 아닌 곳으로 옮기고, 청와대와 국회가 서울 아닌 곳으로 가며, 공공기관이며 크고작은 회사가 서울 아닌 데로 떠난다면 서울바라기는 줄어들 수 있을까요?

대학교와 행정기관과 회사가 서울을 떠난다면 서울바라기는 여러모로 줄어들리라 느낍니다. 다만, 줄어들더라도 크게 달라지지는 못하리라 느낍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대학교와 시설과 기관이 서울에서 떠나더라도, 사람들은 서울에 많이 남을 테니까, 서울에 있어야 '돈'이 모이거나 된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으리라 느껴요.

.. 인적 자원만 놓고 보면 새누리당보다 새정치연합 쪽이 훌륭해요. 그런데 왜 이 모양이냐? 저는 그게 마음을 제대로 비우지 못해서라고 보는 거예요. 내가 지금 당장 금배지를 달아야 하고, 당권도 잡아야 하고, 대선주자도 되어야 하고,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길이 없는 거예요 … 이벤트 몇 번으로는 어렵고요. 그건 새누리당이 더 잘하죠. 당 색깔까지 확 바꾸잖아요 … 진보 진영이 결코 새누리당을 얕봐선 안 된다는 겁니다. 야권 지지자들에게는 그런 경향이 있어요. 표현 하나 하나가 상대에 대해서 시니컬해요. 잠깐 화풀이는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자세로는 못 이깁니다. 상대를 경쟁상대로 인정하고 분석하지 않고서 어떻게 이길 수가 있겠어요 ..  (14, 17, 33쪽)

시골에는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시골에서 면이나 읍 한 곳에서 사는 사람 숫자는 서울이나 큰도시에 있는 아파트 단지 한 곳보다 적기 일쑤입니다. 시골 군 한 곳은 서울에 있는 동 한 곳보다 사람 숫자가 훨씬 적습니다.

사람이 적은 시골은 조용합니다. 사람이 적은 시골은 자동차도 적어 바람이 훨씬 맑습니다. 사람이 적은 시골은 서울과 달리 일거리나 돈벌이가 매우 드물지만, 시끄러운 소리도 매우 드뭅니다. 모내기와 가을걷이로 바쁜 봄가을 한철을 빼면 농기계 소리를 들을 일조차 드뭅니다.


사람이 적은 시골이니, 시골에서는 층집을 올리는 일이 드물고, 땅밑을 파서 살림집을 꾸미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누구나 마당을 누리고 텃밭이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어느 집에서나 마당 한쪽에 꽃나무나 열매나무를 심어서 가꿀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마당에서 쿵쿵 뛰든, 집에서 콩콩 구르든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피아노나 기타를 마음껏 칠 수 있고, 노래를 목청껏 부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적은 시골인 만큼,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그렇다고 일자리가 아예 없지 않습니다. 씨앗을 심거나 열매를 따는 일을 하는 일거리는 많습니다. 무엇보다 내 밥을 손수 일구어서 얻을 수 있습니다. 과자나 라면이라면 가게에 가서 사다 먹어야 할 테지만, 내 밥을 내 손으로 땅에서 얻는 곳이 시골입니다. 밥 굶을 일은 없는 시골입니다.

..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믿고 싶은 걸 믿었던 겁니다. 당시 누가 이길 것이냐를 두고 평론가들 사이에 논쟁이 좀 있었죠. 저는 박근혜가 유리하다고 봤고요 …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분명한 목표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겁니다. 그런 치열함이랄까 처절함을 '수첩 공주'라며 비아냥거린다거나 권위적이라는 식으로 가볍게 놀리듯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저는 본 거예요. 오히려 당시 야권의 후보들이 그런 치열함이 있었느냐고 반문해야죠. 상대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그걸 보고 아무런 경각심도 가지지 못한다면 이길 수가 없죠 ..  (19, 20쪽)

시골사람이 시골일을 모두 손으로 하던 때에는 학교에서 '농번기 방학'을 두었습니다. 시골에서 아이들이 도시로 떠나고, 시골마을마다 온갖 농기계가 들어오면서 이제 '농번기 방학'을 더 두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아이들한테 시골일을 가르치는 어버이는 매우 드뭅니다. 요즈음 시골에서 여느 어버이는 하루라도 빨리 아이들이 시골을 벗어나서 '몸 안 쓰고 돈 잘 버는 도시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시골 초·중·고등학교도 시골아이가 하루 빨리 '도시내기'가 되도록 가르칩니다. 시골에서 쓰는 교과서는 서울에서 만든 표준 교과서일 뿐이고, 서울 같은 큰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공장 노동자가 되는 길을 알려줄 뿐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모내기를 언제 하는 지 모르기 일쑤이고,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어도 꽃이 피거나 열매가 맺는 철을 모르기 일쑤입니다. 시골학교조차 시골일을 시골아이한테 안 가르치니, 도시학교에서도 아이들은 시골일을 배우기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는 도시에서 밀려나지 않는 길을 학교에서 배우고,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는 도시로 들어가는 길을 학교에서 배운다고 할 만합니다.

.. 지난날 민주화 운동, 재야 운동의 도덕적 정당성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 이름 모를 이들의 희생과 실천이 쌓여서 생긴 거잖아요. 지금의 진보 진영이 그 기반 위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겁니다 … 원칙과 가치를 관철할 전략적 유연성, 박근혜 정부는 이게 없어요 … 야당에서 자꾸 과거 권력을 심판하자고 나서는데 그건 잘못된 전략이에요 … 국회의원이건 대통령이건 앞으로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이기 때문에 선거는 미래에 대한 선택입니다 … 문제는 옳은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행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왜 졌는지도 알고 어떻게 하면 이기는지 뻔히 알면서 안 하잖아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특정 정파의 이익을 대변합니다 ..  (31, 37, 39, 43쪽)

고성국 님과 지승호 님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갈무리한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철수와영희,2015)를 읽습니다. 이 책은 정치평론을 하는 고성국 님이 바라보는 '한국 정치 이야기'를 다룹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한 사람이 붙고 한 사람이 떨어진 까닭을 찬찬히 짚습니다. 다음 대통령선거에 나올 만한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마음결과 몸짓으로 거듭나야 표를 더 받을 만한가 하는 대목을 곰곰이 짚습니다. 정치와 대통령선거와 사회 이야기를 다루는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인데,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대목보다도 '정치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대목을 깊게 다루면서 살펴보는 책입니다.

.. 여론조사 전문가들보다 훨씬 더 민심에 밝은 것이 지금의 정치인입니다. 그런데 막상 뭔가를 결정할 때 보면 국민여론과 동떨어져 있거든요. 왜 그럴까요? 우선 대통령과 청와대가 민심과 떨어져 있죠. 그리고 정부부처 장관, 차관들이 민심과 떨어져 있습니다 … 어디나 극단은 존재합니다. 다만 진보건 보수건 국민과 소통하려면 극단의 목소리를 걸러낼 이성이 작동해야 한다는 거예요 … 통진당 해산으로 진보 정당 운동의 전면적인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 된다면, 이를 국민적 대중 진보 정당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  (50, 67, 77쪽)

고성국 님은 한국 정치가 부디 '바른 길'로 접어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른 길'이면서 '제 길'을 걷고 '참다운 길'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기투표를 하듯이 벌이는 대통령선거가 아니라, 어느 정당 어느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히더라도 '삶을 살리는 정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쪽 정당이 이겨야 하거나 저쪽 정당이 져야 하는 대통령선거가 아니라, 어느 정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한국 사회를 아름답고 알차게 가꿀 수 있는 길로 나아가도록 '우리(시민)가 스스로 슬기롭게 깨우쳐서 정치 일꾼을 지켜보고 옳은 길로 이끌어 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니까, 어느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 앞서 '여느 정치 일꾼'으로 있을 적부터 제대로 '일꾼'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어야 사회를 살리고, 올바로 일하는 사람이어야 문화를 가꾸며, 참답게 일하는 사람이어야 교육을 바로세워서 이 나라에 평화와 평등이 널리 퍼지도록 힘쓰겠지요.

인기투표가 아닌 정책투표가 되어야 하고, 인기몰이를 하려는 정책이 아닌 참답게 삶을 가꾸려는 정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인기 정치인이 나오기보다는, 슬기로우면서 믿음직한 정치 일꾼이 서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 이명박은 한 번 장사꾼은 영원한 장사꾼이라고 하는 사실을 재임기간인 5년 내내 보여줬지요 … 정치인 박근혜는 선택과 집중을 굉장히 잘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박근혜는 선택과 집중에서 실패하고 있다, 저는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 제가 보기에 정치는 이류이고, 행정은 삼류이고, 기업은 사류입니다 … 저는 기업보다 정치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공적 관점, 인간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겁니다. 이윤을 얼마나 내느냐 하는 효율성을 놓고 보면 기업이 이유라고 폼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정치가 훨씬 나아요. 역사 발전의 측면에서 볼 때도 인간 존중은 이윤추구보다 한 단계 위입니다 ..  (92, 93, 106쪽)

어떤 삶을 꿈꾸며 정치를 바라볼 때에 아름다울까요? 어떤 삶을 바라며 정치를 마주할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어떤 삶으로 나아가려고 정치를 살필 때에 즐거울까요?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를 찬찬히 읽습니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간층을 잘 살펴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면, 중간층은 무엇을 바랄까요?

중간층 입맛에 맞추어야 하는 선거가 아니라, 중간층을 비롯해서 이쪽과 저쪽이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면서 즐거운 삶이 되도록 힘쓸 수 있어야 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어느 정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한국 사회와 문화와 교육이 아름답게 서도록 가꾸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시골에서 살며 이 대목을 늘 느낍니다. 누가 심든 씨앗은 씨앗입니다. 이쪽 정당 사람이 심기에 더 잘 자라지 않습니다. 저쪽 정당 사람이 심은 탓에 말라죽지 않습니다. 씨앗은 오직 사랑으로 심어야 잘 자랍니다. 씨앗은 사랑으로 심은 뒤 오직 아름다운 손길로 돌봐야 잘 큽니다. 씨앗은 사랑으로 논밭에 깃들어 아름다운 손길로 보살핌을 받은 뒤, 오직 기쁜 손길을 타야 소담스러운 열매가 됩니다. 그리고, 밥은 우리가 모두 먹습니다. 이쪽 정당 사람은 굶어야 하지 않고, 저쪽 정당 사람만 배불러야 하지 않습니다. 모두 함께 나누어 먹을 밥입니다. 가난한 이웃이 있으면 정당을 가리지 말고 어깨동무를 할 노릇입니다. 배부른 동무가 있으면 배고픈 동무하고 밥술을 나눌 노릇입니다.

온누리를 골고루 어루만지는 햇볕처럼, 온누리에 골고루 깃드는 빗물처럼, 온누리에 골고루 부는 바람처럼, 온누리에 골고루 푸른 숨결을 베푸는 숲처럼, 한국 정치가 슬기로우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한국 정치가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자면, 정치 일꾼에 앞서 바로 우리부터 스스로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게 거듭나야 할 테지요. 우리가 스스로 바라는 대로 정치가 이루어질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제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 - 2017 대선, 박원순 vs 반기문

고성국.지승호 지음,
철수와영희, 2015


#중간층이 승부를 가른다 #대통령선거 #인문책 #고성국 #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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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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