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소주 광고 금지, 누굴 바보로 아나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 법률안 법사위에서 폐기해야

등록 2015.04.26 18:35수정 2015.05.1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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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광고에 나온 아이유


만 24세 이하의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의 주류 광고 출연을 금지하는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 법률안(아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드세다. 지난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를 통과한 이 개정 법률안은 탁구 선수 출신의 새누리당 비례대표 이에리사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이다. 이른바 '아이유 술 광고 금지'라는 제목의 보도들이 눈길을 끌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 의원이 처음 발의한 개정안에는 "운동선수, 연예인 등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과 "만 24세 이하의 사람"을 "주류 광고에 출연시켜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복지위는 "청소년에게 중대한 영향"이라는 문구가 모호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삭제하고 나이를 광고 출연 제한의 중요 기준으로 정해 해당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 의결을 남겨놓은 상태다.

개정안이 최종 확정되면 만 24세 이하의 운동선수나 연예인 등은 TV뿐만 아니라 라디오, 신문, 포스터 등 다양한 매체 및 수단을 활용한 주류 광고에 출연이 전면 금지된다.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는 음주를 조장하는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함으로써 청소년들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는 게 법률안의 설명이다.

왜 하필 만 24세인가

처음 논란이 된 것은 '왜 하필 만 24세인가'하는 것이었다. 이미 우리나라는 민법상 만 19세 이상을 성인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24세 성인의 술 광고 출연을 금지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논란에 "'청소년'이란 9세 이상 24세 이하인 사람을 말한다"라고 규정한 청소년 기본법을 근거로 했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그런데, 또 다른 청소년 관련 법률인 '청소년 보호법'에서는 '청소년'을 "만 19세 미만인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19세 이상을 성인으로 간주하는 민법을 따른 것이다. 이 법은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물과 약물 등이 청소년에게 유통되는 것과…(생략)…청소년을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구제함으로써 청소년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법률의 목적대로 하자면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은 청소년 기본법이 아니라 청소년 보호법을 근거로 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음주를 조장하는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이 개정안의 목적이니 말이다. 술 광고의 출연 금지 대상을 24세가 아니라 19세로 하는 것이 그나마 타당했다는 뜻이다.


만 19세 미만이 술 광고 모델로 나오는 경우는 이미 없으니 그렇게 되면 결국 이에리사 의원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은 하나마나한 법률안이 되고 만다. 그래서 생뚱맞은 24세 규정을 가져와 '성인'의 술 광고 출연을 금지하는 황당한 법안을 내놓은 것일까. 그렇게만 하면 "음주를 조장하는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일까.

법률로 만 19세 이상을 성인으로 규정(그 타당성 여부는 차치하고)한 것은 단지 생물학적인 나이 혹은 숫자 19를 기준으로 내세운 게 아니다. 사회 전체가 19세 이상에 해당하는 개인을 성인으로 존중하고 대한다는 약속이며, 이들의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한층 더 강화해 보장한다는 선언이다.

성인이 되고도 한참이나 지났는데

그런데 다른 엉뚱한 법률을 가져와 이미 성인이 되고도 한참이나 지난 24세를 기준 잡아 술 광고 출연금지 운운하는 건 조약돌을 작두콩이라 우기는 것과 같다. 미성년인 청소년을 보호하며 위한다는 명분으로 다른 사람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금지하고 억압하는 건 폭력이다. 미성년 청소년 모두를 보호해야 하는 수동적 대상, 규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법률로 정당화 하려는 것이다.

이에리사 의원은 또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의 제안 이유에서 2011년 조사한 일부 중고생들의 음주율 등을 거론하며 청소년 음주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2010년 서울의 중고생 2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청소년 TV 주류 광고 노출 비율(56.3%)도 제시했다. 조사 대상도 제한적인 데다가 모두 4~5년 전 자료이다. 그렇지만 일부 중고생들의 음주율이 광고 모델의 나이와 연관이 있다거나 청소년 TV 주류 광고 노출 비율과 광고 모델의 나이 상관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단지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 등이 '청소년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이를 법률 개정의 이유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복지위는 '청소년에게 중대한 영향'이라는 문구가 모호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삭제했다. 아무 죄 없는 '24세 이하의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 등'만 남았다. 이에리사 의원의 법률 개정안의 근거가 더욱 위태롭게 된 것이다.

더욱이 한국주류산업협회는 2013년 우리나라 국민의 알코올 소비량을 측정한 결과 2012년과 비교해 맥주는 변화가 없고, 소주를 포함한 증류주가 6.5% 감소, 와인이 9.3% 늘었다고 밝혔다. 이는 과다한 음주를 줄이거나 알코올 도수가 낮은 저도주의 주류를 선호하는 음주문화 변화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최근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에리사 의원은 4~5년 전 자료를 들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계속 음주가 늘었고, TV 주류 광고를 많이 보며, 그것은 광고 모델이 청소년 기본법상 같은 무리에 속하는 24세 이하의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 등인 탓이 크다고 주장한다. 어느 것 하나 인과관계가 맞는 게 없다.

일부 청소년이 과다한 음주에 노출돼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으나 그 해결책으로 이미 성인인 술 광고 모델의 나이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겠다는 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청소년을 무언가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로 여기며 금지하고 규제해야 한다는 꼰대정신이 낳은 폐쇄적 사고의 슬픈 모습이다. '어른'이 할 일은 결코 아니다.

대한보건협회가 지난 2014년 지상파 3사의 드라마 72편을 조사한 결과 드라마 방송횟수 2431회 중 2564번의 음주장면이 등장했다고 한다. 거의 1~2회에 한번 꼴로 음주 장면이 등장한 셈이다. 기분 좋아 한잔, 우울해서 한잔, 실연의 슬픔에 한잔, 가족 불화에 한잔, 엄마도 한잔, 아빠도 한잔, 너도 한잔, 나도 한잔, 술술술. 술 권하는 사회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 우리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술에 관대하며 너그러운 사회. 이러한 사회 문화를 바꾸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청소년을 겨냥하고 특정 직업군을 일컬어 광고 모델의 나이를 제한하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지에서 비롯한 폭력이라는 것 말고는 해석할 방법이 없다.

청소년 바보 만들기 법률

너무 촘촘하고 많은 규제와 억압은 결국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 청소년기에는 더욱 그렇다.  "청소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당한 대우와 권익을 보장받음과 아울러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 이는 '24세 이하인 사람'을 청소년으로 규정하고 있는 청소년 기본법의 기본 이념이다. 이에리사 의원이 이것까지 읽어보았는지 모르겠다.

청소년 바보 만들기 법률이라는 오명을 쓰고 싶지 않다면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은 마땅히 폐기해야 한다. 법사위에서 하면 된다. 23살 가수가 술 광고 하는 것은 불법이고, 구순의 배우가 아직도 주량이 세서 소주 네댓 병은 술술 넘어간다고 방송에서 자랑하는 건 합법이라고 한다면 3년 전에 죽은 소도 벌떡 일어나 웃지 않겠는가.

○ 편집ㅣ이준호 기자

#건강증진법 개정안 #아이유 #주류광고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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