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만에 돼지고기를 먹었습니다

내가 '간헐적 육식'을 하는 이유... 식탐 줄이고 '공장식 축산' 탈피 노력해야

등록 2015.05.11 14:36수정 2015.05.1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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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정육 코너 앞에 한참을 섰다. 고소한 돼지고기 맛이 며칠째 목젖을 맴돌아 '이럴 바엔 한 번 먹자!' 결심한 뒤다. 하지만 눈 앞에 붉은 고기를 마주하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30분도 넘게 갈팡질팡, 답답함이 짜증으로 변한다.        

서울의 한 게스트하우스. 옥상에 돼지가 살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돼지를 본 건 무척 오랜만이다. 식용이 아닌 반려동물로서는 처음이다. 녀석은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꺼내 먹고 봄 햇살 아래 걷고 뛰며 개처럼 꼬리를 흔들기도 발라당 누워 낯선 이 손길을 허락기도 한다.

어느 육식 마니아들의 SNS 커뮤니티는 과거 변희재씨의 고깃값 논란 와중에 "고기를 먹었으면 고깃값을 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듯한 성명서를 낸 바 있다. 이곳에 올라와 있는 게시물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베이컨 치즈버거에 베이컨이 빠졌다며 총을 쏜 여성은 "무죄"
초콜릿에 한우가 들어있음 정말 맛있겠다
진정한 육식인은 365일이 '삼겹살데이'
"살다가 죽고 싶을 땐 고기를 먹어야겠어." 라는 대사의 웹툰
"채식하면 돼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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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가 밤낮으로 아른아른... ⓒ 이명주


과장과 억측 일색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웃을 넘길 만하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커뮤니티의 실체는 육식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했을 때 드러난다. 아래는 오늘날 가장 흔한 동물의 사육·도축 방식인 '공장식 축산'을 언급했을 때 대다수 회원들이 보인 반응이다.

'오늘 저녁은 개고기로 통일해볼까?'
'나는 사람고기가 먹고 싶다.'
'동물에게 감정이 있나요?'
'그렇게 걱정되면 자살을 하시는 게…'
'공장식 축산을 지지합니다!'
'식물도 감정 있는데? 해충들은? 바이러스들은?'

육식 즉, 고기를 먹는 행위 자체를 옳다 그르다 단정짓긴 어렵다. 이유는 식성(食性)도 타고난 본성의 하나기 때문이다(본성을 구현하는 방식이 여러가지임은 차후에 논하자). 하지만 '육식의 방법'에 있어서는 다르다.


육식을 하려면 반드시 다른 생명을 죽여야 하고, 그들 대부분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기를 원하고 고통을 두려워함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공장식 축산 하에서는 수없이 많은 동물들이 온갖 인위적 변형과 그로 인한 극한의 고통을  겪다 죽으며 우리는 그것을 무심히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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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육식 애호가들의 SNS 커뮤니티 회원들이 쓴 글들 ⓒ 이명주


여기서 잠깐, 육식 과정에의 문제를 논할라치면 '어류도 식물도 감정 있고 아프다는데?' 식의 반론 아닌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물고기와 꽃과 풀, 해충과 바이러스까지 각기 귀한 생명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모든 존재가 귀하고 고통을 느낄 수 있음이, 우리가 먹는 동물들에 불필요한 고통을 줘도 되는 이유가 되나?

앞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돼지. 넉살 좋고 사랑스러운 녀석을 보면서 나는 애석하게도 유대인 학살이 떠올랐다. 그러한 인류의 잔혹사가 가능했던 건, 몇몇의 악랄한 권력자보다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무지와 방관이 최대 동력이었음을. 근 백수십여 년간 지구 환경을 망치고 먹히는 동물은 물론 먹는 사람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공장식 축산의 배경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마트에서 30분 넘게 고심한 그날, 나는 결국 돼지고기를 먹었다. 공식적으로 2년여 만의 육식이었다. 공식적이라 함은 그간에 야채 김밥이나 야채 만두 속 그것을 '아차' 하면서, 또 누군가 남긴 것을 '버린다'는 이유로 먹어치운 경우를 빼고 스스로 내 몫의 고기를 사먹었다는 의미다.

어머니는 이런 내게 "결국 저(자기)도 먹으면서 괜히……" 하셨다. 하지만 묻고 싶다.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항시 육식을 하는 것과 나름 최선의 자제 끝에 간헐적으로 하는 육식이 같은가?'라고. 내 대답은 '절대 다르다'이다. 이것은 나의 육식을 합리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른 동물의 고통과 죽음을 줄일 수 있음을 말하고 싶어서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며, 현재로서는 그리 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21세기 홀로코스트와 다름없이 무생물처럼 대량학살 당하는 동물들의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육식을 멈추지 못하는 나를 볼 때면 진정 '잡식동물로서의 딜레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간헐적 육식 단계에 있다.

열 번 하고 싶은 육식을 한 번으로 줄이면 분명 그만큼의 생명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목적은 이렇게 자제하는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육식을 대체할 온전한 식습관을 익히는 것이다. 또 절대 육식을 포기하지 않을 다수 내 동족을 위해서 그들이 보다 '윤리적이고 건강한 육식'을 할 수 있게 공장식 축산의 부조리를 알리려 나름의 노력을 이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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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돼지를 만난 적 있으세요? ⓒ 이명주



○ 편집ㅣ박순옥 기자

#변희재고깃값 #간헐적단식 #미니돼지 #잡식가족의딜레마 #자유육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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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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