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복에는 피주머니, 팔에는 링거 5개

[암~ 난 행복하지!⑪] 끝이 아닌 시작

등록 2015.05.14 14:48수정 2015.05.1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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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갑작스런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 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어버릴지도 모른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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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거 병실에 옮겨 와서 정신을 차려보니 5가지의 링거가 내 팔에 들어가고 있었다. ⓒ 강상오


눈을 뜨니 회복실이다. 분명 저승은 아니고 내가 수술받은 병원이었다. 깨어난 걸 확인 한 간호사가 내 옆에 다가와 의식여부를 확인하는 질문을 몇 가지 하고는 심호흡을 계속 하라고 한다. 그래야 마취가스가 빠져서 후유증이 없단다. 그리고 잠들지 않게 계속 정신을 차리고 있으라고 했다.

그렇게 잠시 회복실에 더 있다가 수술실 밖으로 나갔고, 그곳엔 누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받기 전에 수술 시간이 얼마나 걸릴 건지 물어봤을 땐 오전 11시쯤 끝날 거라고 했는데 내가 수술실을 나온 시간은 오후 1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누나가 많이 초조했을 테다.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자서 그런지 내가 회복실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다고 한다. 이후에 안 사실인데 누나가 병원 오기 전에 몇 번 병원에 전화해서 자기가 보호자라며 무슨 일 생길 때마다 자기한테 연락 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내 수술현황이 문자메시지로 실시간 전송되었다고 한다. 수술실에서 나와 회복실로 옮겨졌을 때도 문자메시지가 갔는데 회복실에서 너무 오랫동안 안 나와서 더 걱정했단다.

수술을 끝내고 다시 이동용 침대에 누워 병실로 갔다. 병실이 있는 8층 엘리베이터에 문이 열리고 이동용 침대가 간호사실 앞을 지날 때 침대를 옮겨주는 분이 크게 소리를 지른다.

"강상오님 오셨습니다!"


그 소리에 간호사들이 일제히 나와 병실 문을 열어주고 나를 침대로 옮기는 걸 돕는다. 마치 군대를 보는 듯한 일사분란함.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다. 침대에 날 눕히고 또 나에게 말했다. 심호흡을 하고, 절대 자면 안 된다고. 누나에게도 환자가 잠들지 않게 하라고 당부를 했다. 마취가스가 빠질 때까지 심호흡 하고 잠들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심호흡을 제대로 하지 않아 한동안 두통에 시달렸다.

수술만 받으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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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거즈 병실로 옮겨와 갈증에 시달리던 나에게 물에 적신 거즈를 입에 물려주었다. ⓒ 강상오


수술받고 누워 있으니 입이 바싹 마르고 목이 탔다. 너무 물을 마시고 싶은데 한동안 아무것도 못 먹게 하니까 그것도 힘들었다. 너무 입이 타면 거즈에 물을 적셔 입술 정도만 적시라고 한다. 멍한 정신에 입에 젖은 거즈를 물고 누워 있는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울지 몰라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저녁이 되니 물을 조금씩 마셔도 된다고 했다. 목을 수술했기 때문에 목을 움직이는게 부자연스럽다. 입원 준비물을 나름 잘 챙긴다고 했는데 빨대를 챙기지 못했다. 수술하고 물 마실 때 반드시 빨대가 있어야 한다. 다행히 누나가 커피 사마시고 따라온 빨대가 있어서 컵에 빨대를 꽂아 조금씩 물을 마셨다. 물 마시고 나니 이제 정신이 좀 들었다. 목을 수술했지만 내 사지는 멀쩡하기 때문에 이후 퇴원할 때까지 병원생활에 크게 무리는 없었다.

저녁 회진 때 나를 집도한 의사가 병실을 찾았고 오늘 저녁부터 바로 식사를 해도 된다고 했다. 좀 무리가 될 것 같으면 죽을 먹어도 된단다. 저녁에 죽을  달라고 해서 먹고 나니 목 움직이는 것만 불편할 뿐 원래가 멀쩡한 몸이라 그런지 몸의 회복 속도는 좋았다. 단지 아직 목에 호스가 꽂혀 있고 끝에 달린 피주머니가 내 환자복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이 피주머니에 나오는 피의 양에 따라 퇴원시기가 결정된다. 피가 일정량 이하로 나와야 퇴원이 가능하다.

물 마시고 나서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간호사는 힘들면 누워서 처리하게 해준댔는데 나는 내 발로 걸어서 직접 화장실에 갔다. 단지 주렁주렁 달린 5개의 링거가 불편했을 뿐 그 외 움직이는 데는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수술은 끝이 났다. 갑상샘 종양의 크기가 3센티미터로 아주 큰 편이라 갑상샘 전체를 들어내는 전절제를 했고, 전이가 의심되는 림프절 24개를 함께 제거해서 조직검사를 했는데 그 중 7개에서 전이가 발견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진행된 상태였던 거다. 그 덕분에 수술만 받으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던 나의 싸움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갑상샘 #수술 #입원 #병실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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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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