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다가 올린 등불... 왜 꺼지지 않았나

[108 산사 순례기⑪] 팔공산 거조암

등록 2015.05.12 18:19수정 2015.05.1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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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종단소개에 따르면, 전국에는 대한불교조계종외 28개 종단에 수천 개소의 사찰이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찰 중에서도 '108산사'를 선정하여 기도순례를 떠나고자 합니다. 108산사를 찾을 때마다 부처님 앞에서 108배하며, 1사찰마다 1개의 염주를 꿰어 108염주를 완성할 계획입니다.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산사여행으로, 탐·진·치 3독을 끊어 보려 합니다. <108산사순례> 기도여행을 통해 모든 분들에게 알찬 정보를 드리고자 합니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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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 국보 제14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고려시대 건축된 건축물로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정도길


갈 길이 바쁘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220km를 넘게 달려 경북 경산 갓바위에 올랐다. 기도를 마치고서 약 10km 떨어진 은해사를 찾아 108배를 올렸다.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예서 멈출 수는 없다. <108산사순례> 기도여행을 중단할 수 없는 사정 때문이다. 지난 4월 25일 정오를 넘긴 시간, 이제 피곤함에 찌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은해사에 약 13km 떨어진 거조암을 찾아가는 길이다.


거조암은 은해사의 산내 암자 여섯 곳 중 한 곳으로, 국보 제14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이 있는 작은 절이다. 과수원에는 배꽃과 복사꽃이, 길가에는 왕벚꽃이 여행자를 반긴다. 활짝 웃음 핀 얼굴로 맞이함은 물론이다. 들판을 가로지르며 지나가는 기차 모습을 본 지도 참 오랜만인 정겨운 농촌 풍경이 정겹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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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영천시 들판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기차. 오랜만에 보는 정겨운 풍경이다. ⓒ 정도길


사람이 만든 물감 색이 곱다고는 하지만 자연색만큼이나 아름다울까. 앞산에서 먼 산까지, 산골짜기 양쪽으로 온통 연두색으로 치장했다. 늦봄을 지나 초여름으로 가는 신록의 계절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 '팔공산거조암'이라는 편액을 단 일주문.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임에도, 주변이 탁 트인 빈터 탓인지 왠지 휑한 느낌이다. 일부 사찰의 주차장은 절 밑 코앞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차량을 이용하는 여행자는 일주문을 넘어서지 않고 차를 타고 절 입구까지 가게 된다. 일주문은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가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은 너무 편하게 살려는 경향이 있다. 사찰여행도 마찬가지다. 세속을 벗어나는 일주문에서부터 부처님이 계신 법당까지, '깨닫기 위한 마음'을 가지는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무척이나 아쉽다는 생각이다.

불전사물을 안치한 영산루 좁은 돌계단을 오르니 연등이 하늘을 덮고 있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기 위한 불자들의 불심이 등을 타고 하늘거린다. 연등은 부처님께 공양하는 방법 중 하나다. 번뇌와 무지로 가득 찬 어두운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추는 것을 상징한다. '빈자일등'이라는 연등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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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 팔공산 거조암 일주문. ⓒ 정도길


불쌍한 여인 '난다'가 올린 등불공양... 세찬 바람에도 꺼지지 않아


석가모니 당시 '난다'라는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불쌍한 이 여인은 가장 존귀한 분을 위해 등불공양을 올리고자 종일토록 구걸을 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겨우 손에 쥔 것은 동전 두 닢. 여인은 이 돈으로 등과 기름을 사 부처님이 지나가는 길목에 놓고 간절히 기도했다.

"부처님, 제게는 공양할 것이 없습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등불을 밝히지만, 부처님의 크신 덕을 기리오니 이 공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다음 세상에 태어나 성불하게 해 주십시오."

세찬 바람이 불고 밤이 깊어가자 등불은 하나 둘 꺼져갔다. 왕과 귀족들이 밝힌 등불도 빠짐없이 꺼졌다. 그런데 이 여인이 켠 등불은 꺼지지 않고 불을 밝혔다. 그때 부처님의 제자 '아난'은 옷깃을 흔들어 불을 끄려 했으나 좀처럼 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밝게 세상을 비추었다. 부처님은 이 광경을 보고 제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부질없는 애는 쓰지 마라. 그 등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여인의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켠 등불이니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여인은 이 공덕으로 30겁 뒤에 성불하여 수미등광여래가 되리라."

연등에 관해 전해오는 이런 이야기를 아는 불자라면, 등 공양 하나도 지극정성을 다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날따라 봄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맡긴 채 흔들리는 연등. 커다란 서원과 정성이 담긴 그 연등 하나 하나는, 깊은 겨울 세찬 바람에도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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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 거조암 주 법당 앞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기 위한 수많은 연등이 걸려있다. ⓒ 정도길


휑한 모습의 일주문과 같이 법당이 있는 주변도 휑하기는 마찬가지. 주 법당인 영산전을 좌우로 전각 몇 채만 있을 뿐이다. 물론, 법당이 많다고 '좋은 절'이거나 '유명한 절'이라는 이야기는 아님을 밝힌다. 사찰순례를 통해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는 경우도 경험했다. 작은 법당, 작은 불보살상, 거친 느낌의 작은 돌부처가 있는 곳 앞에 서면 온 몸이 전율을 느끼는 것을 보면, 절 규모가 크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라는 것. 영산루 아래 돌계단으로 올라서니 오색 찬란 광명으로 가득한 연등이 하늘을 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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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조암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루. ⓒ 정도길


은해사 산내암자인 거조암. 신라 혜성왕 2년(738) 원참대사가 창건하고, 그 뒤 고려 우왕 13년 혜림법사와 법화화상이 영산전을 건립하여 오백 나한을 모셨다. 거조암 영산전은 1375년 건립됐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봉정사 극락전을 비롯하여,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수덕전 대웅전과 함께 고려시대 건축된 대표적인 건물로 귀중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이 건물은 얼핏 보면 서고나 경판고 같은 분위기를 느낀다. 정면 7칸, 측면 3칸, 맞배지붕 일자형 긴 건물에 흙벽과 단청도 하지 않은 검소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건물 아래를 받치는 기단은 여느 절과는 달리 장방형의 대리석이 아닌, 크고 작은 자연석을 오밀조밀하게 쌓아 올린 모습이 인조석보다 훨씬 인간적 면모를 느끼게 한다. 측면은 기둥과 들보를 그대로 노출 시키면서 어떤 방식으로 건축해 나갔는지 그 과정을 알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후면도 기둥과 흙벽으로 단출하기는 마찬가지다. 건물 아래쪽은 구멍을 내 공기 순환을 통해 내부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하게 했다. 세심함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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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 영산전 측면도 흙벽과 단청이 없는 단출한 모습이다. ⓒ 정도길


내부도 겉과 다르지 않은 수수한 모습이다. 천장이 없는 서까래가 그대로 돌출돼 있고, 건물을 지탱하는 주기둥을 가로지르는 대들보도 노출돼 있다.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지금도 집을 짓는 건축 중에 있는 건물로 보인다. 640년 동안 집을 지어 온다는 그런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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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조암 가는 길 연두색으로 치장한 산 속에 거조암이 자리하고 있다. ⓒ 정도길


국보 제14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영산전은 석가여래께서 영축산에서 <모볍연화경>을 설하신 영산회상을 중심으로 지은 법당이다. 문턱을 넘어서니 석가삼존불과 후불탱화가 나를 맞이한다. 법당 안 분위기와 느낌도 다른 사찰과는 확연히 다르다. 말 그대로 천양지차. 실로 놀라운 것은 법당 안을 가득 자리한 오백나한상. 모두 526 나한들은 돌을 깎아 만든 후 색을 칠하고 옷을 입히고 표정을 그렸다. 하나도 똑 같은 모양이 없는 각기 다른 표정과 자세, 그리고 옷 모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이 자아내게 만든다.

인간도 526나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 많은 나한상을 모시려다 보니, ㄷ자 모양의 단을 겹으로 둘렀다. 바닥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돌며 5백 나한들의 표정과 자세를 꼼꼼히 살폈다. 단 아래에는 작은 접시가 놓여 있는데, 사탕과 동전 그리고 쌀이 공양으로 올려져 있다. 백 원짜리 동전 하나씩만 공양해도 오만 원이요, 사탕 하나씩만 올려도 큰 봉지가 하나가 필요하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사탕 봉지는 영산루 1층에 판매하고 있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사탕 하나씩 공양했으련만, 아쉬움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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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 영산전 건물 아래쪽에는 구멍을 내어 실내 환기를 도우는 역할을 했다. 세심한 건축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 정도길


거조암 영산전은 건축한 지 오래되고 원형을 보존한 국보로서보다는, 법당 안에 모셔진 5백 나한상으로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신심 깊은 불자들에게는 꼭 가보고 싶은 사찰로도 유명하다. 모두 526개의 나한상엔 고유번호가 붙어있는데 구성은 이렇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10상, 16성중 16상, 5백 나한 500상 등 총 526상이다. 1번 가섭존자부터 10번까지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그런데 일부 백과사전에는 십대제자 순서로 첫 번째 지혜제일 사리불부터, 마지막 열 번째 다문제일 아난다까지로 돼 있는데 이곳에서는 순서가 다름을 밝힌다. 다음은 16성중으로 1번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고, 2번 가락가존자부터 16번 주다반탁가존자까지. 그 다음으로는 500나한상인데, 1번은 법해존자이고 마지막 500번은 무량의존자가 번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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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 국보 제14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앞에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 정도길


오늘따라 심기가 불편한 것일까. 500나한상의 자세와 표정이 불손(?)하다. 발뒤꿈치를 들고 두 손을 모은 채 화살표를 따라 합장 기도하며 돌다 어느 자리에서 멈췄다. 437번 '위분별존자' 앞에서다. 나의 기도대상을 찾았기 때문이다. 오른손은 무릎에 얹히고 마항에게 항복을 받아 내겠다는 항마촉지인 자세지만, 상체는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취한 삐딱한 모습이다.

고개는 오른쪽으로 완전히 돌린 채, 왼쪽 눈만 정면을 향한다. 바라보는 대상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분명치가 않다. 공부한 나한의 태도가 아니다. 기분이 상했는지 표정도 별로다. 장난감을 가지고 싶은데 사주지 않는 부모에게 떼를 쓰는 아이와 꼭 같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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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나한상 영산전에는 총 526기의 나한상이 있다. 가운데가 437번을 받은 '위분별존자'님. 자세와 표정이 불량(?)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나의 마음이삐뚤어졌음을 알았다.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지만, 관리자의 허락을 받고 촬영했음을 밝힌다. ⓒ 정도길


위분별존자 앞에 경전을 놓고 정좌하고 먼저 삼배를 올렸다. 그래도 풀어지지 않는 자세와 표정이다. 하기야 삼배한다고 금세 기분이 풀어지겠는가. 다시 108배를 올렸다. 머리를 땅에 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보니, 숨이 가쁘고 허리도 뻐근하다. 108염주 알이 반쯤 돌았을 때, 존자님을 바라보니 이제야 기분이 좀 풀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자세와 표정은 그대로다. 어떻게든 심기 불편한 위분별존자님을 위해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렸다.

드디어 108배를 마치고 존자님을 바라보니 공부한 나한의 모습으로 보인다. 열심히 기도한 덕분으로 존자님의 불량한 자세와 표정을 바꿨다는 성취감도 느꼈다. 그런데 사실은 애초부터 불량한 존자님이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불량하게 인식한데서 비롯됐다는 것을 기도를 마친 후에야 알았다. 사람은 겉으로 보는 것만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 속엔 또 다른 진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말이다.

<108산사순례> 17번째 사찰순례 팔공산 거조암에서 17번째 염주 알을 꿸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블로그 <안개 속에 산은 있었네>에도 싣습니다.
#국보 제14호 영산전 #거조암 #은해사 #500나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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