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외면하면 모든 선거는 필패다

[반론] 호남표는 새정치연합의 부채... 호남을 '지역'으로만 받아들여선 안돼

등록 2015.05.14 13:51수정 2015.05.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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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궐 선거 후폭풍이 만만치 않습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는 소위 '호남신당론' '호남정치 복원론'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5월 9일 자 정균영 전 민주통합당 수석사무부총장의 <호남정치 복원론, 그것은 '대선 패배'다> 주장글에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이 반론을 보내와 싣습니다. 이와 관련, 반론을 포함한 다양한 논쟁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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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선 참배 굳은 표정의 문재인 전국 4곳에서 치뤄진 4.29재보선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참패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달 30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힌 뒤 굳은 표정으로 서 있다. ⓒ 권우성


호남 정치 복원, 꼭 필요합니다.

정당이 정치를 할 수 있는 힘도, 방향도 모두 주권자에게서 나옵니다. 원리적인 차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권자의 요구에 반응하지 못하는 정당은 사멸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이철승, 전두환 정권 당시 이민우가 이끈 야당이 그랬습니다.

현실과 상징 양쪽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주권자는 '호남'입니다. 이때 호남은 '지역'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호남 및 호남 호응 주권자를 의미하고,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 그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를 의미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지역 등권론,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 균형 발전이 지역주의도, 국가주의도 아니듯이 호남 정치 복원의 '호남' 또한 지역으로서 호남을 지시하는 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호남'은 지역을 넘어선, 그 이상의 어떤 가치를 지니는 말입니다.

'호남'의 의미,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정균영 전 민주통합당 수석사무부총장이 기고한 주장글(관련 기사 : 호남정치 복원론, 그것은 '대선패배'다)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세 가지 부분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이 주장은 지역으로서 호남, 그리고  호남 출신 정치인 맥락에서만 '호남'을 쓰고 있습니다. 이 주장은 호남에서 '가치'를 추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알맹이보다 껍데기가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각각 전남 신안, 경남 김해 '출신' 전직 대통령으로만 보는 태도입니다.


둘째 이 주장은 철저하게 공급자 중심, 여의도 중심으로 정치 담론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내 호남 출신 국회의원이 40%에 달하고, 열린우리당 이후 출신지 기준으로 가장 많은 당 대표가 호남에서 나왔기 때문에 '호남 홀대론'이 근거없다는 주장이 그 전형입니다.

국회의원이 많고, 당 대표도 여럿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호남 민심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 의식이 '호남 홀대론'의 요지입니다. 호남 홀대론은 새정치연합을 지탱하는 최대 주권자의 의지가 새정치연합의 정치 행위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은 다른 논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수요자 중심, 주권자 중심으로 호남 홀대론을 이해했을 때 의미있는 논의가 가능합니다.

셋째, 이 기사는 "(호남 유권자는) 새정치연합의 중도 개혁 노선 이상의 진보성 강화 요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잘못된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호남 유권자에 대한 예의도 아닙니다. 야권 연대 틀이 강력히 작동한 2012 총선에서 호남은 통합진보당에 가장 많은 정당 투표를 했습니다(아래 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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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총선 통합진보당 지역별 정당득표율 ⓒ 민형배


'광주 > 울산 > 전남 > 전북' 순입니다. 지금 호남 유권자의 이념적 지향이 왼쪽이라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닙니다. 호남 유권자의 전략 투표가 '몰표'만은 아니며, 호남 유권자를 단순하게 함부로 규정해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전 주장의 안이한 상황 인식 하나를 더 이야기하는 것으로 제 주장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관련 글을 조금 인용해 보겠습니다.

"새정치연합이 한 가지 잊고 있는 게 있다. 세력으로서의 친노는 당에 없다. 의원들이나 문재인 대표 측근들은 진짜 친노의 실체가 아니다. 진짜 친노가 있다면 당 밖에 있는 수많은, 노무현 정신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국민들일 것이다.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선거 시에 최소한 새정치연합 지지율의 10% 정도는 좌우할 것으로 본다. 이들은 새정치연합이 총선에 승리하고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잘 관리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당 밖 이들의 정치적 지향성을 친노패권주의라는 음모론적인 잣대로 재단하려 든다면 새정치연합은 2% 부족한 정당이 아니라 무엇을 해도 질 수밖에 없는 10% 부족한 정당으로 전락할 수 있다."

노무현 정신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당 밖 10%가 친노 패권주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10%가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에 저는 진심으로 동의합니다. 문제는 이 주장이 여전히 '호남표(지역이든 가치든, 혹은 이 둘의 혼합이든)'를 확고부동한 상수로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옳지 않습니다.

2012 대선에서 안철수 현상의 최대 근거지가 호남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호남은 문재인 단일 후보를 비토하지는 않았습니다. 몰표로 화답했습니다. 2014 지방선거에서 전북 기초단체장의 50%, 전남 기초단체장의 36.3%가 무소속 당선이었습니다. 이후 치른 두 번의 재보궐선거에서 이정현(새누리), 천정배(무소속) 의원이 당선됐습니다.

호남표는 선거를 통해 새정치연합의 각성을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답하지 않았습니다. 호남표가 어디 가겠느냐는 안이한 생각 때문입니다. 호남표는 '당 안쪽'에 있는 당 소유의 자산이 아닙니다. 호남표도 당 밖 10%처럼 똑같이 소중합니다.

호남표는 당이 갚아야 할 부채입니다. 이 부채를 갚는 길로 호남표는 호남만의 특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야당 역할 똑바로 해라', '수권 능력 제대로 갖춰라', '호남 주권자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문제는 새정치연합 너희들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가치 지향적' 요구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새정치연합은 화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호남표의 인내는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호남표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고, 그것을 수습하는 방도 중 하나로 '호남 정치 복원'이 나오기까지 한 것입니다. 이 흐름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혹은 수용하느냐, 수용하지 못하느냐가 4.29 재보선에 임했던 천정배 의원과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차이였습니다.

호남의 각성 요구에 답하지 못한 새정치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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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재보선 광주 서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천정배 무소속 후보가 당선 확정 직후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지지자들과 환호하고 있다. ⓒ 강성관


그 언어가 호남 정치 복원이든 뭐든 상관없습니다. 지역과 가치 둘 다를 포괄하는 의미에서 '호남'을 중시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을 포함해 모든 선거는 필패입니다. 대통령 선거는 넘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새정치연합 자체가 사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 완패가 그 증거입니다.

사멸하는 모든 것은 사멸 전 징후를 보입니다. '4:0' 완패로 징후는 이미 드러났습니다. 이 징후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새정치연합의 존폐가 달려 있습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호남을 여전히 지역으로 한정 짓고, 국회의원들은 그들만의 리그에 빠지고, 호남표를 새정치연합의 당연한 권리로 여긴다면 기회는 증발할 것입니다. 이전 주장의 진단대로 가면 '폐'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호남은 오래전부터 새정치연합에 주권자 정치 복원 신호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이 사인을 '지역'으로서 호남 정치로만 이해했습니다. 거기에 들어 있는 주권자 정치라는 '가치'를 읽지 못했습니다.

지난 대선, 최대 유동표를 끌어 왔지만, 49:51로 졌습니다. 확장이 필요합니다. 장을 이동해야 합니다. 확장은 자기 영역을 더 넓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자신이 서 있는 영역이 어디 즈음인지도, 얼마 만큼인지도, 왜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확장도, 장이동(field shift)도 못하고 있습니다. 움직여 봐야 그 자리인 뫼비우스 띠에 갇혀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의 진지는 호남이고, 호남 호응 주권자가 중시하는 가치입니다. 지역으로서 호남, 가치로서 호남, '당 밖 10%'의 소중한 주권자로 채워져야 할 자리를 계파와 자영업 정치와 공학 정치가 점하고 있습니다. 지금 새정치연합 여의도 정치의 현실입니다.

새정치연합의 존립 근거, 행동 방향은 구체적인 지역, 구체적인 당원과 지지자여야 합니다. 이걸 인정하고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지역과 가치 양면에서 '호남'을 중심으로 놓고, 주권자를 소중히 여기는(국회의원 등 정치 공급자가 아니라) 확장 전략, 장 이동 전략을 짰을 때 가장 나은 결과가 나온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호남 정치 확실하게 복원해야 내년 총선도, 다가올 대선도 이길 수 있습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은 노무현 대통령 비서관 출신으로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전국 최고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호남정치 #민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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