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죄다 털리고 책을 또 내다니... '강심장'이네

[서평] 신은미의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등록 2015.05.20 11:34수정 2015.05.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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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심장이네...'

이 '아줌마'의 책이 또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탁 스친 생각이다.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펴낸 신은미씨. 대중 앞에서 '토크 콘서트'라는 형태로 북한 방문기를 이야기했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른 게 불과 몇달 전 일이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우수 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던 그녀의 첫 번째 방북기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는 2년이나 흐른 뒤 선정 취소됐다. 종북 시비에 검찰 고발, 강제 출국도 모자라 사제 폭팔물 테러까지…. 그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의 위협을 받았다. 하루아침에 '종북 아줌마'로 낙인찍혀 본인은 물론 가족들 신상정보까지 죄다 털리고 온갖 폭언과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이쯤 되면 기가 막히고 넌덜머리가 날만도 한데 또 책을 냈다니…. '김연아 멘탈'도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강심장' 아니겠는가.

수양딸·수양조카를 찾아 다시 북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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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표지 ⓒ 네잎클로바

신은미씨는 무엇이 그렇게 절실했을까. 그는 2011년 남편의 제안으로 처음 북한 땅을 밟은 후에 2012년 5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40일 동안, 2013년 8·9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을 여행했다.

그녀에게 북한 여행은 '미지의 땅' 북한에 대한 생각은 물론 그녀 자신의 삶마저도 바꿔놨다. 수양딸과 수양조카가 생겼다. 북한 여행 기간 신은미 부부의 안내를 맡았던 이들과 가족의 연을 맺은 것이다. 가족이 생기자 '분단'이라는 것이 구체적인 삶 속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이산가족'이 됐다.


신은미씨가 겪은 '분단'의 구체적인 모습은 '그리움'이었다. 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찾아가 볼 수 없는 장벽이 못내 서러움으로 사무친다.

그녀는 "수양딸·수양조카를 가진 나도 이럴진대 친형제·친부모와 헤어져 수십 년을 살아온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그 심정이 어떨는지 이제야 실감이 난다"라고 썼다. 그녀가 보기에 피붙이의 생사도 모르고 만날 수도 없는 것은 잔인한 '인권 말살'이다.

결혼한 수양딸 김설경씨의 임신 소식을 듣고 친정엄마의 심정으로 이것저것 선물을 챙겨 평양행 비행기에 오른 그녀. 이번 기행문의 부제를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행복한 여행'이라고 붙인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헤어졌던 가족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찼을 게다. 그녀가 보기에 '통일'은 사상이나 이념을 따지고 계산을 해야 하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저 가고 싶을 때 가고 보고 싶은 사람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일 뿐이다.

하지만 이 '평범한 일'은 아직까지는 '기적같은 일'이다. 그녀는 "남쪽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공산당이라면 무조건 증오하고 살아온 내게 '혁명의 수도'라는 평양의 한복판에 수양딸이 있고, 그의 집을 찾아와 지금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라면서 "마치 꿈만 같다, 내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다"라고 감격을 전한다(본문 120쪽).

산달에 접어든 설경을 만나고 돌아오는 시간은 안타깝고 애절하기만 하다. 신은미씨는 "하루빨리 남북관계가 좋아져서 가물에 콩 나듯 백 명씩 만나는 이벤트성의 이산가족 상봉이 아닌 수만 명이 대규모로 상봉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만일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이는 금세기 최고의 휴먼드라마가 될 것"이라면서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마음으로 통일을 논하자"고 기원한다(본문 132쪽).

'보수적인' 아줌마의 눈에 비친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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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황해도 해주 시내 모습 ⓒ 신은미


조금 '특별한' 이 기행문을 읽다 보니, 사느라 바빠 잊고 있었던 나의 '특별한' 추억도 떠올랐다. 나는 2000년대 초 금강산 관광이 한창일 때 지인들과 함께 두 차례 금강산을 방문했었다. 한 번은 유람선으로, 한 번은 육로를 통해서 다녀왔다. 솔직히 '천하제일명산'이라는 금강산의 절경은 눈에 별로 안 들어왔다. 대신 어쩌다 만나게 되는 북한 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표정을 지으며, 어떤 말을 하는지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그들이 '뿔 달린 도깨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랑 별반 다를 거 없네'라는 생각에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이 '무장해제' 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조금은 '촌티 나는' 옷을 입었을 뿐이지 동네 골목에서 흔히 마주칠 것 같은 평범한 이웃의 모습이었다.

신은미씨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하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난생처음 북한을 여행하는데 그쪽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제일 궁금하지 않겠나. 그녀는 '북한이 얼마나 잘살고 못 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우리와 함께 한 공동체를 이루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을까'라는 게 가장 궁금했다고 한다(본문 22쪽).

그녀가 보기에 북한은 곧 붕괴할 것 같지 않다. 자신이 북한 전문가도 아니면서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그녀가 만났던 북한 사람들 때문이다.

"한 사회가 붕괴될 때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정신적인 타락이나 나태 혹은 침체가 먼저 시작된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본 북한 주민들에게는 그들만의 뭔가가 있다. 그것은 위락 도저히 알 수 없는, 혹 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없는 그 뭔가가 지금 북한을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이다."(본문 131쪽)

이 아줌마의 '촉'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지도자가 인민이 혼연일체 된 사회? 주체사상으로 똘똘 뭉친 나라? 공포정치와 세뇌교육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 뭐라고 해석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북한 붕괴만을 기다리는 것은 한민족 앞에 놓인 기회를 날려버리는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많은 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북한은 그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나라'다(본문 180쪽).

남과 북, 서로의 마음을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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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복권 당첨 상품 목록 ⓒ 신은미


그녀가 처음 북한에 갔을 때와 비교해봤을 때, 평양은 확실히 변하고 있었다.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도로에는 깨끗하게 잔디가 깔렸다. 전기 사정도 훨씬 나아졌고 레스토랑·맥줏집 같은 음식점도 성행 중이다.

여전히 탈북자들이 존재하고, 평양과 지방 도시 사이의 격차도 크다.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이전에 비해 사정이 나아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늘어서 도시가 훨씬 활기차기도 하다.

신은미씨는 평양역 앞에 줄지어 늘어선 스낵코너에서 복권을 긁고 있는 여성을 만나 깜짝 놀란 일화도 소개한다. 사회주의 국가에도 '로또'가 있단 말인가? 당첨금은 얼마나 될까? 이 여성이 당첨된 것은 상금이 아니라 상품으로 고작 볼펜 한 자루였다.

평양에서는 이런 종류의 복권 가게들을 만날 수 있는데, 상품은 세탁기·선풍기·고급 이불 등 다양하다고 한다. 한 번 당첨에 수십 수백억 원이 왔다 갔다 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로또'에 비하면 어린애 '뽑기' 수준이지만, 북한에도 복권이 있다는 사실에 이 사회가 훨씬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북한을 여행하기 전까지 나는 북한 사람들은 모두 집권자들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꼭두각시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에도 주민들 사이에 흐르는, 무시되지 않은 정서가 있고 여론이 있다. 북한이 남한 동포들의 마음을 사야 하는 것처럼, 남한 또한 북한 동포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고 북한 주민들은 말한다. 소위 '6.15 시대(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부터 이명박 정부 전까지)'라고 불리는 그 시절을 가리키는 것 같다. 당시에는 남한 정부의 발표나 언론 보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단다. 그렇다, '신뢰'는 생겨나는 것이지 만드는 게 아니다."(본문 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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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한 가스맥줏집 풍경. ⓒ 신은미


이 글의 주제가 '북한'이다 보니 글이 좀 무거워졌다. 독자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덧붙이자면, 이 책은 그냥 가볍게 읽어도 될 만큼 쉽고 재미있다.

대동강변 강태공 할아버지들이나 평양 맥줏집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술을 마시는 여성들, 일찌감치 여성해방을 이뤘다고 선전하면서도 여전히 봉건 잔재에 찌들어있는 쩨쩨한 북한 남성들의 이야기까지. 그녀는 북한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들을 생생한 사진들과 함께 재미있게 풀어놨다. 여기에 남과 북 모두에게 '할 말은 꼭 하고야 마는' 아줌마의 근성이 보태져 '리얼한' 북한 방문기가 됐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덧붙이는 글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신은미 지음 / 네잎클로바 펴냄 / 2015.04 / 2만2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행복한 여행

신은미 지음,
네잎클로바, 2015


#신은미 #북한 #종북 #방북기 #통일 토크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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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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