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아픈 줄도 모르고"... 엄마는 울었다

[암~ 난 행복하지!⑬] 퇴원 그리고 눈물

등록 2015.05.17 17:51수정 2015.05.1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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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갑작스런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 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 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을지도 모른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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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나의 방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랐던 나의 방. 퇴원을 해서 내 방에 들어서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 강상오


입원 4일째. 오늘도 변함없이 간호사가 피주머니에 든 피의 양을 측정하러 왔다. 4일 내내 세수 한번 못하고 머리도 못 감고 완전 더러운 몰골로 피 양 측정을 했다. 얼른 익숙한 우리집 욕실에서 깨끗하게 샤워하고 뒹굴거리면서 TV 채널을 돌리고 싶다. 그런 바람을 알아준 것인지 예정보다 하루 일찍 퇴원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다는 걸 거부하고 계속 2인실에 있겠다고 했는데 바로 내일 퇴원할 수 있다니, 잘한 선택이었다. 내일이면 집에 간다는 생각에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다음 날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의 감정과 난생 처음 미팅에 나가기 전날 대학생의 감정이랑 비슷했던 것 같다.

내일 집에 간다는 생각에 나는 용기를 내어 병원 내 샤워실로 갔다. 숫자가 많이 줄긴 했지만 아직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그래도 목 안에서 나오는 피를 빼내기 위해 달려 있던 피주머니와 호스를 제거하고 봉합을 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래도 거의 일주일 만에 새로운 삶을 얻어서 집에 가는데 꼬질꼬질하게 갈 수는 없지 않나.

피부를 절개하면 무조건 꿰매고 실밥을 뽑아야 하는 줄로 알던 나에게 의료용 본드는 신세계였다. 본드로 피를 빼내는 호스 구멍을 봉합하는데, 딱 '5초 본드'라고 불리는 순간접착제 냄새가 났다. 그냥 본드로 살을 붙이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흉터도 작게 남고 실밥 뽑을 필요도 없으니 좋은 기술이긴 하다.

샤워장에 들어가서 씻을 준비를 하는데 옷 벗는 것도 힘들었다. 링거 바늘을 빼지 않고 환자복을 벗으려고 하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리고 씻는 동안도 한 손은 링거를 들고 있어야 해서 한 손으로 씻어야 했다.


겨우 옷을 벗고 수술 부위에 물이 안 가도록 살살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4일간 '떡진' 머리를 감을 때는 정말 시원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목 아래로 몸도 씻었다. 다 씻고 병실로 돌아오니 이제 퇴원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분이 좋았다.

"자식이 그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엄마도 울고 나도 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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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 병원복을 입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퇴원 준비를 했다. 목 움직이 불편해 엉거주춤 포즈를 잡았다. ⓒ 강상오

드디어 퇴원하는 날. 누가 깨운 것도 아닌데 새벽부터 일어나서 퇴원 준비를 했다. 퇴원 절차는 간호사의 안내를 받고 원무과에 수납을 하면 된다. 그리고 약국에 가지 않아도 바로 다음주에 있을 첫 번째 외래진료 때까지 먹을 약을 병원에서 준다. 약봉투를 들고 설명을 들었다.

이제 나는 죽는 날까지 매일 아침에 약을 먹어야 한다. 갑상샘 호르몬제다. 갑상샘 장기 전체를 들어내는 전절제를 했기 때문에 내 몸은 갑상샘 호르몬 생산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호르몬 보충과 더불어 이 약이 앞으로 암이 재발하는 것을 막는 항암작용도 한다고 한다.

퇴원절차를 마치고 조금 기다리니 형이 병원에 왔다. 혼자 택시 타고 집에 가면 된다고 했는데도 기어이 형이 데려다주겠단다. 형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아직도 내가 암에 걸린 사실을 모르시는 어머니.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말씀을 드려야 한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출장갔다가 좀 일찍 집에 가는데 어디 계시냐고 하니, 친구분들과 놀러 가셨다고 집에 가서 밥 챙겨먹고 있으라고 하셨다.

드디어 도착한 우리 집. 내 방에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 잘 참아온 눈물이 왈칵 터져버렸다. 수술 전날 편의점에서 도시락 먹으면서 누나와 통화할 때 잠시 눈물을 훔쳤는데, 이번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펑펑 흘렀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줄 알았던 내 방에 서 있다는 사실이 정말 감동이었고 감사했다.

저녁에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셨다. 어머니께 잠시 앉아보시라고 하고 놀라시지 않도록 침착하게 말씀을 드렸다. 수술 잘 받고 집에 왔노라고. 형과 누나가 병원에도 왔고 나를 잘 챙겨줬다고. 어머니는 자식이 그렇게 아픈 줄도 모르고 놀러나 다녔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미안하다고. 나도 그런 어머니와 함께 같이 울었다. 나도 죄송하다고.

○ 편집ㅣ최규화 기자


○ 편집ㅣ최규화 기자

#갑상샘암 #수술 #입원 #퇴원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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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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