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잃을 뻔했던 나, 이 남자의 미소를 알았다면

[여행 책에 없는 유럽 종단기7] 밀레의 만종과 다빈치의 세례 요한

등록 2015.05.22 21:27수정 2015.05.22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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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명성의 미술관인 오르세와 루브르. 그러나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여행자의 발길과 감흥을 사로잡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명소를 '찍고' 가는 데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그럴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규모와 수준을 떠나 미술관에 갈 때 내 마음에 걸린 그림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내 마음에 '모나리자'가 오래 걸려 있다면 루브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미술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에 어떠한 그림도 걸어두지 않았다면, 제 아무리 대단한 루브르라 하더라도 도깨비 시장통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함정임, '인생의 사용')

여하튼 수많은 세계인들이 이 두 곳을 방문한다. 통과 의례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부터 명작의 이름값만으로 120% 정도 앞서서 환호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예술가의 작품들을 순례하듯 둘러보는 사람들, 줄서서 봐야 하는 모나리자를 놔두고 예기치 않은 숨은 명작 앞에 조용히 홀로 서서 응시하는 사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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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 전경.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흔적이 남아 있다 ⓒ 송주민


오늘은 1월 첫째 주 일요일, 파리 주요 미술관들이 무료 입장을 허용하는 날(매달 첫째 주 일요일)이다. 숙소에서 아침을 챙겨 먹고 바로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서둘렀는데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공짜 관람인데 이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다. 그래도 일찍 온 덕분에 1시간여만을 기다린 끝에 이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웅장한 미술관에 들어갔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특히 '벨에포크'(1890~1914)라 불리는 예술이 찬란히 꽃핀 시절의 각종 작품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곳. 게다가 인상주의 회화의 성지라 불리는 곳. "오르세를 걸으면 인상파의 숲을 산책하는 것이 된다. 숲길에서 사랑하는 화가들도 만나고 나무에 걸린 매력적인 작품에 마음도 빼앗긴다."(최상운, '파리 미술관 산책')

연간 3백만 명이 찾는다는 이 거대한 예술의 장에서, 나의 발길은 어디로, 어느 작품으로 향하고 있는가. 지금 여기에서 영혼을 적시는 작품은, 나의 명작은 무엇일까. 아니, 명작의 기준은 무엇일까.

객관적인 작품성이나 예술사적 가치 등도 물론 있겠지만, 일반적인 취향도 자리하겠지만, 이 순간 스스로가 품고 있는 주관적인 관심사와 절실하리만치 사무치는 고뇌나 지향에 따른 공감도 짙게 개입되기 마련이다. 결국 우리는 내 마음에 걸린 그림을 찾고 쫓는다.

'농민 화가'의 저녁 종소리에 빠져들다

예컨대, 작년에 여기에 왔을 때, 나는 무엇에 매료됐던가. 나는 어떤 상태였던가. "공동묘지보다도 많은 주검을 간직한, 나의 머리는 피라미드, 엄청난 납골당……."(보들레르, '우울'). 그렇게 파리의 우울을 가슴에 품고, 나의 시선은 오로지 고흐의 '자화상'에 휩쓸려 들어갔다. 그리고 이렇게 적었다.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우두커니, 그러나 나 역시 우수에 찬 눈빛으로 오직 한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자화상. 고흐의 자화상……. 그 실존적 불안과 우울, 그 자신 스스로 뼈에 사무치게 앓았나 보다. 근심과 우울이 심각해지면, 저런 표정이 나올까. 격정의 눈물은 오히려 건강하다는, 내면의 뜨거움이, 생의 감각이 남아 있다는 표징일까."

오늘 나는 그 처절하게 뜨거웠던 자화상을 스치듯 지나갔다. 고흐는 그대로인데,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파고는 어딘가 변했나보다. 그리고 다시 한 작품 앞에 멈춰 섰다. 고흐가 전시된 방보다는 한산했다. 자연과 농촌의 풍경이 두드러진 방, 그리고 밀레의 '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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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밀레의 '만종' ⓒ 송주민


"바로 이거야. 너무 훌륭한 그림이야. 이것은 바로 시야!"(반 고흐)

어스름한 해질녘이다. 석양이 물들어간다. 분홍빛과 주홍빛이 포개진 하늘 아래로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하루 노동을 마친 가난한 농부 부부가 몸을 숙이고 경건하게 기도를 바친다. 멀리 성당에서 저녁 종소리가 들려온다.

번쩍이는 후광으로 표현되는 성화 속 주인공들에게만 신성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농민 화가' 밀레는 땅을 발에 딛고 땀을 흘리는 농부들의 일상에 주목했고, 그들의 흙 묻은 일상에서, 고단한 노동에서 거룩함을 발견했으며, 그 삶의 풍경을 높이 추켜세웠다.

당시 풍조로는 양치기나 농부와 같은 '천한 것'을 커다란 화폭에 담아 주인공으로, 마치 영웅과 같이 격상해 표현하는 것은 매우 불온하고 파격적인 시도였다고 한다. 쏟아지던 비난은 시간이 흘러 결국 찬사로 승화됐고, 그의 흔적은 "대성당보다 인간의 눈을 그리고 싶다. 인간 존재의 영혼에 더 관심이 간다"고 말한 반 고흐와 같은 후대의 화가들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쳤다.

얼마나 만종 앞에 서 있었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개미의 발걸음 하나라도 허투루 여기지 않아야겠다. 촉촉해진 눈가, 나는 수첩에 이렇게 적는다.

"저렇게 고개 숙이는 삶을 살리라. 땀 흘린 노동에, 일용할 양식을 준 손길에, 언제나 품어주는 자연에, 함께 두 손 모을 수 있는 인연이 있음에, 오늘 하루도 이렇게 유유히 흘러갔음에..."

너무 광할한 루브르, 솔직히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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튈르리 정원 전경. 멀리 보이는 건물이 오르세 미술관이다. 왼편으로 루브르가 있다. ⓒ 송주민


세느강을 건너, 튈르리 정원을 지나 당도하는 또 하나의 웅장한 미술관으로 향한다. 세계 3대 박물관이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곳. 루브르.

고대부터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소장품 약 40만 점, 연간 방문객 약 800만 명, 한 작품에 1초씩만 봐도 보름이 걸린다는 곳, 단순 숫자만 봐도 어마어마한 작품과 인파의 밀집 소장터, 방대한 양 때문에 심지어 해외 분관 계획도 수면 위로 떠올랐을 정도란다.

누군가는 '비너스'(밀로)에, 또 누군가는 '모나리자'(다빈치)에 감동하고, 어떤 이는 이집트가 아닌 파리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대형 스핑크스를 보며 제국주의 약탈 흔적에 개탄하기도 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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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 매표소에 붙어 있는 문구. 무료 입장 대상에 실업자도 포함돼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 송주민


입구의 유리 피라미드를 지나 처음 눈에 띈 건 매표소에 내걸린 표지판이다. 실업자는 무료 입장이란다. 지금 내가 그러하듯, 트랙에서 빠져나온 멈춤의 시기에, 혹은 트랙에서 쫓겨난 배제의 순간에 그래도 예술은 함께하고 있다. 거대한 예술의 터에서 소외를 품어주고 있는 듯한 인상이 보기 좋다. 물론 나는 외국인이라 혜택이 없겠지만, 오늘은 무료 입장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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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 앞으로 승리의 여신 니케 상이 보인다. ⓒ 송주민


'헬레니즘 조각의 절정'이라는 승리의 여신 니케 상을 바라보며, 그 이름값에 흥분을 머금은 채 걸어들어갔다. 이제 어디부터 봐야 할까. 솔직히 어지러웠다. 명작들일지라도 감당 못하게 사방에 널려 있으면 그저 어지러울 뿐이다.

'작고 특별한' 곳을 좋아하는 내게 루브르는 지나치게 큰 대형 마트나 백화점 같은 느낌이다. 작품 하나하나 보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 나로서는 루브르를 하루에 본다는 건 고문일 정도로 힘들다. 한 일주일쯤은 잡아야 겨우 약간의 여유를 차릴 것 같은 분위기다.

들어가던 순간의 설렘이 사그라들고, 오늘만 둘러볼 수 있다는 시간에 쫓긴다. 하나라도 더 보겠다는 조급함과 산더미 같은 작품들에 뇌의 판단 회로가 이리저리 엉킨다. 정신없이 거닐다가, 숱한 명작들을 길가의 돌멩이처럼 건조히 여기며 지나친다. 어느새 저기 앞쪽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방이 보인다. 이어진 복도에만도 르네상스 작품들이 즐비하다.

그 순간, 흑백 사진들 속에서 확 튀는 컬러 사진을 본 것 마냥 한 작품에게 시선이 쏠린다. 거장의 다른 작품. 다빈치의 마지막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 '세례 요한'. 이 그림을 마주친 건 필연과 우연의 뒤섞임이다. 보고 싶긴 했지만, 위치도 몰랐고 그저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지나가던 중, 그 많은 그림 속에서 마침 딱 마주쳤으니.

다빈치가 그린 세례 요한의 미소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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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에 소장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세례 요한' ⓒ 송주민


성경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에 앞서서 길을 닦으며 회개를 촉구하는 '광야에서의 외침'으로 묘사된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루카 3,4) 그를 표현한 성화를 보면 항상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자신 다음에 올 예수가 '로고스'고 '신의 아들'임을 가리키는 의미의 손짓이다.

세례 요한은 낙타 털옷을 걸치고 메뚜기와 꿀만을 먹으며 광야에서 산 선지자였고, 금욕과 고행을 실천한 인물이었다. 로마 식민지배와 억압적인 종교율법에 이중고로 시달리던 당시 시대상황 전반의 회개를 촉구하며, 광야로 나가 새로운 날을 준비하는 몸짓, 세례운동을 벌였다. 마치 이런 우리 시처럼.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이육사, '광야에서')

나에게도 광야가 필요했던가. 광야는 속세와 단절된 변방의 공간이고, 텅 빈 침묵의 들판이다. 단절과 침묵, 그것은 불균형을 돌아보는 명징한 행위다. 지난 반년,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사람과도 거리를 두고 매일 북한산을 오가며 지냈다.

나는 건강을 잃었고 세상을 잃을 뻔했다. 그리하여 세상을 멈추고 오직 내면의 목소리에 침잠할 수 있는 자연으로 향했다. 한겨울 앙상한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마치 광야에서 외치는 음성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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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 전시관에서 내려다본 전경. 입구의 유리 피라미드가 보인다. ⓒ 송주민


성경을 진지하게 읽어본 건 처음이었다. 나는 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를 그렇게 부여잡았던가. 얼마나 홀로 되뇌었던가. 서울에 살면서도 세상과 단절된 채 산을 오가며, 길을 닦기 위해, 씨를 뿌리기 위해, 목 놓아 부를 균형과 치유의 날을 준비하기 위해, "광야에서의 외침"을 묵상하며 얼마나 심신을 가다듬었던가.

어느 순간,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병을 낫게 해달라고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순리대로 이끌어 주시기를." 나는 여전히 하느님을 잘 알지 못했으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것은 깨달았다. 그저 내려놓고 비우고 순명할 영역도 있음을. 그리고 너무 일찍 병원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음을 알았다. 나는 너무 조숙해져 버렸다. 그것은 인생의 무게였다.

그러나 다빈치의 세례 요한은 무겁고 엄격한 구도자라기보다는, 한없이 온화한 미소를 품은 자태를 드러내 비치고 있다. 웃음과 만감이 교차한다. 광야에서의 날카로운 설파를 떠올리게 하는 이 인물의 손짓을 심지어는 장난스러울 정도로 익살스럽게 표현해내다니. 르네상스의 자유로운 사조가 세례 요한을 이렇게 탄생시켰을 것이다.

시커먼 배경에 은은한 조명을 받은 듯한 빛깔의 섬세한 얼굴, 암흑 속에 살포시 겹쳐진 채 떠오르듯 드러나는 풍모가 신비롭다. 명암의 절묘한 대비다. 선 굵은 표현 없이 흐릿하면서도 강렬하다. 그러면서도 인상은 자애롭다.

오늘 나는 모나리자의 미소 대신 세례 요한의 미소를 보았다. 치켜든 손가락을 다시 바라본다. 그가 콕 찍어 가리키는 '주님'은 어떤 의미일까. 꼭 어렵게 읍소하며, 고뇌로운 표정으로 뜻을 찾을 필요는 없는 것일까. 다빈치의 요한은 차분하게 신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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