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도 모르는 나만의 상추 재배 비밀

나도 바늘 하나 꽂을 땅이 생겼다

등록 2015.05.19 11:39수정 2015.05.19 11:39
4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나도 이런 화분상추를 재배하고 싶었다. ⓒ 신광태


"가을에 김장 몇 포기나 담그지?"
"한 10포기 정도... 그건 왜?"
"올해는 우리 배추 사지 말고 화분에 심자."
"으이그 생각하는 거라곤... 그냥 농민들을 위해 절임배추 사지 뭣 하러?"


올 가을, 배추 모종을 화분에 심자는 내 제의를 아내는 단칼에 무시했다. 화분 배추. 가능성도 희박하거니와 그걸 언제 씻어 김장을 담그겠냐는 말이다.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건 얼마 전 시도한 화분 상추 때문이다. 퇴근 후 귀갓길, 쓰레기더미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스티로폼과 화분을 주웠다.

아내는 내가 뭘 주워 오는 걸 싫어한다. 송판을 주워와 예쁜 새집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지만, 한동안 방치하다 쓰레기로 버렸다. 집에 넘쳐나는 쓰레기 감당도 못하면서 밖에 버려진 것들을 주워 또 쓰레기로 만들었으니 매사 좋게 볼 일이 없었을 게다.

아내의 잔소리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즉각 실행에 옮기는 거다. 주워온 스티로폼과 화분에 산에서 퍼온 흙을 채웠다. 그러곤 상추모종 10여 포기를 가지런히 심었다.

a

상추모종을 심었다. ⓒ 신광태


물만 주면 상추가 무럭무럭 자랄 줄 알았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비리비리하다. 자세히 보니 노란 떡잎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거봐 쓸데없는 일을 벌이더니, 또 쓰레기만 늘었네'라는 아내의 잔소리는 안 봐도 뻔하다.


상추에 비료 준 것, 아직 아내는 모른다

"복합비료 구해다 뿌려."

퇴근 후 우연한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는 비료를 뿌리라고 했다. 아내가 눈치챌세라 살금살금 현관에 놓인 화분 상추 옆에 비료를 뿌린 후 흙을 덮었다. 증거인멸이다. 그러곤 물을 흠뻑 줬다.

a

아내도 모르는 내 상추재배 기술.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추가 갑자기 자랐다. ⓒ 신광태


비료를 뿌린 지 5일이 지났을까, '상추가 원래 이런 색이었나' 싶을 정도로 푸른색이 아닌 짙은 녹색을 띈다. 나도 놀랐지만, 아내는 신기하단 눈빛을 보였다. 이럴 땐 '거봐'라는 식으로 으스대야 무시하는 강도가 낮아진다.

"상추가 말이야, 원래 물만 주면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식물이지 허허. 매일 물을 듬뿍 줘야하는 것 잊지마!"

허풍을 떨었지만, 아무래도 비료를 너무 많이 줬나보다. 이파리가 싱싱한 것까진 좋은데, 만져보니 마치 쇠 힘줄같다. 매일 물을 준다면 부드러워 질 것 같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다.

"미친 녀석아, 니가 먹을 건데 거기다 비료를 퍼붓냐? 왜 농약도 듬뿍 뿌리지..."

'매일 물을 주면 상추 잎이 부드러워질까?'라는 질문에 친구 녀석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내가 답답했던지, 비료 대신 여름에 풀을 베어 화분에 썩힌 후 흙과 섞으면 훌륭한 텃밭이 된다고 말했다.

그때 문득 스친 생각. '내일부터 남들이 버린 화분을 주우러 다녀야겠다. 금년 초가을 거기에 퇴비를 듬뿍 넣어 배추를 심자. 아무리 배추가 시원찮아도 비료나 농약은 뿌리지 말자.'

관심 때문인지 평소에 지나쳤던 화분에 심은 고추나 토마토를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겼다. 먼저 비료를 주었는지 살핀다. 그러곤 흙을 손으로 만져본다. 퇴비를 섞은 흙이 맞는 것 같다.

도라지에 그런 성질이 있었구나

a

한 할아버지는 화분에 도라지를 심었다. 그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음을 알았다. ⓒ 신광태


"화분에 도라지를 심었네요."

화분에 도라지를 심은 어느 할아버지께 물었다. 여름철엔 보라색 또는 흰 꽃의 도라지 화분이 되고, 2년쯤 되면 캐서 도라지 나물을 만드신다고 했다. 더 키우려면 화분을 옮겨 심으면 된다고 했다. 도라지는 다년생인데 왜 옮겨 심어야 할까?

"도라지는 3년이 지나면 썩기 때문이지."
"에이, 무슨 말씀을요. TV에 20년 된 도라지도 나오던데..."

'나도 알 만큼 안다. 이번엔 할아버님이 틀렸다' 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랬더니 '왜 없겠어. 20년 된 도라지도 있고 30년 넘은 것도 있지'라고 하신다. '3년이 지나면 썩는다고 하신 지 몇 초 지났다고 딴 말씀을...'하는 내 생각을 읽은 걸까.

"옮겨 심으면 돼!"

할아버지 설명은 이렇다. 보통 농가에서 도라지를 심은 지 3년째 되는 해에 도라지를 캔다. 도라지의 성질 때문이란다. 같은 장소, 즉 똑같은 토양에선 3년이 도라지의 수명이다. 그러나 옮겨 심으면 3년이 더 연장되고, 그렇게 반복하다보면 30년생 도라지도 있을 수 있다는 거다. 화분에선 불가능할지 모르나 노지나 산에서는 가능하다는 말씀이다.

a

올 가을엔 이 화분에 배추를 심어볼 생각이다. ⓒ 신광태


"바늘 하나 꽂을 땅이라도 있었음 좋겠다."

언젠가 아내는 남의 집 텃밭을 보며 넋두리처럼 말했었다. 올 가을, 화분에 배추를 심어 놓고 '이 정도면 바늘 100개는 꽂을 수 있다'고 말하면 칭찬 받으려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화분농법 #화분상추 #상추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밝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마이뉴스...10만인 클럽으로 오십시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