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큰일 나면 운다? 영국사의 '은행나무'

[108산사순례기 ⑬] 영동 천태산 영국사

등록 2015.05.19 18:31수정 2015.05.1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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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종단소개에 따르면, 전국에는 대한불교조계종외 28개 종단에 수천 개소의 사찰이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찰 중에서도 '108산사'를 선정하여 기도순례를 떠나고자 합니다. 108산사를 찾을 때마다 부처님 앞에서 108배하며, 1사찰마다 1개의 염주를 꿰어 108염주를 완성할 계획입니다.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산사여행으로, 탐·진·치 3독을 끊어 보려 합니다. <108산사순례> 기도여행을 통해 모든 분들에게 알찬 정보를 드리고자 합니다... 기자말

왕벚꽃 지는 봄에 활짝 핀 왕벚꽃. ⓒ 정도길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거나,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안주하려는 이런 자세는 보편적으로 인생 말년에 나타나는 모습인데 반해, 무엇인가 끊임 이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그 실천을 위해 정열을 바치는 이들이 많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취미나 운동도 마찬가지. 한 가지 일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이어 나간다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은 아닐 터. 오죽하면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생겨났겠는가.


나 역시 지난해 10월부터 우연히 시작한 <108산사순례>는 그 동안 끊어질듯 하면서도 지금까지 열아홉 번째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5월 2일 오전, 속리산 법주사를 찾았다가 영동군에 소재한 천태산 영국사로 가는 길이다. 말이 사찰 여행이라지만, 심적 부담 없이 쉴 수 있는 여행과는 달리, 어떤 목적 의식을 가지고 하는 여행은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 의무감을 가진 여행, 조금은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기서 끝낼 수는 없는 일이리라.

충북 영동 천태산 자락에 자리한 영국사.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고려 문종 때 원각국사가 창건한 절이라 전해진다. 법주사에서 약 71km 거리에 있는 이 절은 창건 당시 국청사라 칭했다. 그 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원 마니산성에 머물 때, 이 절에 와서 기도 드린 뒤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가 평온하게 됐다해서 영국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중요문화재인 보물로는 제532호 '영동 영국사승탑', 제533호 '영동 영국사 삼층석탑', 제534호 '영동 영국사 원각국사비', 제535호 '영동 영국사 망탑봉 삼층석탑'이 있다. 대웅전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1호이며, 절 밖에는 천연기념물 제223호인 수령 약 1000년의 은행나무가 절을 지키고 있다.

영국사 대웅전 앞에 작은 불상들이 놓여있다. ⓒ 정도길


올해는 불기로 2559년이며, 부처님 오신 날은 오는 5월 25일(음력 4월 8일). '불기'는 '불교의 기원으로부터 헤아리는 햇수'로, 석가모니가 타계한 연도, 즉 석가모니가 입멸한 이후부터 경과된 햇수를 말한다. 이 연도에 의하면 석가모니의 생존 기간이 80년이므로, 출생연도는 BC 624년이고 입멸 연도는 BC 544년이 되는 셈이다.

석가모니 출생과 입멸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현재 공식적인 차원에서 통용되고 있는 불기는 남방불교권의 전통을 채택한 것. 한국 불교도 1967년부터 세계불교도우의회(WFB)의 결의에 따라 이 불기를 따르고 있다. 만세루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경축하는 '세상에 희망을 마음에 행복을'이라는 글귀를 붙여 놓았다. 그 어느 누가 '세상에 희망이 없기를, 마음에 행복이 없기를' 바라겠는가. 이날 하루만이라도 세상에 행복이 넘쳤으면 좋겠다.


부처님 오신 날, '세상에 희망을 마음에 행복을'

연등 만세루 아래를 지나면 절 마당에 오색찬란한 연등이 하늘을 덮고 있다. ⓒ 정도길


작은 절 마당엔 오색 빛깔 연등이 하늘거린다. 저마다의 기도가 등불을 타고 하늘로 올라 각기 소원 성취로 이뤄지리라. 신라 시대 만들어졌다는 삼층석탑(보물 제533호) 옆으로는 보리수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보리수는 '각수', '사유수'라고도 하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성수'라는 뜻을 가진 나무다. 주 법당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맞배 지붕으로 규모가 작은 전각이다.

돌부처 녹음이 우거진 숲 아래 바위에 참선에 열중인 돌부처. ⓒ 정도길


대웅전은 주존불로 석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자리하는데, 좌우배치가 여느 사찰과는 다른 형식이다. 대형 사찰을 제외한 소규모의 절이나 암자에서는 부지와 비용 문제로 여러 동의 전각을 지을 수 없는 형편이다. 이런 이유로 대웅전에는 주불로는 석가모니불을, 협시로는 불자들이 많이 찾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협시보살의 자리 배치. 지금까지 봐 온 협시보살의 자리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엔 지장보살, 왼쪽엔 관세음보살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불상을 보는 방향에서 좌우가 아닌, 불상이 앉은 자리에서 좌우라는 뜻). 어떤 연유에서 절마다 협시보살의 자리배치가 다른 것인지 궁금하던 차, 옆 자리 불자에게 살며시 그 이유를 물었는데, 돌아오는 답이 참으로 걸작이다.

주 불전인 대웅전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로 있다. ⓒ 정도길


"먼저 자리를 잡은 게 임자가 아닐까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형편이 아니다. 천수경을 암송하고 경전을 펴 마음속으로 독송을 시작했다. 이어 엎드리고 일어서면서 염주 한 알을 돌린다. 왜 기도를 하는지, 그 목적이 되뇌지지 않는다. 그저 일어났다 엎드렸다를 반복하는 일 뿐이다. 가끔 오랜 시간 투병 생활을 하는 노모의 회복을 위해 소원을 빌기도 하고, 한 순간에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지'라는 생각에 빠지지만 그것도 잠시 뿐.

아마 큰 스님들이 이 글을 본다면, '순 엉터리 불자'라고 죽비를 내리치고도 남았을 터. 간절함이 부족해서일까, 매번 기도에 들 때마다 목적 의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내게 있어 큰 문젯거리라는 것. 염주를 한 바퀴 돌리고 고두배를 올리는 시간, 간절한 마음을 내어 빌었다. 잡생각을 끊게 해 달라고.

다람쥐 극락보전 앞에 다람쥐 한 마리가 카메라 셔터 소리에 놀라 도망가고 있다. ⓒ 정도길


극락보전 앞에 자리한 다람쥐 한 마리. 오후 시간을 만끽하는 여유로움이 넘쳐난다. 날짐승은 인기척에 쉽게 놀라 도망가지만, 어쩐지 이 다람쥐는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갈 줄을 모른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가까이해도 도망가지 않던 다람쥐는 카메라 셔터의 기계 소리에 줄행랑을 치고야 만다. 사람 발자국 소리가 더 친근해서일까, 째지는 듯한, 기계 소리가 더 경계심을 들게 했던 걸까.

아무튼 다람쥐는 숲으로 사라졌고 혼자만 남았다. 다람쥐가 사라진 숲에는 작은 돌부처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참선에 깊이 빠진 탓인지, 왠지 심각해 보이는 표정이다. 영국사는 대웅전과 극락보전을 제외하면 불상을 모신 전각이 많지 않다. 인근에 계월암이 있지만, 참선 수행하는 곳이라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천년된 은행나무, 나라에 큰 어려움 있을 때 소리 내 울어

원각국사비 영국사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 보물 제534호 '영동 영국사 원각국사비'가 있다 ⓒ 정도길


녹음이 우거진 숲길을 따라 영국사에서 관리하는 보물을 만나러 가는 길. 이 길은 천태산으로 오르는 D코스 들머리. 약 50m를 오르니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가 나온다. 원각국사는 고려 중기의 승려로 어려서 출가, 선사·대선사가 된 명승으로, 명종 4년(1174)에 입적하자 왕은 그의 유해를 영국사에 안치했다. 입구에 안내된 보물 제532호 '영국사 승탑'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이 보물은 영국사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한다. 여행자를 위한 더욱 세심한 안내가 필요하다.

원각국사비 주변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인 제184호 '영동 영국사 석종형승탑'과  제185호 '영동 영국사 구형승탑'이 있다. 두 승탑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승탑 옆에 선 한 그루의 키 큰 소나무. 이 소나무는 두 가지로 자라다 언제 적 만났는지 모르지만, 두 가지가 하나로 뭉쳤고, 다시 각각의 가지로 자라고 있는 특별한 형태다. 만나고 헤어지며, 헤어졌다 만나는, 인간세상의 '회자정리'와 흡사하다. 하기야 인간과 자연이 다를 바 무엇 있겠는가.

회자정리 이 소나무는 한 뿌리에서 나와 두 가지로 뻗어나갔다가 다시 하나로 뭉치고 또 다시 두 가지로 뻗어나가면서 강한 생명력을 보인다.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인간세상 '회자정리'를 보는 것만 같다. ⓒ 정도길


엷은 분홍 왕벚꽃이 활짝 폈다. 늦봄이 지고 초여름으로 가는 길목이다. 밭에서 땀 흘리며 농사일에 여념이 없는 스님께 합장 기도를 올렸다. 약수터에서 물 한 바가지를 떠 갈증을 달랬다. 사찰 외곽에 있는 1000년이나 된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223호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다. 높이가 31m, 가슴 높이의 둘레는 11m로, 나이는 천 살 정도 추정된다고 한다.

국내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기념물로 지정된 곳이 몇 군데 있지만, 이처럼 천 년이나 된 곳은 이곳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나무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가지가 땅에 닿아 뿌리를 내렸고, 다시 그 가지는 하늘 높이 솟아올라 다른 하나의 나무로 커 나간다. 높이도 5m가 넘을 정도로 크다. 이 은행나무는 나라에 큰 어려움이 있을 때 소리를 내 운다고 한다.

은행나무 영국사 외곽에는 수령 약 1000년이 되는 은행나무가 서 있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소리내어 운다고 한다. ⓒ 정도길


은행나무 건너편에 전각 한 동이 보여 그쪽으로 가 보니 이곳이야말로 영국사 정문격인 일주문이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영국사에 이르는 길은 두 갈래로, 나는 후문 쪽으로 온 셈. 보은에서 영동으로는 지리적으로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다 보니 내비게이션이 가까운 길로 안내한 모양이다.

정문인 주차장에서 일주문으로 오르면 천태산 계곡의 수려함에 빠졌을 텐데 아쉬움만 남는다. 약 1km를 걸으며 삼신할멈바위도 만나고, 삼단폭포도 만나면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갔을 텐데. <108산사순례> 그 열아홉 번째 천태산 영국사에서 열아홉 번째 염주 알을 꿰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블로그 <안개 속에 산은 있었네>에도 싣습니다.
#천태산 #영국사 #108산사순례 #사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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