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치 복원, 지역주의 아닌 '반지역주의'

[주장] 지역에서 정치적 주권 회복운동할 때

등록 2015.05.20 18:58수정 2015.05.2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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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궐 선거 후폭풍이 만만치 않습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는 소위 '호남신당론' '호남정치 복원론'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5월 9일자 정균영 전 민주통합당 수석사무부총장의 <호남정치 복원론, 그것은 '대선 패배'다> 주장글에 나기백 전 참여자치21 대표가 반론을 보내와 싣습니다. 이와 관련, 반론을 포함한 다양한 논쟁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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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 남소연


호남정치 복원은 기본적으로 국민주권론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제에서 국민의 정치적 주권은 참정권인 선거권, 국민투표권, 공무담임권을 행사해 실현된다. 그러나 호남정치에서는 수십 년 동안 일당 독점체제와 중앙패권주의로 인해 시민들은 실질적인 참정권 행사가 불가능했고, 정치적 주권이 제한되어왔다. 따라서 호남정치의 복원을 말하는 것은 3김 시대의 지역패권을 부활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지역의 정당한 정치적 주권을 회복하자는 운동을 말한다.

한국의 중앙정치는 지역정치 수탈체제로 존재하는 특성이 있으며, 지역정치를 하청정치체제로 관리하는 것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데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중앙 패권주의 입장에서 지역이 주체적 정치의지를 갖는 것은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는데 대립적 이해관계로 존립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단순한 거수기 역할을 하는 식민성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 '우리가 결정하면 너희는 찍어라'는 배타성과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전근대적인 하청정치를 거부하고 주체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호남정치 복원의 내용이다. 중앙정치와의 종속관계를 청산하고 수평적 연대와 분권형 체제로 재정립하는 것이 호남정치 복원이다. 유권자(시민)의 입장에서 정치적 선택권(주권)을 쟁취하기 위한 슬로건이 호남정치 복원이다. 특정 정당의 공천이 곧 지역의 정치적 대리인으로 임명되는 구조를 거부하고, 호남민이 결정하겠다는 것이 호남정치 복원이다. 기본적으로 호남정치 복원은 지역의 정치적 주권 회복운동이며, 정치적 선택권과 정치적 결정권을 쟁취하는 운동이다.

항간에 호남정치 복원을 호남 소외론, 호남 대표 주자론, 퇴행적 지역주의론 등으로 오역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호남정치 복원이 지배자(기득권자) 담론이 아니고, 유권자(시민) 입장의 담론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오해다. 몇몇 정치인들이 호남 소외론이나 대표주자론으로 해석해서 쓰는 경우는 있지만, 소아병적 지역주의로 곡해되는 함정을 가지기 때문에 경계해야 할 내용이다.

정치독점체제에 복속된 영남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굳이 호남정치 복원이라 이름 붙인 것은 호남 시민의 입장에서 삶의 근거지이자, 호남민이 책임질 수 있는 범위가 호남이기 때문에 호남정치 복원을 주장하는 것이다. 호남정치 복원을 다른 말로 하면 지역정치 복원이다.

호남정치 복원, 정치경쟁체제 부활 통해서만 완성

특정 정당에 의한 정치독점체제가 고착되면서 정치경쟁은 사라지고, 유권자는 지역주의와 진영논리의 포로가 되어 단순한 동원부대로만 작동하게 되었다.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단이 제한된 것이다. 폐쇄된 정치경쟁 속에서 신진 세력은 몰락하거나 기득권 구조로 편입되었고, 대안세력과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낼 기반과 토양은 무너졌다.


그 결과 지역은 정치적 황무지로 변했고, 패권적 질서의 희생양이 되었다. 오랜 독점체제로 시민들의 정치적 선택권은 제한되었고, 정치적 패배주의와 냉소주의가 만연하여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였다. 역동성이 제거되고 예측 결과가 빤한 선거는 참여할 가치와 의지를 무력화시킨다.

호남에게는 소위 정권교체나 전략적 투표라는 멍에를 씌워 무개념 전략을 강요했고, 작은 정치적 과실조차 중앙정치와 지역 기득권 체제로 귀속되었다. 그로인해 가치와 노선에 기반한 정치 세력은 성장하지 못하고, 중앙정치 유력자에게 줄을 대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정치환경이 조성되어 생계형 정치인들과 팬덤정치만 남게 되었다.

가끔 새정치민주연합 공천을 문제의 핵심으로 꼽는 사람들이 있다. 일정부분 일리 있는 이야기지만, 이런 중앙패권주의의 시혜적 관점은 본질적인 처방은 아니다. 시민들은 주체적 주권행사를 원하는 것이지 시혜적 봉토를 하사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영호남 같은 정치독점체제에서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 문제를 주고 답을 내라고 하는 구조는, 그 답의 건강성을 떠나서 국민에게 주인의식을 가질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선거에서는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여지가 없기 때문에 소극적 거부권(기권)을 행사하거나, 정치적 냉소주의를 부추겨 참정권 확대를 방해한다. 진보정당이 있지 않냐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게도 선택권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정치적 선택권과 결정권은 정치경쟁체제가 이루어져야 확보 될 수 있고, 정치경쟁체제가 완성되어야 호남정치가 복원된다.

낡아빠진 정권 교체론만 시도 때도 없이 만병통치약처럼 쓰는 게으른 기득권세력은 강력한 경쟁세력이 생겨야 혁신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위해서도 경쟁세력이 필요한 것이다. 명패만 바꿔다는 통합론으로는 너무 식상해서 국민을 설득할 명분이 없다. 내외부의 치열한 경쟁만이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호남정치복원 같은 지역의 역동성을 끌어내는 정치경쟁 없이는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 모든 경쟁이 선은 아니지만, 모든 독점은 악을 잉태한다.

호남정치 복원은 반 지역주의다

영남의 새누리당과 호남의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대표되는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치독점체제에 대항하는 경쟁체제를 만들어가자는 것 자체가 반 지역주의다. 새누리당에 대항하기 위해서 호남이 분열해서는 안 된다는 논거는 지역주의에 지역주의로 대항하자는 진영논리 외에 다른 의미를 찾기가 힘들다.

지역이 경쟁체제로 진입하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고 분열 프레임으로 가두려 윽박지르는 행태 자체가 자신들의 지역주의 기득권이 깨지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지금은 창조적 경쟁구도를 만들어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생산적 논쟁과 담론을 양산해야 한다.

지역주의 기득권 체제의 해체와 주류교체를 위해서는 정치독점체제를 허물고 정치경쟁을 촉발해야 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한 전폭적 지지는 단순한 지역주의 투표가 아니다. 한국사회 주류, 기득권 세력을 교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 호남 내부는 지역주의에 기생한 기득권 세력만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결과적으로 중앙의 주류 기득권 세력도 교체하지 못하고, 지역정치는 중앙 패권주의 질서에 복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난 시기에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을 몰아내야 한다는 분명한 정치적 목표가 있었고, 그게 정권교체라는 슬로건에 함의되어 있었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전된 상황에서 지방선거나 지역 보궐선거에서조차 해묵은 '묻지마 정권교체론'만 되뇌고 있다. 지역의제 하나 만들어낼 능력이 없거나, 국가개조나 사회변혁에 대한 총체적인 구상이 없다는 반증이다. 지난 대선 때 90%의 몰표를 줬던 호남에서는 이기적인 지역 개발론보다 더 천박한 논리다. 장삼이사들 모여서 개나 잡아먹자는 수작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박근혜 정권이 끝나는 2017년도에 새누리당에서 등장할 인물들은 독재정권의 아류나 부도덕한 집단으로 규정할 혐의가 탈색된 인사들일 가능성이 높다. 야권 전체 진영으로 보면 그동안 무기로 써왔던 도덕성과 참신성에서 변별력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인사들이 출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진실성 여부는 논외로 치고,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나 유승민의 원내대표 국회연설은 그들이 진보적 의제나 담론을 언제든지 선점하거나 희석시킬 의지와 담력을 가질 정도로 진화했다는 것을 눈여겨봐야한다.

보수정권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들이 자동으로 야권에 투표할 것이라는 요행수만 바라보고 있으니 식상한 심판론이나 정권교체만 외치다가 선거에 지는 것이다. 그들을 대체할 수권담론과 대안체제를 제시하지 못하면 국민은 투표소로 가지 않는다. 그들이 흉내낼 수 없는 창조적 파괴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필패다.

이제는 패권적 질서에 맹목적으로 복속을 강요하는 기득권 논리를 거두고, 생산적 경쟁체제와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DJP연합이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정체성이 전혀 다른 이질적 세력의 결합이었다. 지금은 야권 내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상호 덩치를 키우고, 가치와 노선이 비슷한 세력이 세력연합을 통한 연립정권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적대적인 감정으로 배신자 낙인찍기를 거듭하며 협박정치를 지속하면 국민들의 역동적 참여를 끌어낼 수 없다. 상대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고 선의의 경쟁을 이끌어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호사가들이 하나같이 경쟁을 통한 시너지를 생각하지 않고, 분열을 걱정하면서 기계적 통합만 외쳐서는 전망이 없다. 이들은 현학적인 수사와 편협하고 제한된 데이터를 제시하며 논거를 증명하려 애쓰지만 사실 논리구조는 단순하다.

지배자 입장에서 군주론 같은 글을 쓴다는 것이다. 그런 얼개를 가지고 있다 보니 국민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불만이 고조되면 잠깐 어르고 달래면 되는 대상으로 간주한다. 모든 글에 문재인 천정배가 어떻게 해야 한다만 있고, 분열하면 죽는다는 협박만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정치적 결정권(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는데, 그걸 눈여겨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오직 지배자 시각에서 시민들은 각 진영으로 나눠서 일사분란하게 몰표만 주면 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국민의 참정권을 확대하여 잠재된 변화욕구를 역동적으로 참여시킬가 하는 고민은 없고, 오직 자기 진영으로 표를 얼마나 더 많이 동원할 것인가만 골몰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여론조사 왜곡이나 표 실어나르기 같은 선거 기술만 발달하여, 정치혐오감만 극대화 해 방관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설익은 진단으로 호남정치 복원을 바라보면 다시 실패할 확률이 높다. 호남정치 복원이 호남 불임론이나 호남 핫바지론 등 호남 소외감에서 오는 단순한 화풀이 담론(회초리론)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당신들의 권력을 위해선 우리의 거수기 투표가 필요하겠지만, 이젠 우리의 삶을 위해서 투표하는 걸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호남정치 복원을 몇몇 유력정치인들이 사용하면서 메시지가 확산된 반면에 그 정치인들의 입장에 따라서 설명과 해석이 분분하지만, 그 시작은 정치적 주권 회복이라는 근본주의적 시각으로 출발했다. 호남정치 복원은 충분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 전반을 관통할 수 있는 담론은 아니다. 호남이라고 하는 고유명사 자체가 이미 그 제한적 성격을 태생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어쩌면 지역주의가 고착된 영호남에서 지역담론으로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지역정치복원이라고 쓰지 않고 굳이 호남정치복원이라는 단어를 고집한 것은, 지역정치라는 단어가 익숙함에서 오는 메시지 확장성의 한계를 느꼈고, 호남정치 복원이 호남인들의 현실과 정서에 일정부분 공감을 만들어내는 임팩트가 있으리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사회전반의 사회변혁을 꿈꾸는 담론으로는 부족하다. 호남정치 복원과 마찬가지로 지역 담론이 각 지역에서 탄탄하게 자리 잡고 그 위에 한국사회 전반을 관통할 전국 담론이 필요할 것이다. 고원 교수가 말하는 사회교체나 세력교체 같은 전국담론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관련기사]
호남정치 복원론, 그것은 '대선 패배'다
'호남' 외면하면 모든 선거는 필패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전 참여자치21 대표입니다.
#호남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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