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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앨범서 얼굴 삭제,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리뷰] 다큐멘터리 영화 <명령불복종 교사>

15.05.25 21:34최종업데이트15.05.25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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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10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아래 일제고사)가 전국적으로 실시됐다. 초등 6학년, 중등 3학년, 고교 1학년이 시험 응시대상이었다. 이 시험을 앞두고 일부 교사들이 각 가정에 '담임편지'를 띄운다.

담임편지에는 일제고사에 대해 교육적으로 견해를 달리하거나 학생이 원하지 않을 경우 체험학습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학부모와 학생의 의견을 묻는 부분도 더해졌다.

일부 학교의 학생들은 결정에 따라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고 체험학습을 떠났다. 그러나 후폭풍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이후 해당 교사들이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도록 했다'는 이유로 해임 및 파면의 중징계를 받은 것이다.

일제고사 거부가 불러온 후폭풍

영화 <명령불복종 교사>의 한 장면. 해임 및 파면된 교사들은 끝내 학교 출입을 거부 당한다. ⓒ 두물머리픽쳐스


다큐멘터리 <명령불복종 교사>는 당시 징계를 받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촬영됐다. 중징계 사유는 학생들이 일제고사에 응시하지 않을 선택권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이후 해당 교사들은 학교에 출입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해직과 학교에서의 배제는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벌어진다.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은 하나같이 살얼음판의 연속이다. 학교 측은 경찰 병력을 부르고, 교장이 나서서 징계 당사자에게 "당신은 더 이상 교사가 아니니 나가라"고 소리친다. 담임선생으로서 학생들의 졸업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데, 학교의 반응은 냉담했다. 졸업앨범에서는 선생의 얼굴만 삭제되어 '백지' 상태로 남는다. 해직교사가 어렵사리 교실을 다시 방문하지만, 자물쇠로 굳게 걸어잠긴 출입문 앞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힘없이 주저앉는다.

반면 사뭇 대비되는 장면도 보인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지키자"면서 스케치북을 찢어 "선생님을 돌려달라" 등의 구호를 써서 교실 창문에 붙인다. 영화에 등장하는 학부모들도 아이들이 선생 없이 졸업식을 하게 되자 반발한다. 담임이 공석인 상태에서 졸업식 전날 미리 나누어준 졸업장을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걷어서 해직교사에게 내밀기도 한다. '담임이었던 사람에게서' 졸업장과 축하인사를 받고 싶다는 얘기였다.

일제고사 거부가 불러온 파장은 그야말로 거대한 폭풍과도 같았다. 스크린에 투영된 상황을 들여다보면, 나비효과처럼 그 영향이 넓게 퍼져나간다. 징계당한 개인의 삶도 망가진 것은 물론이고, 학급의 혼란과 학생들이 겪은 슬픔도 마찬가지로 무거운 것이었다.

지나치게 무거운 징계... 불분명한 징계 배경

영화 <명령불복종 교사>의 한 장면. ⓒ 두물머리픽쳐스


다큐멘터리 영화는 시종일관 해직교사의 곁을 카메라로 비춘다. 학생들을 껴안고 흐느끼는 장면, 학교 측의 강압에 쫓겨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때마다 흔들리는 카메라는 급박하고 처절한 상황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듯하다.

줄거리가 진행되면서, 교사들의 불분명한 징계 배경이 드러나는 쪽으로 흘러간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드러나는 행정소송 관련 내용은 이를 뒷받침한다. 중징계 사유에 대한 여야 국회의원의 질문에 당시 서울시교육감(공정택)은 뚜렷한 관련 조항을 언급하지 못한다. 다만 "선례가 생기면 교육제도에 차질이 생긴다"고 머뭇거리며 발언할 뿐이다.

결국 '교육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으로 보일 정도다. 당시 해직된 교사들의 징계 수위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해임 취소 행정소송 판결'도 같은 내용을 지적한다. 과거 비슷한 사례에서 내려진 것에 비해 징계 내용이 지나치게 무겁다는 것. 당사자들의 복직은 3년에서 길게는 5년이 걸렸고, 그동안 어느 해직교사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화는 전한다.

<명령불복종 교사>는 학생의 부족한 점을 짚어주는 진단평가가 아니라, 전국의 학생을 일렬로 줄 세우는 성적 만능주의가 진정 교육을 위한 방향인지 의문을 던진다. 영화 내용에는 학생이 아니라 학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제고사 평가방식의 악영향도 담겼다. 일례로 강원도 어느 초등학교가 일제고사 대비 차원에서 밤 10시까지 어린 학생들에게 '야간 자율학습'을 시키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다.

영화로 돌이켜 보는 '교육'의 의미

영화 <명령불복종 교사>의 포스터 사진. ⓒ 두물머리픽쳐스


'학생들에게 일제고사의 의미를 정확히 알려주자'는 교사들의 취지가 진정 중징계를 감수해야 할 사안인지 영화는 묻는다. 선생이나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정책에 무조건 따를 것을 통보하는 당시 교육부의 자세는 한국의 권위적인 교육제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가 들려주는 바에 따르면, 학생보다 평가 자체를 더 우선시 하는 정책은 심지어 일관성도 결핍된 상태다. 영화의 소재는 이미 지나간 사건이지만, 어찌 보면 핵심적 요소는 여전히 진행 중인 교육 현장의 실태를 향하고 있다. <명령불복종 교사>는 이런 장면들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교육의 의미'를 돌이켜 보게 한다.

늦은 밤 교사의 집에 찾아가 아이가 보는 앞에서 '해직통보서'를 던져놓고, 타당한 이유나 설득 없이 공권력으로 교사와 학생을 떼어놓으려는 모습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당시 교육계의 현실은 지나치게 폐쇄적이면서 심지어 야만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교사에게는 일방적인 복종을, 학생들에게는 성적 향상만을 요구하는 한국의 교육 현실이 과연 이대로 괜찮은 걸까?

<명령불복종 교사>는 교사들이 교육 행정의 획일성과 징계의 부당함에 맞서면서 이어진 험난한 싸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를 토대로 경쟁교육의 문제점과 교육계의 부조리도 엿볼 수 있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말처럼, 영화 속 사건을 돌아보는 성찰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교육의 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명령불복종 교사 일제고사 해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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