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이 거지인 나라" 이렇게 달라졌다

[아일랜드 여행 스케치 22] 더블린 리피강 다리와 그 주변을 소개합니다

등록 2015.05.24 19:42수정 2015.05.2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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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피강 다리들 중에서 가장 많은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오코넬 다리 ⓒ 김현지


다른 나라의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제한된 시간에 많은 관광지를 돌아다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실제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선 경험해보지 못할 때가 많다. 그 나라 사람들의 결정적인 쉼터인 공원이나 다리의 경우에도 여행자에겐 그곳이 유명하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유명 공원이나 다리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기념 사진을 찍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잠깐 휙 둘러본 후 다음 여행지로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대부분의 여행지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아닐까? 여행에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여행의 목적이 달라지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유명 관광지를 수박 겉핥기 하듯이 돌고 사진을 마구 찍어댔던 여행은 그리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 않았다.


오히려 우연히 길을 잃었다가 발견했던 장소, 다리가 아파서 쉬어갔던 공원, 우연히 걸었던 산책로,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누었던 잠깐의 대화들... 그렇게 여행지에서 경험하는 일상의 경험들이 그 여행을, 그 장소를 더 기억나게 했고,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줬다.

여행에 쉼표 제공해준 더블린의 다리들

아일랜드의 대부분의 도시는 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돼 있다. 더블린도 예외가 아닌데 리피강(Riffy River)을 중심으로 남쪽, 북쪽으로 나뉘어 있다. 남쪽은 북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구역이 많고, 집값이 비싼 편이다. 또 유명 관광지들도 대부분 강남에 밀집돼 있다. 리피강은 강이라고 하기에는 강의 폭도 좁고 전체 길이도 좁은 강에 속한다. 강의 길이는 약 125km이며 강의 폭은 70~80m 정도로 한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은 폭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강을 건너는데 걸리는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는다.

얼핏 보기에는 특별해 보이지 않는 강이지만, 더블린 안을 흐르고 있는 리피강의 다리와 다리 사이에는 보행자 산책로가 놓여 있다. 4차선도 되지 않는 복잡한 중심가는 도로를 넓히는 대신 도로 옆에 보행자들이 걸을 수 있는 산책로를 만들어 놨다. 햇살 좋은 날, 이곳은 더할 나위 없는 도심의 휴식 공간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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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리피강의 보행자 다리인 하페니 다리 ⓒ 김현지


보행자 산책로 곳곳에 놓인 테이크 아웃 커피 매장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하염 없이 강을 바라보며 일광욕을 즐기는 시민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곳곳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책을 보는 사람들, 벤치 하나를 차지한 채 그곳에서 낮잠을 자는 사람들, 함께 모여 점심을 먹거나 수다를 떠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로가 바로 옆에 있지만, 도로와 산책로 사이에는 허리 정도 높이의 턱이 있어서 사고가 날 염려도 없다.


리피강을 더 유명하게 만들어준 다리들

리피강에 놓여 있는 다리 중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를 꼽으라면 오코넬 다리(O'Connell Bridge)와 하페니 다리(Ha'penny Bridge)를 들 수 있다. 오코넬 다리는 다리의 길이보다 폭이 더 넓은 다리로 유명하다. 그 이름도 유명한 다니엘 오코넬의 이름을 딴 이 다리는 오코넬 거리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더블린에서 가장 많은 유동인구와 차량이 다니는 곳이다. 더블린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한번은 이 다리를 건널 수밖에 없을 만큼 이 다리는 더블린의 중심가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오코넬 다리에서 서쪽으로 약 3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하페니 다리는 다리 사이에 도로가 없다. 오직 사람들만 다닐 수 있는 보행자 전용 다리이다. 이 다리의 공식 명칭은 '리피 브리지' 였지만 개통 후 통행료로 'half penny'를 냈던 것에서 유래해 1919년 이후 통행료가 폐지됐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하페니 다리로 불리고 있다. 이 다리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다리 중앙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5분간 서 있으면 길 가던 사람들도 동참해 같이 하늘을 바라본다는 신화도, 전설도 아닌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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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피강 다리 사이에 설치된 보행자 산책로는 더블린 시민들에게 좋은 휴식처를 제공한다. ⓒ 김현지


슬픈 아일랜드를 만날 수 있는 곳, 기근 조각상

리피강의 다리 주변은 시민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지만,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기념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오코넬 다리에서 더블린 항구 방향으로 약 650m를 가다 보면 조각가 로완 길레스피(Rowan Gillespie)가 1997년에 완성한 <대기근> 청동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얼핏 보기에도 뼈밖에 남지 않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행렬이 보인다.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는 말을 이럴 때 써야 할까? 청동으로 표현된 작품이지만, 사람들의 표정과 몰골은 그때의 처참했던 실상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힘 없이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꿈도 희망도 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마지막에 뒤따라 가는 아버지의 어깨에는 죽은 아들의 시신이 얹혀 있다. 작품을 통해 단편적으로 보는 모습을 통해서도 나는 쉽게 '절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작품은 19세기 중반에 일어난 아일랜드 대기근을 주제로 하고 있다. 1845년 당시 약 800만 명이었던 아일랜드 인구는 대기근 기간 대략 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고 백만 명이 아일랜드를 떠나 해외로 이주했다고 한다. 아일랜드 대기근 이후에도 아일랜드민의 해외 이주는 계속 증가해 결과적으로 1900년대 중반까지 인구의 절반이 감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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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대기근을 주제로 한 조각상 ⓒ 김현지


아일랜드의 실상을 취재한 영국의 한 언론인은 그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이 세상에 식민지와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고 있는 나라는 수도 없이 많다. 또한 가난한 나라도 많다. 그 나라에는 거지들이 득실거린다. 그러나 한 명도 빠짐없이 전 국민이 거지들인 나라는 아일랜드밖에 없을 것이다.

(중략) 이들의 모습은 인간의 살이 어떻게 뼈와 분리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밤마다 공포에 떨었다. 쥐들이 그들의 살을 파먹었고 다음날 아침이면 많은 수의 사람들의 살점이 떨어져 나간 채로 죽어있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빡빡한 여행 일정에서 벗어나 도심의 한복판에서 과거의 아픔을 잘 이겨내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더블린의 진짜 매력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아일랜드 #더블린 #리피강 #아일랜드대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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