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속옷 좋아해?' 묻는 지하디스트, 이게 IS 민낯

[서평] 여기자의 IS 잠입 르포 <지하드 여전사가 되어>

등록 2015.05.25 19:31수정 2015.05.2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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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기자 안나 아렐이 히잡과 젤라바(북아프리카와 아랍국가에서 여성이 입는 두건과 긴 소매가 달린 외투)를 걸치고 영상통화 서비스 스카이프에 접속해 IS 대원 아부 빌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 글항아리


늦은 저녁, 온라인 화상 채팅을 통해 두 남녀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여자는 검은색 베일을 뒤집어쓰고 남자는 금빛이 도는 선글라스를 끼고 소파에 불량스럽게 앉아있다. 남자는 간절하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다. 나와 결혼해준다면 널 여왕처럼 모실 거야. 그들이 온라인으로 알게 된 지 48시간 만이었다.

무슨 미팅 주선 사이트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다. 남자는 38세의 간부급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이고, 여자는 20살의 '멜로디'란 프랑스 소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는 '멜로디'를 연기하는 30세의 프랑스 여기자 '안나 에렐(가명)'이다.


"너의 시타르와 부르카 안에는 네가 원하는 옷 아무거나 입어도 돼. 예를 들어 가터벨트나 망사스타킹이라든지. 네 남편이 좋아하는 것들 말이야. 자긴 어떤 속옷을 좋아해?" - <지하드 여전사가 되어>에서

날이 갈수록 대화는 노골적으로 변해갔고, 그에 따라 남자의 감언이설도 더해갔다. 오 자기야, 아름다워, 네가 여기에 온다면 무엇이든지 해줄게, 모든 사람들이 널 받들어 모실거야. 가끔 낮 동안 이교도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며 자랑도 늘어놓는다. 결국 자기 멋대로 혼인을 선고하고 "숫처녀냐"고 묻는다. 그게 중요하다면서 말이다.

그러는 사이, '멜로디'의 계정에는 IS행을 고민하는 소녀들의 질문이 쌓여간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다. 그러나 무게감 있는 질문들보다는 시시콜콜한 궁금증에 가깝다. '티팬티'를 가져가도 되느냐는 질문도 있다. 가관이다.

여린 '멜로디'는 사랑 공세를 퍼붓고 장밋빛 미래를 그려주는 지하디스트에게 금세 빠져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남자에게는 이미 세 명의 부인과 아이들이 있었다.

취재를 위해 20살 소녀를 연기한 프랑스 여기자


'멜로디'를 연기한 '안나 에렐'은 전 세계에 수많은 청소년들이 왜 IS의 일원이 되기 위해 시리아로 향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IS의 포섭이 이뤄지는 SNS를 통해 그들과 접촉했다.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영화 <알라딘>에 나오는 자스민 공주를 프로필 사진에 넣어 '멜로디'란 가상의 인물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다. 이어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IS의 선동 슬로건이나 영상들을 게시했다. 나이는 20살, 국적은 프랑스, 현재 이슬람으로 개종한 상태. 그가 준비한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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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프랑스 여기자의 목숨 건 이슬람국가 IS 잠입 르포 <지하드 여전사가 되어> ⓒ 글항아리

그러자 오래지 않아 저 남자, IS의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의 오른팔인 프랑스 출신 '아부 빌렐'이 덥석 걸려든 것이다. 책 <지하드 여전사가 되어>는 안나 에렐 기자가 아부 빌렐과 접촉하며 보고 들으며 겪은 사실을 르포 형식으로 기록한 결과물이다.

결국 '멜로디'는 아부 빌렐이 있는 시리아로 향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넘어갔다. 마치 그곳까지만 오면 모든 것을 책임져줄 것처럼 굴던 아부 빌렐은 거기서 또 이스탄불로, 우르파로 그녀 스스로 이동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면서 멜로디의 안위보다는 훔쳐 나왔다는 엄마의 신용카드와 매킨토시 노트북에 더 관심을 가졌다. 자신의 '샤넬 향수'를 사다달라는 말과 함께.

낯선 도시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멜로디'에게 향한 건 폭언과 협박이었다. 조금이라도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면 전화기를 타고 고함이 들려왔다.

"넌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 너 대체 뭘 믿고 그러는 거야? 명령은 내가 한다고! 알겠어?" - <지하드 여전사가 되어>에서

'멜로디'에게 가면을 벗은 IS는 극단적인 남성 우월주의와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 잔혹한 폭력, 이중적인 모습뿐이었다. 신념이나 의리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기자는 더 이상의 취재는 위험할 것으로 판단, 프랑스로 돌아왔다.

시리아로 떠나는 전 세계 젊은이들, IS의 실상을 정말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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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포착된 영국 10대 소녀 3명의 CCTV 화면을 보도한 영국 METRO 뉴스 갈무리. ⓒ METRO UK


지난 2월 영국 10대 소녀 세 명이 IS로 떠나기 위해 공항에서 포착된 사진이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초 '김군'이 IS에 합류해 훈련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2010년부터 지금까지 약 80개국 1만5000명이 넘는 외국인이 IS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IS가 젊은이들을 포섭하기 위해 만든 트위터 계정은 4만6000개에 달한다. 트위터가 직접 2000여 개의 계정을 폐쇄했지만 역부족이다.

영국의 일간 매체인 <데일리메일>은 유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성노예로 붙잡힌 소녀들은 IS대원들과 강제로 결혼해야 하며 그 때마다 고통스러운 처녀막 재생수술을 받는다"고 보도했다. 또한 자니아브 반구라 UN 성폭력 특별대사는 "여성과 소녀들은 매순간 성적학대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IS는 성적 폭력과 여성의 인격 말살을 테러전술로 삼는다"고 말했다.

과연 IS의 실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알려져 있을까. 기존의 책들이 고위층이나 전문가, 학자들의 의견에 초점을 맞춘 데 반해 이 책은 조금 '날 것'이다. 다듬어진 르포라기보단 개인의 감정이 다소 과다하게 이입되고 저자 개인의 일상이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이 있다. 정제되지 않아 차라리 생동감이 느껴질 수는 있겠다.

한 인터넷 동영상에는 아직 저자 '안나 에렐'의 베일 쓴 사진과 함께 프랑스어 자막으로 이런 글귀가 뜬다.

"혹시 세상 어디에서 그녀를 만난다면 이슬람법에 따라 그녀를 죽여라. 물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최대한 천천히 느끼게 한다는 전제하에. 이슬람을 비웃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피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녀들의 불순함은 개보다도 못하니 그녀를 강간하고, 돌로 때려죽이고, 숨을 끊어버려라. 인샬라." - <지하드 여전사가 되어>에서

현재 안나 에렐은 전화번호와 이름을 계속해서 바꾸며 경찰의 보호 아래 이사를 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는 방송에 출현해 "IS의 실체를 증언하기 위한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고 밝혔다. 부디 그가 목숨을 걸고 보여준 지하드의 심각성과 IS의 민낯이 많은 젊은이들의 선택을 되돌릴 수 있길 바란다.

아 혹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IS를 통해 공주가 될 거란, 전사가 될 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꿈 깨라. 이 책은 그 환상에 강력한 어퍼컷을 날린다. 퍽!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지하드 여전사가 되어> (안나 에렐 지음 / 박상은 옮김 / 글항아리 펴냄 / 2015.04 / 1만3500원)

지하드 여전사가 되어 - 프랑스 여기자의 목숨 건 이슬람국가IS 잠입 르포.

안나 에렐 지음, 박상은 옮김,
글항아리, 2015


#IS #이슬람 여전사가 되어 #안나 에렐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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