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츠 개혁=박근혜식 개혁? 보수진영 '입맛대로' 왜곡

[분석] 독일 노동개혁의 상징, 하르츠에게서 정말 배워야할 것

등록 2015.05.22 10:15수정 2015.05.2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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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독일의 실업난과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시장개혁특별위원회를 이끌었던 페터 하르츠 박사가 2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독일의 노동시장 개혁'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말그대로 '하르츠' 열풍이다. 독일 노동개혁의 상징으로 불리는 페터 하르츠 박사를 두고 나오는 말이다. 지난달 초 국내 노사정 대타협이 결렬되면서, 하르츠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특히 정부와 경제단체 등은 앞다퉈 '하르츠의 노동개혁'을 설파하고 있다. 정부에선 아예 지난 노사정 협상을 두고 '한국판 하르츠 개혁'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 '하르츠' 박사가 한국에 왔다. 그는 지난 20일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세미나에선 노동부장관과 직접 대담을 나눴고, 21일엔 세계경제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 등의 좌담회에도 나섰다. 또 노사정위원회도 이날 오후 그를 초청해 '독일 노동개혁 이야기'를 들었다.

정부와 재계 등이 하르츠를 초청해 여론몰이에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대표되는 하르츠 개혁이 침체된 독일경제를 되살렸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한국도 이 같은 개혁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에 나서자는 것이다. 과연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

하르츠 개혁을 둘러싸고 독일 사회에서도 여전히 강한 비판이 나오고 있고, 한국 현실과 동떨어진 측면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선 보수진영에서 하르츠 개혁을 자신들 입맛대로 왜곡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왜 하르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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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볼프스부르크시에 있는 폴크스바겐 공장과 자동차 테마파크인 아우토슈타트. 4개의 붉은 굴뚝은 이 공장의 초창기때부터 세워져 폴크스바겐의 상징처럼 돼 있다. 4개 중에 아직도 2개는 사용되고 있다. ⓒ 김종철


페터 하르츠 박사가 독일 사회에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자동차 회사인 폴크스바겐의 노동이사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1990년대 들어 자동차 산업의 위기가 닥쳤을 때, 폴크스바겐은 수만여 명에 달하는 인력 구조조정을 고민해야했다.

하르츠 박사는 21일 세계경제연구원 주최 세미나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1990년대초 폴크스바겐 노동자 3만 명이 해고 위기에 처했다"면서 "직원들에게 근무시간을 주 4일로 줄이고, 그만큼 급여도 줄이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직원들이 해고 대신 고통분담과 함께 고용안정을 택했던 것"이라며 "그들이 고통을 감내할 만한 선(한계)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의 폴크스바겐식 노동개혁의 핵심은 고용안정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기업 내부의 노동시장과 작업현장에서의 혁신도 함께 추진했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이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을 남발하는 방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결국 폴크스바겐은 단 한 명의 해고없이 당시 위기를 넘겼다. 그의 폴크스바겐 해법은 2000년초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극심한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은 슈뢰더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전통적인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 소속이던 슈뢰더는 하르츠에게 노동개혁을 맡겼다. 하르츠 박사는 기업, 교수, 노조, 정부 등 관계자 15명과 함께 노동시장개혁특별위원회를 꾸렸다. 노사정이 모두 참여한 '하르츠 위원회'는 대타협을 통해 13가지 개혁방안이 담긴 보고서를 채택했다. 슈뢰더 정부는 이를 법으로 만들었고 2003년부터 곧장 시행에 들어갔다.

보수우파의 사회민주주의자 하르츠 활용법

하르츠 박사는 "노동개혁의 핵심은 사람이며, 그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한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선 인간의 존엄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의 인식은 하르츠 개혁에 그대로 뭍어난다.

개혁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실업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다. 또 하나는 정부 차원의 일자리 서비스 체계를 개편하는 것이었고, 마지막은 노동시장의 규제 완화였다.

국내 재계와 보수언론 등에선 '미니잡(Mini Job)'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면서, 실업 감소와 일자리 창출의 일등 공신으로 평가했다. 또 실업급여와 실업부조 등을 축소시키고, 1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의 해고 완화와 임시직 노동자의 최장 4년 고용 연장 등도 보수진영의 좋은 홍보거리였다.

사민당 정권의 이 같은 개혁조치들은 독일 내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비판과 저항을 받았다. 특히 미니잡을 둘러싼 독일 내 논쟁은 여전하다. 미니잡은 월 임금 상한선(현재는 450유로)을 두고, 노동자와 사용자에게 세금감면 혜택 등을 주는 일자리다. 2003년 미니잡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598만 명이었고, 지난 2013년 3월엔 733만 명으로 늘었다. 현재는 독일 내에서 8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당초 정규직 일자리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로 인식된 미니잡이 전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오히려 저임금 노동자와 질 나쁜 고용만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실업률은 줄었지만, 실제 독일 노동자들의 평균 실질 임금은 늘지 않고, 오히려 줄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 온 독일 노동전문가인 하르트무트 자이페르트 박사는 "하르츠 개혁은 정규직 일자리를 시간제, 단기 일자리로 쪼개면서 오히려 '질 나쁜' 일자리만 늘렸다"고 비판했다.

정말 하르츠 개혁에서 배워야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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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볼프스부르그의 폴크스바겐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최종 생산된 골프 7세대를 점검하는 모습. ⓒ 폴크스바겐코리아


결국 슈뢰더의 사민당 지지율은 30~40%대에서 20%대로 떨어졌다. 아예 일부 좌파인사들은 사민당을 탈당해 독자적인 좌파정당(Die Linke)을 만들기도 했다. 슈뢰더 정권은 이후 총선에서 우파인 메르켈의 기독교민주당에게 패하면서, 정권을 내놨다. 메르켈 정부는 오히려 슈뢰더 시절의 하르츠 개혁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독일전문가인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하르츠 개혁의 핵심은 노동시장 유연화가 아니다"면서 "노동시장 유연화가 하르츠 개혁 내용에 있지만, 이미 독일 내부에서조차 많은 부작용과 함께 많은 국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미 한국의 노동시장은 하르츠 개혁이 진행됐던 독일보다 더 개방되고 유연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하르츠 개혁에서 배워야할 것으로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꼽았다. 실업자를 노동시장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직업알선과 교육훈련 등 고용서비스를 획기적으로 바꿨다는 것. 그는 "수십여 년 동안 관료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연방고용청을 고용공단으로 전면 개편했다"면서 "구직자 중심의 취업 서비스 질을 크게 높인 것도 하르츠 개혁에서 매우 중요한 점"이라고 말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하르츠 개혁 #독일 노동시장 #폴크스바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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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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