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보다 못한 노인? 가슴 아프다

[책 뒤안길] <택배 왔어요>를 통해 본 노부모 부양문제

등록 2015.05.22 15:42수정 2015.05.2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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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서열이 있다면 어떤 순서일까. 2013년 tvN '롤러코스터3, 나는 M이다' 프로그램에서 우스운 가족 서열을 매긴 적이 있다. 단연 가정의 절대 권력인 엄마가 1위, 2위는 장녀, 3위는 장남, 막내가 4위다. 그리고 서열 5위는 엄마의 애완견이다. 다음으로 아빠다. 참 재미있는 코미디다.

방송은 여기까지만 말한다. 그런데 아빠 다음은 누구일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아닐까. 그렇게라도 순위에 넣어주면 고맙다.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 한 가족이 가족 여행을 준비하던 중 벌어진 일이다. 할머니가 옷을 챙기며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손녀가 다가와 한 말, "할머니 우리 가족끼리 여행가는 거야. 할머니가 왜 옷을 챙겨?"

따로 살든 같이 살든, 할머니 할아버지를 가족이라고 생각해준다면 고맙게 여겨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TV 코미디물이나 앞의 손녀 이야기는 극단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일부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가쁘게 늙어가고 있다.

개보다 못한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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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왔어요> 책표지 ⓒ 다른

이 사회는 '노인문제'라는 말로 노인집단을 싸잡아 문제시 한다. 이 시대의 노인은 가진 게 없어 문제고, 오래 살아 문제고, 건강하지 못해 문제다.

여기 졸지에 할머니가 광견병 걸린 유기견으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택배 왔어요>(도서출판 다른)에 나오는 대화다.

"그럼... 아까 그 택배가.... 잘못 왔다는 택배가..."
"네, 엄마가 광견병 걸린 개라고 만지지 말랬어요."- <택배 왔어요> 51쪽

"사모님 물건이 맞죠?"
"물건요? 지금 물건이라고 그랬어요? 도대체 거긴 어떤 곳이죠?"
"노인들을 보관하는 곳이죠. 지금 포화상태라 정리 중이고...."- 같은 책 31쪽

형편이 힘들어진 큰아들이 홀로된 노모를 택배로 배달하여 작은아들 집으로 보냈다. 작은며느리가 택배상자 안에 든 시어머니를 발견하곤 반송하기 위해 한편으로 밀어놓았다. 아들(할머니에겐 손자)에겐 잘못 온 택배인데 광견병 걸린 개가 들었으니 절대 들여다보지 말라고 말했다.

골프연습을 하던 작은아들이 그 상자를 발견한다. 며느리는 송장에 있는 번호인 노인센터로 전화를 건다. 버려진 노인들을 관리하는 센터에선 노인을 '물건'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어머니요, 할머니다.

이미경은 책에서 노인문제를 극단적 상황으로 극화한다. 현대판 고려장을 '택배'라는 현대적 소재로 엮어 유머러스 하지만 날카로운 비수를 들이 밀며 현대사회를 고발한다.

소설과 다르지 않은 고령사회

"장남인 A씨는 홀로된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어머니는 지병으로 병원에 다녔고 말년에는 치매 진단까지 받았다. 노모는 치매를 앓다 세상을 떠났다. 어려운 형편에도 어머니를 부양했던 A씨는 형제들이 돕지 않아 경제 활동이 어려웠다며 형제들을 상대로 서울가정법원에 부양료 심판을 청구했다."- <연합뉴스> 8월 9일 보도

법원은 일부만 인정하여 150만 원을 동생이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이와 같이 부양료를 놓고 벌이는 형제 간 소송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서울지방법원 부양료 청구건만 해도 2013년 67건이었던 것이 지난해 74건으로 늘었고, 올해에는 지난달까지 23건이 접수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4년 고독사한 무연고 사망자가 1008명이다. 이중 50대 이상이 73%에 이른다. 거기다 양가 부모 4명 중 한 명 꼴로 치매에 걸린다는 통계가 있다. 75세 이상 치매환자가 2010년 5만369명에서 2014년 9만3844명으로 증가했다.

노부모 부양문제는 돈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당연히 치매 등 건강하지 못한 부모를 모시는 일은 돈이 들어가는 문제이기도 하다. 작가는 피해갈 수 없는 노부모 부양문제에 대하여 비교적 담담한 어조로 말하려고 하지만 그 위트 속에 담긴 주제만큼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작가는 택배 상자 안에 담겨 작은아들 집과 노인센터를 오가는 '반송(返送)' 인생인 할머니(이길화)를 통하여 이 사회에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는 노인을 짚어낸다. 이길화의 작은아들(승일)은 항상 변비다. 그에겐 '배출'이란 출구가 없다. 주류세대의 욕심과 이기(利己)는 결국 자신을 해치고 있는데도 버리질 못한다. 아니 버릴 수가 없다.

내리사랑 YES, 치사랑 NO?

며느리가 붙인 별명, '광견병 걸린 유기견'은 그래도 손자(민후)의 측은지심을 발동한다. 불쌍하니 키워보자는 거다. 이미 '아지'라는 애완견을 키우지만 더 키울 여지가 있다. 그게 개가 아니라 할머니란 걸 알면 어떻게 될지. 작가는 거기까지 터치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손자의 '순수함'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이 가족에 대한 예를 갖추는 듯하다.

그러나 승일과 며느리의 생각은 다르다. 따스한 손길로 강아지 '아지'를 어루만지며 택배의 '반송'만을 고집한다. 심지어는 노인센터에 육두문자로 항의를 하면서까지 말이다. 그러다 그들의 어머니는 한줌 재가 되어 자그만 택배 상자 안에 담겨 그들 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작은아들과 그의 아내는 이를 자신의 유학 간 아들(지후)의 유해로 오인하고 대성통곡한다. 얼마 전 유괴범의 전화를 받은 상황임을 감안해도 그들의 안중엔 아들만 있지 어머니는 없다. 내리사랑과 치사랑의 깊은 골을 본다. 작가는 왜 내리사랑은 가능한데 치사랑은 불가능한지 묻는다.

그래도 이 가족에게 아들 민후가 있어 다행이다. 민후는 비록 광견병 걸린 개지만 유해로 돌아온 개의 뼛가루를 하늘을 향해 뿌린다. '상자 안에서 왔다갔다 하느라 힘들었지? 하늘나라 가서 자유롭게 살아. 다음엔 아지처럼 사랑받는 집에서 태어나.'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뼛가루가 된 할머니 이길화의 마음을 송곳으로 찍는다.

죽어서조차 광견병 걸린 개가 되는 노인, 배설하지 못한 변비로 기성세대의 독이 되는 인간, 자본주의의 논리에 가혹하게 짓밟힌 가족, 이들이 빚어낸 흉악한 가족사는 차라리 소설만이길 바랄 뿐이다. 이 시대를 있게 한 노인세대의 불운한 운명에 놓인 현실이 차마 가슴으로 읽어내기 버겁다. 그래서 그냥 눈으로 읽고 허연 하늘에 님들의 영혼을 흩뿌려야 할 듯하다.
덧붙이는 글 <택배 왔어요>(이미경 지음 / 도서출판 다른 펴냄 / 2015. 5 / 152쪽 / 1만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길일 것 같아 그 길을 걸으려고요.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택배 왔어요

이미경 지음,
다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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