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아가씨, 찔레꽃... 어머니의 눈이 촉촉했다

경남 산청 차황면 금포림에서 열린 장사익 자선 음악회를 다녀와서

등록 2015.05.22 15:56수정 2015.05.2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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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 차황면 금포림에서 열린 ’네 번째 장사익 찔레꽃 자선 음악회’ 가는 둑방길. ⓒ 김종신


설렜다. 20여 년 전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오후 5시에 시작한다고 했지만, 3시에 집을 나왔다. 근처 어머니 댁에 갔다. 어머니도 깜짝 놀랐다. 어머니를 태우고 누나네로 갔다. 누나도 놀랐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나 누나는 싫지 않은 표정이다. 경남 산청군 차황면 실매리로 가기 전에 근처 가게에 들러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샀다. 어머니도 이미 가래떡이며 커피를 챙겨 놓으셨다.

찔레꽃 길 위에서 듣는 <찔레꽃>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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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일 장사익 음악회 때 찍은 찔레꽃 둑방길.(저만치 보이는 나무가 이른바 ‘장사익 소나무’다.) ⓒ 김종신


지난 16일 경남 산청군 차황면 금포림 숲에서 '네 번째 장사익 찔레꽃 자선 음악회'가 열렸다. 차황면은 지리산을 품은 산청군에서도 교통이 다소 불편한 산골이다. 그 산골에서 난리도 아니다.

행사 30분 전이지만 2차선 길에 차들이 뱀의 꼬리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멀찍이 차를 세우고 걸었다. 작은 실개천 둑방길을 우리처럼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둑방길은 이른바 '찔레꽃 둑방길'이다.

찔레꽃 둑방길이지만, 아쉽게도 찔레꽃은 수줍은 듯 해맑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좀 더 낯이 익으면 드러낼 듯하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행사가 열리지 못했다. 재작년 6월 1일 열렸을 때는 찔레꽃이 활짝 피어 은은한 향내와 하얀 물결로 반겨줬다.

행사장인 실매리 금포림이 다가오자 장사익 소나무가 보인다. 소나무 아래는 찔레꽃 노래비가 서 있다. 드문드문 핀 찔레꽃을 보면서 노래비 속 노랫말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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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장사익 찔레꽃 자선 음악회’ 열린 경남 산청군 차황면 금포림. ⓒ 김종신


"하얀 꽃 찔레꽃/순박한 꽃 찔레꽃/별처럼 슬픈 찔레꽃/달처럼 서러운 찔레꽃/찔레꽃 향기는/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목 놓아 울었지/찔레꽃 향기는/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밤새워 울었지(중략)/찔레꽃처럼 울었지/찔레꽃처럼 노래했지/찔레꽃처럼 춤췄지/찔레꽃처럼 사랑했지/찔레꽃처럼 살았지/찔레꽃처럼 울었지/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장사익의 노래 '찔레꽃'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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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포림 공연장 한쪽에는 패랭이꽃이 마치 여기 모인 사람들의 머리같이 하얗게 붉게 피었다. ⓒ 김종신


누나가 손톱으로 얇은 찔레순의 껍질을 벗겨 먹어보라고 건네줬다. 누나는 이미 달콤한 어릴 적 추억에 깃들었다. 나는 씁쓰레했다. 씁쓰레한 맛에 순박한 하얀 빛깔의 찔레꽃에는 아픈 사연이 떠올랐다.

때는 고려 말. 원나라 공녀로 끌려갔던 '찔레'라는 여인이 고향에 남은 동생 달래와 아버지가 그리워 찾아왔다. 그러나 딸을 지키지 못한 서러움에 목매 달아 죽은 아버지.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 없는 동생을 찾아 헤매다 그리움이 병이 돼 죽었다.

그 위로 하얀 찔레꽃이 피었단다. 꽃은 눈을 닮아 하얗다. 애타게 가족을 찾아 부르던 목소리는 은은한 향기가 되고 가족을 그리워하던 마음은 빨간 열매가 됐단다. 

실매리 금포 숲 수백 년 묵은 나무 아래 장사익의 소리를 듣기 위해 돗자리를 펴고 앉은 사람들이 올망졸망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2시부터 자선 바자가 열렸다는데 이미 물건은 동이 났다. 한쪽에서는 찌짐(부침개)에 막걸리를 사려는 이들로 북새통이다.

재작년 공연 때 받지 못한 스카프를 받았다. 2013년 공연 때 '장사익 친필 등산스카프'를 공짜로 나눠줬는데 수요가 많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주소를 적어 놓다. 2년 뒤, 받으러 오라는 문자까지 보내줬다. 2년 전의 약속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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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 소리를 들으러 온 관중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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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아가씨’를 비롯해 '여자의 일생', '추풍령', '비 내리는 명동'을 작곡한 고 백영호(1920~2003) 선생의 아들 백경권(진주 서울내과의원)이 피아노로 선친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 김종신


공연장 한쪽에는 패랭이꽃이 마치 여기 모인 사람들의 머리같이 하얗고 붉게 피었다. 판을 벌여 챙겨온 족발에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정겹다. 공연장 옆에는 아이들이 그네를 타느라 신났다.

본 공연에 앞서 지역 가수들의 공연이 있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동백 아가씨>를 비롯해 <여자의 일생>, <추풍령>, <비 내리는 명동>을 작곡한 고 백영호(1920~2003) 선생의 아들 백경권이 피아노로 선친의 노래를 들려줬다. 어머니도 노래를 나지막하게 따라 불렀다.

충남 홍성 출신인 장사익은 산청과는 인연이 없다. 그런 그가 몇 년째 이곳에서 무료 공연을 하고 있다. 2007년 청정 지역 차황면의 광역 친환경 단지 지정 축하 공연에 왔다가 당시 도의원이던 신종철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금포숲 논은 공연장으로 변했다. 장사익의 찔레꽃 가사 노래비가 세워졌고, 둑방길에는 찔레꽃 길이 만들어졌다.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매년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우리 옆에 앉은 부부에게 언제 왔는지 묻자 엄지 손가락을 길게 세우며 "오후 1시"라고 답하자 그 앞에 앉은 아주머니는 "우리는 부산에서 오전에 와서 여태 기다렸어요"하며 웃는다

오후 6시. 장사익이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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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장사익 찔레꽃 자선 음악회’ 열린 경남 산청군 차황면 금포림에서 소리하는 장사익.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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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매년 산청군 차황면을 찾아 무료로 작은 음악회를 여는 장사익. ⓒ 김종신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 꽃이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장사익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어머니는 멀찍이 무대 가까이 자리를 옮겼다. 앞사람이 노래에 맞춰 어깨를 올리고 머리를 돌릴 때마다 어머니도 덩달아 피해 가며 무대 위 장사익을 따라 움직였다. 어머니는 바지를 버릴 생각인지 풀밭에 다리를 길게 뻗었다.

백경권의 피아노 반주에 <동백아가씨>를 소리할 때는 주위가 온통 들썩였다. 그의 소리에 맞춰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몸이 움직였다. 대표곡 <찔레꽃>이 차황면을 울렸다. 어느새 오후 7시. 박수와 함께 앙코르 요청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날 밤 이슬이 맺힌 눈동자 그 눈동자 / 가슴에 내 가슴에 남아 / 외롭게 외롭게 울려만 주네 / 안개 안개 자욱한 그날 밤거리 / 다시 돌아올 날 기약없는 이별에 / 뜨거운 이슬 맺혔나~ / 고독이 밀리는 밤이 오면 / 가슴속에 떠오르는 눈동자 그리운 눈동자 /아~아 그리운 눈동자여(<눈동자> 중에서)"

장사익의 소리에 어머니 눈동자가 촉촉하다. 돌아오는 길에 동제국 한우 국밥을 한 그릇씩 먹었다. 내년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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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아가씨’를 작곡한 고 백영호의 아들 백경권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소리하는 장사익. ⓒ 김종신


덧붙이는 글 산청한방약초축제 블로그
해찬솔 일기
#장사익 #찔레꽃 #동백아가씨 #차황면 금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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