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누구보다 가장 '무뢰한' 같았던 김혜경, 전도연이었다

[인터뷰] 전도연 "배우?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15.05.23 09:33최종업데이트15.05.23 12:06
원고료로 응원

영화 <무뢰한>에서 김혜경 역의 배우 전도연이 2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전도연은 시간의 흐름과 치열하게 싸워온 배우다. 25년의 연기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중의 인정을 받고 칸영화제 여우주연상(2007년 <밀양>)까지 거머쥔 거 같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외과 의사 채희주(영화 <약속>), 풋풋한 시골처녀 홍연(영화 <내 마음의 풍금>)의 탄생엔 CF스타로 부상 이후 배우로 나아가며 매번 자신을 작품에 던졌던 전도연의 피땀이 어려 있다.

그녀의 4번째 칸 영화제 진출작('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이 된 영화 <무뢰한>에서 전도연은 룸살롱 종업원 김혜경을 맡았다. 닳을 대로 닳아 더 이상 사람과 사랑 따위를 믿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만 누구보다 진짜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 취재진을 맞은 전도연이 "현장에서 나 진짜 치열하게 했어요~"라며 활짝 웃는다. 그 안에 최보라와 채희주의 삶을 버텨온 김혜경이 있었다. 지난 20일 서울 삼청동에서 전도연을 만났다.

우리는 어떤 사랑을 꿈꾸는가..."또 다른 사랑의 형태 담아"

"분명 <무뢰한>이 그린 사랑은 관객들이 하고 싶어 하는 사랑은 아니다"라고 전도연이 운을 뗐다. 사랑의 형태가 하나가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무뢰한>은 '끔찍한 사랑' 정도가 되겠다. "사람들이 솔직하게 꺼내지 못했던 사랑이 영화에 담겨있다. 거기에 관객들이 공감할 거 같다"는 게 전도연이 출연하게 된 배경이었다. 게다가 남성적 분위기가 강한 느와르인데 여성 캐릭터가 중심에 박혀 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간 너무 무거운 작품만 했기에 쉽게 선택할 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적으로 매력이 컸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느꼈던 강렬함을 오승욱 감독님도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내가 느낀 혜경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여자였다. 남자보다 더 무뢰한 같은 여자다. 그래서 촬영 직전까지도 혜경을 남자가 보고 싶은 여성으로 대상화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요즘 나오는 작품 중 내가 할 수 있고, 고를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무작정 어려운 감정 표현에 도전하는 게 아니라, 내가 표현한다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한 작품에 더 마음이 가는 거 같다."

작품 진행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킬리만자로>(2000) 이후 15년 만에 오승욱 감독이 선보이는 복귀작이기도 했지만, 준비 단계에서 전도연과 호흡을 맞추기로 했던 이정재가 심각한 어깨 부상을 당해 합류하지 못했다. 작품이 표류하던 차에 김남길이 정재곤 역을 맡게 됐다. "이거 안 될 영화인가 생각하면서도 끝까지 영화화 되는 걸 보고 싶었다"며 전도연은 당시를 회상했다. 김남길은 특유의 백지 같은 이미지로 김혜경의 남자 정재곤으로 분했고, 그 안에서 전도연과 힘을 주고받았다.

영화 <무뢰한>에서 김혜경 역의 배우 전도연이 2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범인을 쫓는 경찰(정재곤)과, 범인의 정부가 사랑을 느낀다는 거. 물론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혜경 역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듯 사랑한다면서 괴롭히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의 표현 방식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보다 처절한 김혜경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영화를 보면 김혜경이 자신의 손님을 찾아다니며 사나운 태도로 외상값을 받는데 사나움을 드러낼수록 더 연약해 보이는 게 혜경이라 생각했다."

"아직은 내가 잘 가고 있음을 느낀다"

전도연은 과거 몇몇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원래 꿈은 현모양처"였음을 밝혀왔다. 그만큼 배우는 그녀에게 인생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지금까지 이걸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전도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부터 치열했으면 지금쯤 지쳤을지도 모른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생각 없이 살았지.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현모양처가 되고 싶다고 하니 다들 안 믿었는데 나 요리도 잘한다. 진짜 맛있다. 이것도 못 믿으려나? (웃음)

<무뢰한>의 김혜경이 끊임없이 상대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려는 것처럼 나 역시 솔직하고 직접적 생각을 드러내며 살아왔다. 그 안에 진정성을 담으려 노력했다. 연기를 25년 해왔으니 사람들은 더 이상 내게서 기대하는 게 없을 거라 걱정할 수도 있는데 난 오히려 반대다. 할 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감사하다. 나에 대해 사람들이 여전히 궁금해 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아직은 내가 잘 가고 있구나 그런 격려를 받는다."

ⓒ 이정민


세간의 관심과 기대에 분명 부담스러웠을 때가 있겠지만 전도연은 오히려 "연기할 때가 가장 자유롭다"는 말을 자신 있게 했다. 한 가정의 아내로, 엄마로 그 역할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그는 대중 앞에 매력을 뽐내는 배우다. 전도연은 "수십 명의 스태프와 한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경이롭기까지 하다"며 한껏 강조했다.

알게 모르게 전도연 스스로 몸에 힘을 빼는 법을 터득해 온 것 같다. 많은 후배들이 여전히 그녀를 롤모델로 꼽고 있음에도 전도연은 "선배로서 어떤 책임감을 갖기 보다는 내가 일에 대처하는 자세가 본이 된다면 기쁜 일"이라며 "하면 일단 최선을 다하니까!"라고 유쾌하게 덧붙였다. 이러다 예능 프로에까지 진출하는 건 아닐지. "못할 게 뭐 있나. 요리도 좋고 여군도 좋고, <꽃보다 누나> 시리즈도 좋다"며 그녀가 웃는다.


'칸의 여왕' 전도연의 비하인드



ⓒ 이정민


이번까지 네 번째 칸 방문이었다. 이제 칸에 전도연이 가지 않는다면 서운할 정도. <밀양>(2007)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하녀>(2010)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전도연은 2014년엔 경쟁부문 심사위원 자격으로 칸을 찾았다. 이번 영화 <무뢰한>은 '주목할만한 시선'에 진출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칸 드뷔시 극장에서 공식 상영이 있었고, 전도연이 상영직후 눈물을 흘렸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 눈물의 의미를 물었다.

"경쟁 부문에 두 번 진출했고,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은 처음이라 가서 당황은 했다. 동선이 헛갈리더라. 상영이 거의 밤 12시 다 돼서 끝났는데 일부 사람들이 우르르 나갔다. 사실 극장에 도착하기 전 차 안에서 김남길씨가 관객들이 기립박수 칠 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서 이래저래 답했는데 그렇게 나가 버리니 걱정됐다. 영화의 메시지가 잘 전달은 된 건지 좀 나도, 감독님도 혼란스러웠다. 근데 다음 날 영화 리뷰가 호의적이었다. 한 시름 놨지(웃음). 그리고 눈물! 솔직히 얘기하면 레드카펫 행사 때 눈에 뭐가 들어갔었다. 이후 영화 상영 직후 그 영향도 있었고, 피로도 쌓여서 눈물이 난 거 같다. 좀 울적하긴 했다."



전도연 김남길 무뢰한 칸 영화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