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참회록 아닌 회고록? '역사의 법정' 더럽히나

[주장] 검찰, 전두환 추징금 회수에 총력 기울여야

등록 2015.05.24 18:05수정 2015.05.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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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한 미국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은 전두환을 "유신의 아들(son of Yushin)"로 표현했다. 1960년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킬 당시 전두환은 대위 계급장을 단 29살의 청년 장교였다. 육군사관학교(육사) 11기 출신이었던 전두환은 쿠데타 직후 육사 교장의 반대에도 육사 생도들을 모아 쿠데타 지지 데모를 주도했다.

글라이스틴에 따르면 박정희는 전두환과 육사 11기의 '멘토'였다. 5․16 쿠데타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자 한미연합사령관이었던 존 위컴 주니어는 박정희와의 관계를 묘사하며 전두환을 '프로테제(protégé)'에 빗댔다. '프로테제'는 '제자'라는 뜻이다. <한겨레> 고나무 기자가 저서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아래 <전두환>)에서 전해주는 이야기들이다. 전두환이 12․12 쿠데타를 일으킨 건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중요한 것은 동기다. 쿠데타의 주역은 '혁명가'가 될 수도 있다. 1980년대 대한민국의 전두환과 신군부는 그렇지 않았다. 고나무는 <전두환>에서 그들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전두환과 신군부는 그 무엇과도 투쟁하지 않았다. 당시 역사 책과 회고록을 아무리 찾아봐도, 사익 외에 '신군부가 왜 군부 권력을 접수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찾기 어렵다. 전두환은 자신의 권력 행사를 가로막는 모든 것과 투쟁했을 뿐이다. (80쪽)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 독재 체제는 쿠데타의 '추억'과 무자비한 권력 쟁탈의 '기술'을 공유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그들로 인해 30여 년간 어두운 침묵 속에 갇혀 있어야 했다. 전두환이 이끈 '민주정의당'은 역사상 유례 없는 '반민주'와 '불의'의 세상을 열었다. 전두환이 즐겨 쓴 '민주'와 '정의'는 역설적으로 그의 시대에 가장 타락한 말 목록의 첫 자리에 섰다.

전두환은 '돈'에 집착했다. 권력을 사익 추구의 도구로 삼았으니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고나무는 전두환의 그런 행태를 '패밀리 비즈니스'에 빗댔다. 대통령직을 패밀리 비즈니스의 영업 사원 업무처럼 활용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전두환 시대의 정치를 '클렙토크라시(kleptocracy)', '도둑 정치'로 규정했다.

그의 회고록, 도대체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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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굳게 다문 전두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5일 오후 12.12군사반란 당시 핵심 인물인 고 이학봉 전 보안사 대공처장(24일 폐암 사망)의 빈소 방문을 위해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도착하고 있다. ⓒ 이희훈


전두환의 '공식' 재산은 29만 1000원이다. 2003년 4월 28일 추징금 환수를 위한 재판에서 전두환이 직접 밝힌 금액이다. 대법원이 전두환에게 내린 추징금 총액은 2205억 원이었다. 현재까지 1087억 원이 국고로 환수됐다. 29만 원의 재산으로 1천억 원의 돈을 낸 셈이니 놀랍다.

전두환 소유의 노른자위 땅과 고가의 그림, 불상과 자기들, 아들 전재국과 전재용 등 '패밀리' 명의로 된 부동산과 현금 등은 막대하다. 2013년 전두환으로부터 추징금을 받아내기 위해 꾸려진 검찰 특별환수팀은 지금도 전두환 일가의 무기명 채권, 주식 등 은닉 재산을 추적하고 있다. 전두환의 큰아들 전재국이 운영하는 출판사 시공사의 매출금 또한 환수 대상 목록에 오르내린다. '전두환 패밀리'는 건재하다.

아버지에게 내려진 추징금을 자식들에게 받아내는 것이 부당한 '연좌제'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정당한 문제 제기일까. 전재국은 아버지 전두환의 위세를 빌려 국정에 개입했다. 공식 직책이 없었는데도 보좌관들을 만나고 다녔다. 6․29 선언을 짜는 자리에 개입하는 등 아버지의 국정 통치를 두루 도왔다는 게 알려진 사실이다.

전두환의 가족들은 전두환으로부터 불법 비자금을 '용돈'처럼 받아 썼다. <전두환>에는 1996년 4월 16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전두환 비자금 공판 기록이 일부 인용돼 있다. 전두환은 딸 전효선에게 1992년 8월 자신의 연희동 집에서 액면 1억 원짜리 장기 신용 채권 23억 원을 건넸다. 심문 검사가 "23억 원이라면 100만 원짜리 월급쟁이가 전액을 저축해도 200년 동안 꼬박 모아야 할 돈"이라며 힐문했을 정도로 큰 돈이었다.

전두환 일가는 꿋꿋이 돈을 지키고 있다. 전효선은 지금까지 아버지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용돈' 23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지 않고 있다. 2013년 전재국은 조세회피처인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해 재산 은닉 혐의를 짙게 했다. 최근에는 엔에이치농협은행에 전씨 부인 명의의 30억 원 연금보험이 발견돼 전씨 부부가 매달 1200만 원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9만 원으로 해외를 다니고 골프를 칠 수 있는 숨은 비결들일 게다.

전두환의 '검은 돈'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갔다. 1979년 당시 전두환이 박 대통령에게 청와대 비서실 금고에 있던 현금 9억 원 중 6억 원을 줬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2012년 대선 TV 토론회 당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당시 6억 원은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30채를 살 수 있는 액수였다"라고 따져 묻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나는 자식도 없으니 나중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 돈을 아직 사회에 환원하지 않았다.

전두환은 추징금을 얼마나 해결했을까. 이명박 정부 때 추징된 금액은 불과 4만 7000원이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인 2013년 8월 서울중앙지검에 전두환 일가의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이 부랴부랴 꾸려졌다. 이후 현재까지 환수된 추징금액이 1087억 원이다. 49.8퍼센트의 환수율이다. 전두환 일가는 2013년 9월 당시 미납 추징금 1672억 원을 전액 납부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전두환에게는 국가에 내야 할 돈이 아직 1천억 원 넘게 남아 있다.

전두환은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 탈취를 위한 주춧돌을 마련했다. 1980년 5월 민주화를 부르짖는 광주 시민을 총칼로 제압한 뒤 이듬해 치른 장충체육관 간접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1995년 구속 기소돼 1심에서 내란죄와 반란죄 수괴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는 무기징역이 내려졌다. 그가 내야 할 추징금은 특정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수수죄로 선고된 것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특급 범죄자'였다.

그런 전두환이 회고록을 낸다고 한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진실한 참회의 기록이 될 성싶지 않다. 수년 전부터 조금씩 준비해 온 작업이라고 한다. 내년 초·중반쯤 발간될 예정이라니 얼추 완성돼가는 모양이다. 12․12, 5․18 등에 대한 비사를 포함해 재임 중 일어난 일들이 담길 것이라고 한다. 참회와 무관한 치적 부풀리기가 의심되는 대목들이다.

체납 추징 시효 2020년... 검찰에게 바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전두환의 '소신'은 한결 같았다. 1988년 5공 청문회에 나온 전두환은 계엄군의 유혈 무력 진압이 "좌파 세력의 공세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그뒤로 이 입장을 번복하거나 철회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반란과 내란 수괴 혐의로 사형과 무기징역이 내려졌다가 국가로부터 사면된 그다. 이런 후안무치가 있을까.

2012년 6월 8일 전두환이 육군사관학교(육사) 연병장에 섰다. 육사 기금 모금행사 자리였다. 육사 생도들은 최고 경의의 표현인 '우로봐' 경례를 전두환에게 바쳤다. 특별석 자리에서 일어난 전두환은 당당히 거수 경례로 답했다. 반란과 내란 수괴에게 경의를 바친 그 육사 생도들은 국민 세금으로 교육을 받는 이들이었다. 반란과 내란의 우두머리인 전두환 역시 국민 세금으로 길러진 군인이었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청산하지 않은 어두운 역사는 되풀이된다. 사익을 위한 쿠데타의 주역이자 '도둑 정치'의 총 책임자였던 전두환은 국가로부터 사면이라는 관대한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역사의 법정'에서까지 용서 받은 아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쓰는 참회의 기록이 아닌 한 그가 회고록을 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하지만 전두환은 회고록 출간에 강한 열의를 갖고 있는 듯하다. 전체 분량이 한 권으로도 모자랄 정도라고 하니 욕심도 있는 것 같다. 두루 살피건대 그에게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말이겠다.

그래서다. 검찰 특별환수팀에 촉구한다. 아직 1000억 원이 남아 있는 추징금 환수에 총력을 기울이라. 그가 느긋하게 회고록을 만들어 역사의 법정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라. 전두환 일가의 체납 추징 시효는 2020년까지다. 앞으로 남은 기간은 5년이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전두환 회고록 #'유신의 아들' #전두환 추징금 #'전두환 패밀리' #전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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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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